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함께 업무 하는 동료와 이야기를 나누다
밴드부에 대한 기억으로 주제가 옮겨갔다.
동료와 나는 둘 다 스쿨밴드 경험이 있어
각자가 연주했던 밴드부의 공통점과 다른 점을 이야기하던 중
충격적인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밴드부 실에서 모여 합주 연습을 하다가
드럼을 치던 남자 선배가
자기는 땀이 많아 바지를 벗고 드럼을 쳐야겠으니
나가려면 나가 있으라고 했다는 것이다!!!
와우…
나도 학창 시절부터 생도 때까지 수년 동안 드럼을 쳤지만
단 한 번도 바지를 벗고 드럼을 연주해본 경험은
안타깝게도!! 없다.
왜 그와 나의 경험의 차이가 발생했을까?
요즘 다행히 시간이 많이 남아 오랜 시간 고뇌할 수 있었다.
그 결과 그와 나의 결정적인 차이점 몇 가지가
그는 바지를 벗고, 나는 벗지 못한 채
드럼을 치게 만들었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우선 신체적으로 그는 매우 땀이 많은 체질이었을 것이다.
특히 드럼은 양발로 하이햇 심벌과 베이스 드럼을 다루어야 하므로
연주 중 전신의 격렬한 움직임을 지속해야 하고
결과적으로 땀이 많은 체질이라면 바지가 걸리적거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둘째로는 문화적인 차이겠다.
그는 어떨지 모르지만 나는 주로 교회에서 드럼을 배우고 연주했기에
특히나 어르신이 많이 다니는 시골 교회였기에
집사님과 권사님, 장로님들께서 예배를 준비하는 시간에
쉽사리 바지를 벗고 드럼을 치기 힘든 문화적 배경을 지녔다.
그는 아마 무교이거나,
노출에 매우 진보적인 성향의 종교를 지녔을 테다.
세 번째로는 열정 혹은 집중력의 차이로 볼 수 있다.
내가 온전히 드럼에만 집중하지 못한 채 주위의 시선을 신경 쓰는 반면
그는 드럼 하나하나의 소리와 연주에 완전히 집중에 성공한 것이다.
드럼과 그가 리듬으로 하나가 되는 즉 물아일체의 상태가 되어
걸리적거리는 바지 따위야 주위 신경을 안 쓰고 벗어던질 수 있었겠다.
갑자기 영화 위플래쉬의 플레쳐 교수와 이 분이 만났더라면 어땠을지 생각해 본다.
수석 드러머를 뽑기 위한 혹독한 테스트 대목에서
대머리 교수에게 뺨다구 세 번을 맞고 땀이 나기 시작해
바지를 교수 얼굴에 벗어던지고 물아일체의 드럼 독주를 폭발시켰다면,
플레쳐 교수는 알듯 모를듯한 미소와 함께
“That’s my rhythm.” (그게 내 박자야)
라고 읊조리곤 그를 수석 드러머로 팬티바람에 앉혔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내 추론과는 별개로
그가 단순히 드럼을 좋아하는 약간의 노출증을 지닌
변태 드러머였을 수도 있다.
그 변수는 모든 논의를 종식시킬 정도로 명료하다.
‘오컴의 면도날’ 이라는 문제 해결 방식이 있다.
현상을 설명하는 가설이 여러 가지라면
가장 명료하고, 쉽게 설명이 되는 것이 사실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를 토대로 정리한다면 그는 역시
드럼을 좋아하는 노출증의 변태라는 결론이 나온다.
그가 하의 탈의 상태로 어떤 멋진 비트를 쳤을지
궁금증이 쓸데없이 떠올랐지만
오컴의 면도날로 더럽혀진 머릿속 생각의 실타래를 용맹과감히 끊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