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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파친코’

요즘 핫한 재일조선인 가족사

by 김대호



사람이 다른 동물에 비해 뛰어난 이유 중 하나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들을 상상하고 공유할 수 있는 능력일 것이다.

사람은 그 능력을 이용해 국가와 사회, 학문과 문화 같은 개념들을 만들 수 있었고, 결과적으로 인간만의 역사가 만들어졌다.

사바나의 동물들은 현재나 천 년 전이나 다름없는 모습으로 살지만, 사람들은 지구 곳곳에서 매일마다 다른 삶의 기록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소설 파친코는 사람이 만든 거대한 삶의 기록 중에서 식민시대부터 버블 경제 시기까지의 일본에서 삶을 이어야 했던 재일조선인 가족의 삶에 주목한다.

이 시기 적지 않은 일본인들은 식민시대의 시각으로 조선인들은 사상이 불순하고, 게으르며, 하층민에 어울리는 민족적 성향을 지닌 것으로 인정하고 바라본다.


소설 속 재일 조선인 인물들은 각자 고심한 후 나름의 방식으로 일본인들의 차별적 시각에 대응한다.

조용히 자신이 할 수 있은 궂은일을 찾아 묵묵히 하거나, 그들보다 더 뛰어난 능력을 쌓아 인정받기 위해 노력한다.

혹은 민족, 종교적 신념을 굳건히 지키다 가혹한 처사를 받거나, 그들이 천대하는 업종을 천직 삼아 윤리적 경영으로 떳떳한 삶의 방향을 정하기도 한다.


이야기의 말미 자기 신분으로서 얻을 수 있는 기회와 능력을 모두 가졌던 재일 조선인 4세 솔로몬은 결국 일본인들이 천대하는 업종이면서, 아버지가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파친코의 경영을 물려받기로 결심한다.

일본인들의 시선에 파친코는 관련 종사자는 천대하지만 파친코의 매력은 인정할 수밖에 없는 필요악으로, 소설 속 일본인들이 조선인들을 바라보는 관점과 닮아있다.

그런 면에서 솔로몬이 파친코라는 필요악에서 자신의 정체성과 미래를 찾을 수밖에 없는 결정의 근거를 찾을 수 있겠다.


역사가 망쳐버렸지만 그럼에도 조선인 대가족을 지탱할 수 있었던 가족 간의 사랑을 확인하는 장면으로 소설은 마무리된다.

십 수년 전 나는 소설 이후 2000년대 재일 조선인들의 삶을 엿볼 수 있는 다큐멘터리 한편을 우연찮게 접할 수 있었다.

김명준 감독의 ‘우리 학교’라는 작품에서 재일조선인 청소년들은 여전한 일본인들의 차별적 대우 속에서 조선인으로서 긍지를 잃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노력한다.

하지만 그들에게 피부로 와닿는 동일 민족으로의 접근이 한반도의 북쪽에서만 진행되는 것 같아 씁쓸한 기분도 동시에 느꼈던 작품이었다.


자 그럼 시야를 현재 우리나라로 돌려보자.


우리나라에도 같은 ‘사람’이지만, 인류의 고등한 능력을 바탕으로 다른 국가와 민족, 인종으로 분류한 이주자들이 많고, 앞으로 더욱 많아질 것이 자명하다.

우리가 그들을 바라보는 시각과, 이 소설이 포착한 부당한 시각과 겹쳐지는 부분이 있는가.


그 교집합에 대한 고민이 소설과, 다큐멘터리가 피해자이자 가해자인 우리 고등한 인간에게 던지는 숙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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