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사 제노바의 “기억의 뇌과학”
오랜만에 같은 기종의 비행기를 조종했던 동료를 만나 놀랐던 경험이 있다. 몇 년 전 함께 탔던 비행기의 시동 절차를 줄줄 외우는 것이 아닌가. 동시에 내 고향이 어디인지 동료에게 수차례 이야기했었지만 그는 여전히 기억을 못 하고 있었다.
이와 같은 동료의 이중적인 기억능력에 대해 「기억의 뇌과학」 저자 리사 제노바는 당연한 현상이라 설명한다. 기억은 부호화한 정보를 기반으로 뇌신경활동의 패턴화를 통해 저장한 결과이며, 시간과 상황에 따라 왜곡되고, 변형되며, 망각하는 것이 순리라고 저자는 말한다. 또한 순간적으로 기억하고 쉽게 잊는 작업기억부터 ( 동료가 아무 관심 없는 내 고향을 들었을 때 짧은 시간이 지나면 잊는 것처럼 ), 집중적인 훈련을 통해 견고하게 자리 잡은 근육기억까지 ( 실수하면 안 되기에 철저하게 외운 항공기 시동 절차처럼 ) 각각 기억의 종류에 따라 특성이 다르다고 적절한 예시와 함께 친절히 설명한다.
「기억의 뇌과학」의 내용을 토대로 본다면, 우리 공군은 '기억'으로 싸운다고 말할 수 있다.
항공기 조종을 처음 배우는 조종사들은 익숙지 않은 다양한 정보를 '기억'해야만 한다. 비행기 안으로는 수많은 계기와 실제 항공기 상태와의 연관성을, 비행기 밖으로는 관제사와 교신하는 방법과 주파수들, 활주로에서 이륙하여 임무 지역까지 다녀오는 동안 정해진 절차와 항법 장비들의 작동법을 기억하고 다뤄야만 한다. 동시에 학생 조종사들은 엔진의 굉음 소리와 함께 활주로를 이륙하면서 암기했던 기억들이 하늘처럼 새파랗게 증발하는 당황스러운 상황도 경험한다. 그래서 조종사들은 기억을 최대한 강화하기 위해 연구실 의자에 눈을 감고 앉아 비행상황을 실제처럼 상상하며 연습한다. 이것이 조종사들의 필수 덕목인 속칭 '머리비행'이다.
'머리비행'과 같은 노력이 어디 조종사뿐이겠는가. 모든 공군인 들은 자신들의 맡은 분야에서 신경세포를 곤두세우며 군사적인 기억을 강화하고, 어떤 상황에서든 즉시 인출할 수 있도록 ' 머리단련'하고 있다. 한반도에서 빈틈없이 미사일을 방어하기 위해 교범연구와 상황 연습을 지속하고, 수만 가지 부품과 정비 절차를 체득하기 위해 어두운 비행기 내부를 살피며, 변화무쌍한 공중 상황을 통제하기 위한 절차를 수없이 시험하고, 새로운 무기와 첨단 기술을 적용할 바늘구멍 같은 방안을 찾기 위해 실험과 연구를 거듭한다.
하늘과 우주, 사이버와 전자기 영역으로 공군이 지켜야 할 영역이 늘어나고, 신체의 근육보다 두뇌 신경세포의 근육기억에 더 중요해지는 안보 환경에서 결국 공군력은 모든 공군인들의 '머리단련'을 통해 쌓은 기억의 총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오늘도 나라와 국민을 위해 자신의 두뇌를 흔들어 깨워 망각의 늪을 헤치고 '기억'을 견고히 다지며 영공을 방위하는 모든 공군인들을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