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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대호 Oct 21. 2023

‘사형제도’와 인간

영화 ‘열두 명의 성난 사람들‘이 내게 말한다.

무더운 방에 열두 명의 남자들이 앉아 있다.

그들은 아버지를 찔러 죽였다는 의심을 받는 아이가 유죄인지 무죄인지를 정할 배심원들이다.


만장일치로 의견이 모아져야 나갈 수 있는 무덥고 좁은 방.


살인현장을 목격했다고 주장하는 증인들의 증언이 있었기에 방의 분위기는 유죄 쪽으로 흘러간다.

유죄로 배심원들이 평결을 내린다면 소년은 사형이 확정된다.


모두가 금방 끝날 것이라 생각한 거수투표에서 한 남자가 소년이 무죄일 수도 있다는 주장을 한다.

거친 반발 속에서 그는 조용히 본인의 소신을 펼친다.


99퍼센트의 확률로 유죄더라도, 1퍼센트의 무죄 가능성이 있다면 그 1퍼센트에 대한 충분한 논의를 거쳐야 하며,

그 논의의 결과가 한 사람의 목숨이 걸린 문제라면 더욱 그렇다는 것.


좁은 세트장에서 12명의 배우들이 주고받는 대사를 통해 99퍼센트의 유죄에 대한 확신은 사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불완전함, 즉 편견과 오해, 이기심, 착각, 한계의 총합이었음이 서서히 드러난다.


한 가지, 한 가지씩 인간의 불완전함이 드러날 때마다 유죄의 가능성은 줄어들고, 영화를 보는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인간이 지닌 한계라는 거울로 자신과 타인을 비추게 된다.


결국 열두 명의 배심원이 모두 소년이 유죄가 아님을 인정하곤, 다시 그들의 일상으로 사라진다는 이야기.


얼마 전 우리나라에서 사형제도에 대한 부활 논의가 있다는 기사를 보았다.


이 영화는 인간이 타인을 살해할 수 있는 어리석은 존재인 것은 맞으나, 동시에 온전히 완벽한 판결을 내릴 수 있는 존재가 아님을 인정해야 한다고 내게 이야기한다.


사형제도의 부활 문제는 사형해 마땅한 죄악에 대한 분노로 결정하는 것이 아닌, 인간이 내리는 판결의 오류 가능성에 대한 논의로 정해져야 할 것이다.


나도 이 영화를 만든 사람들의 의견에 동의하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나직이 말한다.


“Not guil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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