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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 빨개지는 아이

장 자끄 상뻬를 기억하며

by 김대호



열여섯 살 즈음 나는 한 가지 신체적 증상을 고치고 싶어 고심 끝에 피부과를 찾았다.

나를 고민에 빠지게 한 증상은 자주 얼굴이 붉어진다는 것이었다.

십 대 남학생에게 붉어진 얼굴은 부끄러운 것이었고, 부끄러웠기에 더욱 얼굴이 달아오르는 악순환, 당장 고치고 싶은 그것이었다.


얼마나 자주 붉어지죠, 얼마큼 빨개집니까. 지금은 괜찮아 보이는데요. 알겠습니다.

의사 선생님은 어렴풋이 기억나는 저음의 목소리로 교복을 입고 앞에 앉은 내게 이것저것 물어보시곤 진단을 내려주셨다.

학생의 얼굴은 심리적인 이유로 붉어지는 것 같네요. 시간이 해결해 줄 테니 너무 걱정 말아요.


붉은 얼굴에 대한 의료 기반의 기적적인 처방을 기대했던 나는 실망을 감추지 못하고 터덜터덜 버스정류장으로 걸었다.


그 후 몇 년이 지났다.

나는 여전히 가끔 붉어지는 얼굴로 ‘단재관’이라는 도서관 3층 구석에서 책을 쌓아놓고 히터 바람에 낮잠을 즐기는 생도가 되었다.

쌓아놓은 책 중에는 프랑스 그림 작가 ‘장 자끄 상빼’의 책도 항상 빼놓지 않았다.


상뻬의 단순하고 따듯한 그림체가 썩 마음에 들어 그의 이름을 검색해 나온 도서관의 모든 책을 들여다봤을 정도였다.

당시 싸이월드 다이어리에 허세 과시용으로

‘당신이 장 자끄 상빼의 작품을 좋아한다면 나와 친구가 될 수 있을 겁니다’

라고 아무도 원하지 않는 글을 남긴 것을 보면 내가 그를 얼마나 좋아했는지 알 수 있다.


그가 남긴 작품 중 대중에 가장 널리 알려진 작품 중 하나는 바로 ‘얼굴 빨개지는 아이’다.

내가 안 좋아할 수 없는 제목과 그림이었다.

작품 속 얼굴 빨개지는 아이는 나와 같은 콤플렉스를 지녔지만, 기억 속 피부과 의사의 말대로 시간이 주는 치료를 받아 결국 행복을 찾는다.

붉다 못해 뒤집어지는 피부와 각박한 생도생활에서 그의 이야기와 그림은 삶의 따듯한 여백을 만들어 주었다.


내게 많은 위안을 주었던 이야기를 그린 장 자끄 상빼 님이 얼마 전 작고하셨다.

전 세계 수많은 얼굴 빨개지는 아이들 중 한 사람으로서 그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얼굴이 빨개지는 신체적 특성이나, 여유 없는 생도생활에서도 결국은 행복을 찾는 방법을 알려주셔서 감사하다고.


아들 이강이도 말간 피부에 가끔 힘을 쓰거나, 몸을 뒤집기 위해 배를 들어 올리거나, 잠에 취해 울 때면 얼굴이 빨개진다.

만약 이강이가 자라며 빨개지는 얼굴을 갖게 된다면 피부과에 데려가기보다는 자신만의 처방을 찾는 것을 돕기 위해

“얼굴 빨개지는 아이” 책 한 권을 책상 위에 올려두어야겠다.


#이강이88일째

#아기 #육아 #얼굴빨개지는아이

#장자끄상빼 #sempe #R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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