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기억 중 한 컷
우리가 겪는 수많은 경험 중 어떤 것을 뚜렷이 기억에 남길지 결정하는 권리는 아쉽게도 우리에게 있지는 않다.
태풍이 남긴 구름 사이로 태양이 지면 가까이 다가온 여름날.
열린 창문으로 습기 가득한 열풍과 함께 뚜렷하게 각인된 옛 기억이 불현듯 밀려오는 것을 보면 말이다.
때는 십 수년 전 수능시험 준비가 한창이던 여름날이었다.
전국 모든 고3 학생들을 줄 세우는 수능에서 조금이라도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노력하던 때,
우리들 삶의 낙은 일주일에 딱 두 번만 있던 체육시간에 있었다.
짙은 선글라스의 체육선생님이 무심하게 공을 던져준 순간부터 우리는 주어진 45분 동안 모래운동장을 미친 듯이 뛰어다녔다.
그렇기에 체육시간의 여파는 뒷 수업으로 이어졌다.
기진맥진한 아이들은 책상 위 교과서에 땀이 말라 허연 이마를 찧으며 잠들기 일쑤였다.
특히 연달아 점심과 체육 이후에 있던 수학 시간에는 초토화란 단어가 어울릴 정도로 교실의 아이들은 픽픽 쓰러졌다.
이 당시 우리 반 담당 수학 선생님은 네모난 안경에 체격이 좋으신 50대 베테랑 C 선생님이셨다.
C 선생님께서 젊은 시절에는 악마처럼 학생들을 쥐어 패고 다녀 별명이 호랑이였다는 소문이 있었다.
하지만 우리를 대하는 C 선생님은 화가 날만한 상황에서도 허허 웃으며 넘기시고, 동네 아저씨처럼 입담도 좋으셔서 아이들에게 인기가 좋았다.
수능을 대비하는 이상한 커리큘럼 상 수학 진도는 벌써 마쳤고, 문제집만 반복해서 풀던 수업에서 학생들이 졸거나, 머리를 박고 자더라도 C 선생님은 칠판에 백묵을 치며 묵묵히 문제풀이를 써나갔다.
평소 지각을 불사하고 부족한 수면을 채우던 나를 비롯해 몇몇은 그래도 졸음에서 살아남아 수업을 따라가곤 했다.
하지만 태양빛이 운동장을 시뻘겋게 달구는 여름날 체육을 마치고 나면, 에어컨 바람을 솔솔 맞으며 쏟아지는 잠을 그 누구도 이기긴 어려웠다.
수많은 지각으로 수면이 부족하진 않던 나조차도 스르륵 잠에 들었고, 얼마의 시간 뒤에 깨어나 보니 교실은 하교 시간 이후처럼 조용했다.
무슨 일인가 주위를 둘러보니 교실의 모든 아이들은 책상에 머리를 조아리고 잠들어 있었다.
검은 칠판의 하얀색 문제풀이 흔적을 쫓아가 보니, C 선생님은 칠판 옆 창문에서 햇빛을 받으며 커튼 사이로 운동장을 바라보고 계셨다.
평온히 잠에 든 친구들과, 에어컨 소리만 울리는 적막한 교실, 아이들의 단잠을 깨고 싶지 않았던 C 선생님의 마음과 창문에서의 모습이 함께 인화된 이 모습은 잊히지 않는 나의 소중한 삶의 한 컷이 되었다.
좋은 교육이란 그 나이에 맞는 지성과 양분을 필요에 맞게 제공하는 것이라 생각한다면, C 수학 선생님은 당시 우리에게 꼭 필요했었던 분이었다.
수많은 선배들을 쥐어패며 겪은 C 선생님 본인 경험의 결정체가 아이들의 휴식을 존중하는 자세이지 않았을까.
그날을 닮은 창 밖을 보며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