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카와 고양이 인형

by 김대호

이제 막 대문 밖을 뛰어다니는 나이가 된 단발머리의 조카는
제 머리만 한 하얀색 고양이 인형을 좋아하였다.

언제나 품에 한아름 되는 인형을 들고 다니며
동네방네 노래 부르며 돌아다니는 것을 즐거워하는
귀여운 소녀 아이다.

나는 마루에 앉아 수박을 먹으며 책을 읽고 있더라도
멀리서 노랫소리가 들리면
조카애가 돌아오는 것을 미리 알 수 있었기에,
이곳저곳에 숨어서 조카애 놀리기를 좋아하였다.

어느 날도 책을 읽으며 조카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이 날은 웬일인지 아무런 기척이 없다가
스르륵 대문이 열리며 조카애가 들어온다.

빨간 볼과 시무룩한 표정에
배부분이 터져 솜이 튀어나온 고양이 인형을 보니
왜 아무런 노랫소리 없이 돌아왔는지 금세 이해가 간다.

나는 책을 엎어두고 앞에 다가가며 물어본다.

무엇 때문에 그리 표정이 어두워?

이것 봐-

조카는 손을 번쩍 들어 고양이의 배부분을 보여준다.

철사에 긁히기라도 한 것인지
꽤 큰 부분이 뜯어져 꼬매는 것이 더 흉하게 될 듯 보인다.

음... 고양이가 많이 다쳤구나.

조카는 고개를 숙이며 조용히 말했다.

나 때문에.. 나 때문에 고양이가 죽었어.

아마도 조카가 인형을 다루다가 터지게 만든 듯싶다.

조카 말을 듣고 고양이 인형을 보니
조카의 시무룩함 때문인지는 몰라도
고양이 인형의 표정에서 생기가 없어진 듯 보인다.

고양이가 편히 쉴 수 있도록 앞 뜰 해바라기 밭에 묻어주어야겠다.

그냥?

조카가 묻는다.
무슨 뜻인지 이해가 가지 않아 되물어본다.

그러엄?

조카는 잠시 생각하고서는
마루 밑에 신발을 내팽개치고 자기 방으로 뛰어간다.
잠시 사이 후에 조카는 자신이 아껴온 듯 보이던
조그맣고 얇은 줄무늬 담요를 가져온다.

생각해보니 언제나 조카 침대 머리맡에 놓아두었던
바로 그 담요다.

이걸로 따듯하게 싸서 묻어주어.라고 말하며 담요를 선뜻 내게 내민다.

나는 조카의 마음이 갸륵하고 또 따듯하여서 머리를 도닥여주고
뒤뜰에서 작은 손삽을 가져와서
아직 피지 않은 해바라기들 앞에 작은 구멍을 만든다.

땅을 파는 것을 숨죽여서 지켜보던 조카가 묻는다.

그럼 고양이는 어떻게 되는 거야?

솜과 천으로 만든 고양이가 어떻게 변하지 않는다거나,
수많은 세월이 흐른 뒤에 흙으로 변한다는
사실 그대로 전하기가 모하다.

응. 고양이는 다시 나비로 태어날 거야.라고 얼떨결에 말해버린다.

작은 구덩이 속에 조카의 담요로 싼 고양이 인형을 넣어두고
조심스럽게 흙으로 덮는다.

고양이 인형의 부피 때문인 지는 몰라도 작은 봉우리가 생겨
정말 무덤같이 되어버렸다.

조카가 날마다 이 곳을 지나치며 마음이 아파질라
조금 힘을 주어 땅을 편편하게 만들어 보지만
작은 흔적은 사라지지 않는다.

이 날 조카는 기도를 하는 것인지
아니면 고양이의 명복을 비는 것인지
땅거미가 지도록 무덤 앞에 서 있는다.

나는 마루에서 책을 읽으면서도
조카의 어리고 슬픈 마음이 느껴져
책 너머로 계속 그녀를 바라보게 된다.

몇일의 시간이 흘렀을까.
마루에 앉아 얼마 남지 않은 작품 읽기를 마치려는 때
조카가 달려와 내 팔을 잡고 흔든다.

삼촌- 삼촌- 고양이가 왔어~

무슨 말인가 하여, 일어나 조카를 따라가 보았다.

조카가 앞장선 앞 뜰에 가보니
얼마 전 고양이를 묻은 그곳 활짝 핀 해바라기에
한 마리의 새하얀 나비가 날아와
천천히 날개를 움직이며 사근히 앉아 있었다.


(그림 작가 Yontada)

keyword
작가의 이전글‘아차’하는 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