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비로서의 바비와, 자신으로서의 자신으로 산다는 질문.
예전부터 사람들이 내게 물으면 절대 대답이 바뀌지 않는 질문 두 가지가 있다.
첫 질문은 만약에 아들이나 딸이 사관학교에 간다면 어떻게 할 것이냐 이고,
두 번째 질문은 다시 태어나면 다시 아들로 태어날 것이냐, 아니면 딸로 바꿔서 태어날 것이냐 이다..
첫 번째 질문에 대한 대답은 언제나 아들이라면 추천하지는 않지만, 만약 본인이 계속해서 고집하면 보낼 것이고(사관학교에 진학할 수 있는 신체적, 지성적 조건을 갖추었다면),
딸이라면 안 보낼 것이라고 대답했다.
그러면 백이면 백 ’왜 딸은 안 보내느냐?‘라고 다시 묻는다.
그러면 정확한 이유를 대지는 못했지만 정리되지 않은 어렴풋한 느낌으로 사관학교에서는 딸이 포기해야 할 게 너무 많다고 대답을 했다.
두 번째 질문, 즉 다시 태어난다면 원하는 성별에 대한 대답은 항상 나는 다시 태어나도 아들로, 다시 말해서 남자로 태어나고 싶다고 대답했다.
그 대답에는 일면 이 사회에서 남자로의 삶에 대한 만족감이나 유리함을 감지하고 있었기 때문이지 싶다.
바비는 개봉 전부터 그레타 거윅 감독, 마고로비, 라이언 고슬링 주연, 평론가의 호평 등의 이유로 난이에게 보러 가자고 얘기한 영화다.
영화 전반에 핑크색과 페미니즘이 깔려있기에 남자 관객들에게는 여자친구나 아내 혹은 여사친이 옆에 있어야만 어쩔 수 없이 보러 왔다는 핑계로 볼 수 있다는 높은 남성 진입장벽의 영화로 소문이 났다.
실제로 내가 영화를 봤을 때 영화관 좌석의 절반 조금 못 미치는 관람객 수에도 불구하고 나를 제외한 남자 관객을 딱 한 명만 볼 수 있었다.
영화는 흐름이 중반부가 지나고 절정 단계로 치달으면서 계속해서 관객들에게 우회적인 질문을 퍼붓는다.
그리고 나 개인적으로는 서두에 얘기한 두 가지 질문에 대한 나의 대답이 왜 저렇게 굳어졌는지에 대한 어렴풋한 느낌에 대한 구체적인 단서도 발견할 수 있었다.
그 단서란 여성은 동료로서, 친구로서, 엄마로서, 직장인으로서, 배우자로서, 시각적인 대상으로서 특히 군대에서는 군인으로서 사회와 군대 조직과 남성과 (일부) 여성으로부터 고정관념에 기반한 과도하고 다양한 기대를 받게 된다는 것이었다.
다양한 외부의 기대를 만족하기 위해서는 개인적인 가치나 지향점을 포기하게 되는 일이 (태어나지도 않은) 내 딸에게는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감정을 어렴풋하게 느꼈던 것이다.
영화는 그러한 다양한 기대로부터 벗어나 ‘바비 그대로의 바비‘ , 즉 여성 그대로의 여성, 나아가 ’켄 그대로의 켄‘ 까지 포함한, 즉 자신 그대로의 자신으로 살자고 말한다.
자신을 제외한 외부에서 무엇을 기대하든 자신이 원하는 옷을 입고, 원하는 지향점을 향하고, 원하는 삶을 살자고 말한다.
그렇게 바비 그대로의 바비로서 인형이 아닌 인간의 삶을 살기로 한 바비가 마지막으로 우리에게 묻는다.
그렇게 사는 삶의 의미, 목표가 뭐죠?
요즘 읽고 있는 ‘문과 남자의 과학 공부’ 책의 저자 유시민 작가님도 신기하게 바비가 했던 질문과 똑같은 질문을 책 속의 글로서 이야기하고 있다.
삶의 목표, 목적, 지향점, 의미는 무엇인가.
유시민 작가님이 과학을 공부하며 깨달은 대답은 ‘물리학, 뇌과학, 생물학, 천문학, 화학, 수학적으로 보면 존재한다는 자체가 기적에 가까운 인간의 삶은 사실 정해진, 기대된 목적이나 의미는 없다’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 말이 곧 무의미를 말하는 것은 아니라고 작가님은 덧붙인다.
정해진, 기대된 목적과 의미가 없다는 것은 곧 자신이 원하고 좋아하는 의미를 찾고 그것으로 삶을 채우면 된다는 자유를 의미한다고 말한다.
한 예시로 유시민 작가는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들을 초대해서 직접 만든 요리를 대접하고, 사람들이 요리를 좋아하고, 요리를 맛보며 나누는 대화의 시간을 좋아하기에 그런 시간들로 삶을 채우고 싶다고 이야기한다.
바비 : (켄과 다르게 생긴 유시민을 바라보며) 그럼 삶의 의미, 목표가 없다는 말이 그렇..게 나쁜 게 아니네요?
유시민 : (치아를 드러내고 활짝 웃으며) 맞아요. 삶의 공백이 오히려 무한한 자유인 동시에 자신의 취향과 선택에 대한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열린 가능성으로 빛나는 거죠!
바비 : (유시민의 손을 잡으며) 너무 고마워요 선생님. 저를 만든 분도 비슷한 의미의 말을 해주셨거든요. 그분의 손을 잡았을 때 느꼈던 감정이 아직도 생생해요.
유시민 : (여전히 활짝 웃으며) 그 분과 손을 잡았던 그런 순간들과 감정들로 삶을 채우라고 우주가 우리에게 기적 같은 기회를 준거겠죠.
바비 : (버켄스탁으로 땅을 세게 치며) 맞아요! 이제 앞으로의 삶이 너무 기대되네요.
유시민 : (여전히 활짝 웃고, 볼이 발그레하다.) 그것 참 다행입니다.
켄 : (밍크코트의 단추를 채우며)… Excuse me Sir. 저랑 잠깐 얘기 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