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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발과 이강이.

꽤나 위험한 이발행위로의 초대장을 받은 그의 모습

by 김대호

이발과 이강이.


21세기 한국 사회에서 남성은 어깨를 넘어가는 길이의 머리 스타일을 선호하지 않는 사회적인 경향이 있다.


그 말인즉슨 머리카락이 자라지 않는 병(이 있다면) 에 걸리거나, 두피에 머리카락이 없지 않은 이상 죽기 전까지는 이발을 계속해야 한다는 뜻이겠다.


며칠 전, 이강이도 대한민국 남자라면 모두가 암묵적으로 함께하는 이발의 행진에 동참했다.


대전 동구 이름도 멋진 가오동에 위치한 러블리 미용실이 유아 이발에 탁월하다는 한 블로거의 추천을 믿고, 경부 고속도로와 대전 통영 고속도로를 가로질러 가오동으로 달렸다.


러블리 미용실에 입장하자, 원장님은 신속히 이강이를 이발용 슈트로 갈아입히고 뽀로로 자동차에 앉히라는 아빠로서의 역할을 당연한 듯 지시했다.


나는 미용실 신입 인턴이 된 듯 이강이를 달래며 어린이용 이발 슈트를 입히고, 멋지게 빨간색으로 도색된 자동차형 의자에 이강이를 앉혔다.


첫 번째 사진처럼 본인의 외모에 만족하는 타입인 이강이는 거울을 바라보다가 빨간 자동차의 버튼과 효과음을 탐색하고, 이발자의 정신을 홀리기 위한 상어송 유튜브에 한눈까지 팔았다.


하지만 이내 주변 상황이 자신의 인생인 1년 2개월 동안 겪었던 ‘평화로운’ 상황이 아님을 눈치채고는 지금까지 본 적 없는 맹렬한 울음과 눈물을 뿜어내었다.


순간 약 삼십여 년 전 비슷한 상황에서 눈물을 흘리던 내 모습이 기시감으로 엄습했다.


그 시절 미용기술을 연마한 이강이 할머니, 즉 나의 엄마는 시골 할머니들의 하얗게 센 머리카락을 오징어 먹물 라면 면발같이 바꾸는 파마와 염색 기술로 살림비용을 충당했다.


동시에 이발 기술도 연마해 일명 호섭이 머리, 즉 이마를 가로지르는 일자형 앞머리로 대표되는 내 머리가 양 눈썹을 넘을 정도로 길면 주저 없이 커트보(이발할 때 머리카락이 묻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목둘레부터 입는 보자기)를 씌우고 나를 방바닥에 앉혀 이발을 해주셨다.


이미 나와 래포가 형성되어 있는 엄마가 직접 머리를 깎아 줌에도 불구하고, 어린 나는 그 상황이 무척이나 불편하고, 참기 힘들고, 고통스러워 눈물을 흘리고, 머리를 흔들고, 떼를 썼던 기억이 선명하다.


그때의 기억을 기반으로 가만 생각해 보면 이강이의 눈물과 행동은 당연한 것이다.


엄마가 아닌 본 적도 없는 여성이, 자꾸 내 머리를 만지는 것도 모자라 빛나는 은색 기구로 사각사각 자를 때마다 검은 가루가 날리는 상황에서 자꾸 머리를 움직이지 않게 고정을 시키려고 하니 불안하지 않으면 이상한 일이다.


불안감은 지잉 소리를 내는 기구(바리깡)의 등장과 함께 최고조에 달한다.


특히 이 기구는 작고 예민한 귓바퀴 주변에서 주로 옆머리를 자르며 소리를 내기 때문에 정상적인 아이라면 무서워 미칠 노릇일 것이다.


만약 이강이가 이러한 상황에서 울지도 않고 가만히 있는다면 참 대견하다고 할 게 아니라, 부모로서 큰 걱정을 해야만 한다.


이런 ’비정상‘적인 상황에서 울지 않는 아이는 다른 위험한 상황에서도 위험을 감지하지 못하거나, 울지 않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일정한 눈물의 시간이 흐른 뒤 이강이는 이발을 마칠 수 있었고, 아빠로서 이강이에게 세수를 시키라는 원장님의 지시에 성실하게 머리카락을 떼준 후 이강이의 첫 이발의 대단원의 막을 내릴 수 있었다.


마치 진급을 앞둔 육군 중령의 머리처럼 단정해진 하지만 육군 중령보단 귀여운 이강이의 머리를 보며, 역시 남자는 머리빨이라는 상투적인 멘트를 되새기며 이강이가 다음 이발 행위에는 조금 더 편안함을 느끼길 바란다.


공군사관학교 일등이발사 황비홍과 해리포터가 머리카락을 난도질하더라도 이발의자의 편안함에 잠을 청했던 아빠처럼 말이다.


상황 파악이 덜 된 이강이가 자기 외모에 취해 있다.
육군 중령처럼 단정한 이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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