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차’하는 순간

by 김대호

삶에서 '아차' 싶은 순간은 갑자기 찾아온다.

몇 년 전 청주 집에서 다시 돌아오는 길
시내버스에 타고 지갑을 여는 순간
그 '아차'의 순간이 찾아왔다.

지갑엔 푸른 만 원짜리만 몇 장 있던 것이다.
(카드보단 현금으로 버스비를 내던 때다)

유치원부터 십 수년간 버스를 탄 경력자로서
맨 앞자리에 앉아 버스에 오르는 손님들의 차비를
내 차비의 거스름 돈으로 모으는 장면을
상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물론 이 상황을 모르는 손님들에게
저한테 주세요 라며 급하게 손을 내미는 모습과
손님들의 의아함과 불신이 반씩 섞인 표정은
일일 걸인 체험과 크게 다르지 않다.

지갑을 열고 1초 만에 이런 오만가지 생각이
내 뒤통수를 후리고 갈 때
버스기사 아저씨께서 내 상황을 간파하셨는지
거스름 돈 동전으로 밖에는 못주는데
라고 하셨을 때
그래. 동전이라도 받자라고
생각하는 순간
100원짜리!!라고 하시는 청천벽력 긴박한 순간이다.

85개의 100원짜리를 주머니에 넣고 걸어 다니느냐
아니면 일일 걸인 체험을 느끼느냐를 저울질하게 된다.

다시 기사 아저씨 왈.
사람들한테 1000원짜리 있냐고 물어봐요.

버스 안에는 네 사람이 있었는데
앞자리 즉 나와 제일 가까이에는
외국인 노동자 두 사람과
(외노자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그렇게 생각했다)

버스 중간에는 아주머니 한 분이 앉아 계셨고
뒤 쪽엔 아가씨라고 하기엔 조금 어린 친구가 앉아 있었다.

나는 너무나 당연히도
외국인 노동자(라고 단정할 순 없었지만) 두 명이
한국말을 잘은 못할 것이고
그렇기에 설명하려면 시간도 많이 걸릴 것이고
또 천 원짜리가 많이 있지도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이상스러울 만큼) 자연스럽게 들었기 때문에
성큼성큼 그 둘을 지나쳐 버스 뒤쪽으로 갔다.

아주머니에게 다가가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혹시 천 원짜리 많이 있으세요?라고 여쭈었지만
그렇게는 많이 없네요.
라며 수수한 미소를 대신 거슬러 주신다.

다시 비틀거리며 버스 뒤쪽으로 가서
혹시 천 원짜리 많이 있어요?라고 아가씨라고 부르기에는 어린 친구에게 물었더니
고개만 설레 흔든다.

안 되네 라는 생각으로 다시 버스 앞으로 걸어와
혹시 하는 생각으로 외국인 중 한 명에게
혹시...라고 말을 다 꺼내기도 전에

사시미 칼 같이 날카롭고
봄 햇살 같이 따듯한 말이 내 가슴을 뚫는다.

아 천 원짜리요~ 있어요. 잠깐만요~
(당신이 이 말을 읽는 억양처럼 자연스러운 발음이었다)

우연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의 지갑에는 오천 원짜리와 천 원짜리가 많았고
내 만원을 천 원짜리로 쪼개기엔 충분했다.

쪼개진 천 원짜리로 내 몫의 차비를 내고
흔들리는 버스에서 비틀거리며 뒷좌석에 가 앉았다.

외국인들에게 보답할 것이 없을까 생각하니
교회에서 받은 떡이 가방에 있다는 사실이 기억난다.

떡이 들어있는 검은 비닐봉지를 들고
외국인들에게 다가가
이거.. 라며 내밀자
그들은 너무나 쿨하게 고맙다고 받았다.

다시 자리에 앉아 창 밖 늦 봄 풍경을 보며
무언가 내 어깨를 짓누름을 느낀다.

그들이 쪼갠 것은 내 만 원짜리가 아니라
나는 가지고 있지 않을 거라 확신하던
편견의 조각이었다.

수치스러웠다.

버스는 달렸고
외국인들이 먼저 목적지에 다달아
내게 고맙다는 눈짓을 하고는
버스에서 내려 자신들의 길을 갔다.

나는 한동안 그 둘의 걸음을 바라보았다.

내 시선의 속도와는 상관없이
버스는 굉음을 내며 제 길을 달린다.

살면서 '아차' 싶은 순간은 갑자기 찾아온다.
하지만
사실 그 '아차'는 항상 내가 만들고 있었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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