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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대호 Sep 11. 2023

오펜하이머와 과학 수행평가

프로메테우스는 후회하는가?


고등학교 1학년 시절 과학시간에는 수행평가를 위해 반 아이들이 돌아가며 과학과 관련된 주제에 대해 짧은 수업을 했다. 나는 주제를 고민하다 인터넷에서 본 ‘서울에 핵폭탄이 떨어진다면’ 이라는 자극적인 제목의 글을 기억해 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신빙성이 의심되는 이 글에서는 만약 서울에 핵폭탄이 떨어지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설명을 해 놓았고, 핵폭발 반경 몇 킬로 미터 안의 사람들은 빛과 함께 즉시 증발한다는 식의 자극적인 내용이 주를 이루었다.


나만의 서울 핵폭발 강의를 준비하며 나는 흥미가 증폭돼 핵폭발의 원리를 인터넷으로 검색하며 공부를 이어갔다. E=mc2 이라는 유사 뇌과학 학습기 엠씨스퀘어만큼이나 유명한 공식을 토대로 아주 작은 질량이라도 에너지로 바꿀 수 있다면 빛의 속도의 제곱이라는 어마어마한 양의 에너지가 발생된다는 원리를 농축된 우라늄 235의 연쇄 반응을 통해 실현한다는 내용이었다. 연쇄반응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농축 우라늄을 일정한 질량 이상으로 만들어야 하는데, 작은 폭발을 이용해 임계질량 이하의 우라늄을 한 데로 모으는 작용이 기폭제 역할을 한다고도 했다.

 

과학 수행평가의 차례가 돌아오고, 나는 공부한 내용을 꽤나 열정적으로, 정해진 제한시간을 넘겨가며 발표를 했다. 아이들의 반응도 꽤 좋았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이런 내 과학적 흥미와는 별도로 1학년 말 나는 문과를 선택하고, 우라늄과 양자역학으로부터 먼 쪽의 삶의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20년 뒤 난이와 한 영화를 보며, 내가 신나서 떠들었던 수행평가의 발표 내용이 사실은 수많은 선택과 고뇌의 산물임을 발견하게 된다. 물질로부터 변환한 무지막지한 에너지를 목적이야 숭고하든 어찌 됐든 인간이 대상인 무기에 사용한 순간, 그 이전으로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역사의 단계로 넘어갔으며, 80여 년이 지난 지금도 국가 전략과 군사적 분쟁과 국제 평화의 핵심 키워드로 남아있다.


특히나 한반도에서.


프로메테우스는 매일 독수리에게 간을 쪼아 먹히면서 인간에게 불을 준 사실을 후회했을까. 아마도 멀리 핵폭발의 버섯구름을 보는 순간만큼은 불의 수여를 후회했을 것이다. 같은 순간 똑같이 빛나는 버섯구름을 바라보며 한 사람이 후회를 하고 있었는데, 이 영화는 그의 이야기다.


그의 흔들리는 삶과 눈빛에 관한 이야기다.


줄리어스 로버트 오펜하이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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