저자에 대한 존경을 담아
사관학교 생도 시절,
맡은 직책 때문에 이주에 한번 재활원에서 봉사활동을 했었다.
재활원에 도착하면 생도 제복 대신 준비해 간 체육복으로 갈아입고,
재활원 선생님의 간단한 설명을 들은 후 업무를 나누어 맡았다.
청소, 음식 준비, 옷가지 정리 등 대부분 어렵지 않은 활동이었지만
재활원 친구들과의 산책만큼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재활원 친구들의 행동 중 몇몇은
일반인의 시각으로는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이었다.
예를 들면 같이 산책을 하다가 갑자기 앉았다 펄쩍 뛰면서
소리를 지르는 식이다.
내가 큰일이라도 난 건지 놀라서 어안이 벙벙하자,
옆에서 지켜보던 재활 선생님께서
오늘 친구가 기분이 많이 좋은가 보네요.
기분 좋을 때 하는 행동이니까 놀라지 않으셔도 돼요.
그 뒤론 친구와 산책을 하다가 앉았다 뛰는 행동을 하면
놀라기보다는 녀석 기분이 좋구나
하며 나도 웃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결국
생각과 행동과 표현방식이 다른 친구들에 대한 이해가 높아질수록
우리들의 산책은 점차 이해할 수 있는 범위의 평범한 산책으로 바뀌었다.
이 책의 저자 올리버 색스는 뇌,신경학 의사로서
경증에서 중증의 다양한 환자들에 대한 깊은 이해를 위해
인내심을 가지고 가지고 교감과 치료를 시도한다.
그러한 시도에서 장애를 지닌 인간에 대한 저자의 깊은 존중이 드러난다.
"인간의 영혼은 그 사람의 지능이 높고 낮음에 관계없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라는 구절은 저자가 어떤 시각으로 환자를 대했는지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생각하는 방식과 표현의 방법이 다르다는 이유로
온갖 멸시를 받았을 영혼들이
이 저자를 만나면서 받았을 존중과 소통이
그들에게 얼마나 위안이 됐을지,
나 또한 마음이 따듯해지고, 깊은 감탄이 우러나온다.
십 년 전 재활원에서 함께 산책을 했던 친구도
저자가 환자들에게 베푼 위안의 십 분의 일만큼이라도
비슷하게나마 느꼈길 욕심내 본다.
다만 그 친구가 종종 내 팔뚝 살을 부드럽게 잡아서 비볐는데
친밀감의 표시인지 왜 그랬는지는 아직도 알 수 없는 일이다.
흠.
종종 그럴 때마다 그 친구 표정이 평온해 보였으니
그거면 된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