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명의 무당이 산다고 해서 백무동이었다.
지리산 천왕봉으로 가장 가파른 코스의 입구다.
그런데 왜 난 내비게이션에 백무동이 아닌 백운동을 쳤을까.
세네 시간 뒤 내비게이션을 따라 자연스럽게 가야산 백운동에 다 달았다.
조용했다. 생각보다 너무.
관리를 하는 사람을 나타내는 녹색 모자를 쓰고 계신 분께 여쭈었다.
- 실례지만 여기 지리산 백운동 아닌가요?
- 여기? 여기는 가야산인데
- 가야산이면, 지리산 줄기 중에 하나인 가요?
잠시 나를 보는 눈빛.
- 아니 가야산 백운동이라니까, 자네 혹시 백무동 묻는 거 아닌가?.
뇌리에 번개가 스쳤다.
백명의 무당!! 백무동!!
얼마나 당황하고 어이가 없었는지, 차로 후진하다가 멀쩡히 서있는 죄 없는 기둥을 박았다.
산지 3개월 된 첫 차, 첫 사고였다.
다시 정신을 다잡고 한 시간 남짓 운전해 간 백무동.
도착하니 해가 서쪽 산등성이에 걸렸다.
이번엔 제대로 채비를 차리고 등산로 입구를 지나는데,
- 3시 이후로 입산 금지입니다.
라며 관리소의 남자분이 목소리로 길을 막는다..
야간 산행은 금지이며,
지금 출발하면 결국 중간에 야간 산행이 된다는 것이다.
상황을 설명하고,
간청하기도 하고,
모르는 척 들어가 보기도 하고,
애걸하기도 하고,
신체와 정신의 건강을 증명하기도 해 봤지만.
- 3시 이후로 입산 금지입니다. 내일 새벽 네시 반에 다시 입산 가능해요.라는 대답만 메아리다.
지금 생각하니 원칙을 지키는 분이었다.
하지만 그때는 이렇게 융통성이 없나,
짧은 생각이 만든 원망만 가득이었다.
터덜터덜 입구에서 내려와 우선 차 수리를 했다.
이름 모를 소도시의 자동차 공업사였다.
자동차 휀다라는 부분이 거친 찰과상을 입었고,
휀다는 부분이 상해도 휀다 전체적으로 판금, 도색을 해야 했다.
차는 내일 찾으러 오란다.
내 사정이 딱했는지 공업사 기사님이 백무동으로 다시 데려다주셨다.
백무동 입구에는 네다섯 개의 민박집이 조르륵 있었다.
언제 빨았는지 주인도 잘 모를 이불과 좁은 온돌방이었다.
어째선지 가격은 4성급이다.
기분은 시무룩하고 휴식이 필요했지만,이 정도 가성비는 아니다 싶었다.
터덜터덜 길을 따라 무작정 걸었다.
어둑어둑해지니 멀리 붉은 십자가 네온사인이 가로등 사이로 빛났다.
한국 도시를 공동묘지처럼 만드는 붉은 십자가를 좋아하진 않지만,
이 때는 지친 마음 때문인지 위안으로 다가왔다.
때마침, 수요일 저녁이었다.
내가 아는 한 한국 모든 교회는 수요일 저녁에 예배를 드린다.
조그마한 시골 교회였다.
외우기 쉬운 이름 지리산 교회.
나도 시골교회 출신이라 들어가는 걸음이 어색하진 않았다.
당찬 여자 목사님이 계셨고,
성도님들 평균 연령은 50에서 60, 내가 다니던 교회와 비슷했다.
모두들 예배 내내 낯선 사내의 등장에 힐끔거렸다.
예배를 마치려 할 때, 목사님께서 모두에게 내 소개를 요청하셨다.
소개 후 궁금증이 풀리셨는지 다들 반갑다고 인사해주셨다.
따듯했다.
예배가 끝난 후 어떤 할머니 한 분이 내게 다가왔다.
- 어디 잘 데는 있어요?
그 순간 분명 나는 봤다.
할머니 옆에 계신 할아버지의 놀라는 눈빛을.
나는 딱히 숙소는 정하지 않았다고, 아니면 못했다고 말했을 텐데
이 미묘한 차이의 대답을 어떻게 했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어쨌든 결국
나는 할머니 집으로 가는 교회 차를 타고 가게 됐다.
할아버지의 불안한 눈빛과 함께.
할머니 할아버지는 지리산에서 고로쇠 물을 채취하시는 듯했다.
집 앞마당엔 고로쇠 통이 가득했다. .
할머니께서 차려주신 나 혼자만을 위한 저녁상은
계란말이를 중심으로 지리산 진미가 가득한 잔칫집 한상이었다.
정신없는 하루를 보내느라 배고팠던 나는 와구와구 먹었다.
개꿀맛, JMT.
정말 위가 터질 정도로 먹고 나서 숨을 고르는데,
할머니가 스테인리스 대접에 고로쇠 물을 가득 마셔보란다.
복잡 미묘한 향기완 달리 고로쇠 물맛은 달았다.
할머니가 손수 주신 그 물을 남길 수 없어 원샷을 했다.
쉬라고 내 주신 온돌방에는 폭신하고 화려한 색깔의 비단이불이 깔려 있었다.
아마도 명절에 자식들에게 펴주시는 이불이겠지.
너무 감사했다.
오늘 하루 동안 지친 마음이 따듯하게 녹는 듯했다.
지리산 입산 가능 시간은 새벽 네시 반부터였다.
아직 어두울 시간이지만, 새벽 등반은 금지가 아니었다.
밝아진다는 희망의 유무가 금지의 기준인 걸까?
야간 등반과 새벽 등반의 차이는 나는 아직 모른다.
푹 쉬고 새벽 알람에 일어나 조용히 채비를 차렸다.
왜 그랬는지, 조용히 사라지는 게 예의라 생각했다.
준비를 마치고 현관문으로 나가는데, 뒤에서
- 어두운데 조심히 가라고 잠긴 목소리로 배웅해주신다.
할아버지였다.
할아버지는 낯선 사내의 존재로 밤새 까끌한 잠자리를 가지셨으리라.
감사하다는 말과 폴더인사를 드리고 길을 나섰다..
철벽 같았던 오후 네시의 백무동 입구가
새벽 네시엔 어둠의 농도와 상관없이 환영의 문을 열어놓고 있었다.
산의 아침은 늦게 온다.
다행히도 내 장비(라기보단 등산을 좋아하시는 아버지 장비를 빌려온 장비)에는
헤드라이트가 있어서 동그란 불빛을 따라 천천히 나아갔다.
산길 바위에 앉아 다이제를 씹으며 듣는 이름 모를 짐승들의 울음소리.
아직 녹지 않은 눈길을 네발로 기는 경험.
넓고 수북한 갈대밭이 아침 바람에 내는 합주.
멀리 산과 산사이 솟아오르는 태양의 장엄함.
천왕봉 바로 직전 산장에서 먹은 컵라면의 뜨거움.
천왕봉에서 바라본 남도 사방의 모습.
잊을 수 없는 순간들이었다.
어려움에 처한 내게 은혜를 베풀어준
사마리아인과 같은 두 분으로 인해
온전히 얻을 수 있었던 감사한 순간들이다.
나중에 우연찮게 지리산이나 백무동 이야기가 나오면
나는 회상 조로 증언할 것이다.
백무동에서 백명의 무당을 보진 못했지만
고로쇠 물을 만들며 어려운 이웃을 보면 손길을 내미는
사마리아인 두 분을 그곳에서 봤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