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천년의 화려한 팡파레가 울려퍼지던 신정 무렵,
낯선 미래도시로 타임머신을 타고 온 사람처럼
2000이란 숫자가 무척 낯설 때가 있었습니다.
함께 산행하던 동기의 죽음을 접했을 때,
바로 며칠 전까지도 그렇게 열심히
신년계획을 얘기하던 그 사람이 생각나서
무척이나 순수하고 진지했던 서른세살 젊은 청춘이
그렇게 지는구나 싶어서 한동안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나고 죽음의 이치를 모르는 것도 아닌데
사람의 목숨이란 왜 이리 허망한 것이냐.
산다는 게 다 무어냐. 한참 동안 그런 생각을 했었지요.
그리곤 찬바람 부는 동성로를 한 시간 가까이 돌아다녔습니다.
땡땡이 치고 돌아다닌 그 한 시간
현란한 네온사인 하나둘 켜지는데
뭐가 그리 부끄러웠는지 갑자기 도망치듯 회사로 돌아갔습니다.
남은 자들이 할 수 있는 일이란 고작 그의 존재를 확인시키는 옷가지며
삶의 흔적들을 거두는 것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인사.
"잘 가라, 김OO씨. 영원히 쉴 당신의 집으로"
라는 일기를 썼던 기억.....
살면서 점점 죽음을 접하게 되는 횟수가 많아집니다.
누구나 영원히 살 수 없음을 알면서도
이제 더 이상 그의 모습을 볼 수 없다는 사실에
잠시 동안, 때로는 평생 동안 그를 그리워하게 됩니다.
그리곤 한껏 숙연해진 마음으로 저 자신을 한번 돌아보게 되구요.
그런 걸 보면 '떠나는 사람의 마지막 일이란 남은 이들을
더 열심히 살게 하는 힘을 주는 것'이 아닌가 가끔 그런 생각도 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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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운 사람이 유명을 달리한 것은 아니지만 마음이 착잡합니다.
중앙로역 그 시커먼 지하동굴은 늘어진 엿가락 같은
타다만 전화기와 매캐한 가스로 아직 지옥입니다.
실종자를 찾는 이들의 염원과 안타까움이
살아 남은 자들의 울분과 분노가
지치고 지쳐버린 영혼의 흐느낌이
온통 뒤범벅이 되어 있습니다.
도심 한복판 일부 제한구역에선 부고가 날리구요.
바로 그 한 블럭 사이에 두고
문화 배타지구 대구에 외래문화의 강펀치를 날리며
그 이름도 향기로운 롯데백화점이 문을 열었습니다.
교통의 1번지를 외치며 새로이 들어선
대구역사(大邱驛舍)도 반짝거립니다.
그 바로 옆 번개시장이며 그 길 건너 오래된 동아백화점,
교동시장 거기에 생명줄을 걸고 있는 이들은
어쩌면 벌써부터 우리와는 다르게 생겨 먹은 모델들
대형 광고물 속 미끈매끈한 그들 모습에
또 한번 잔뜩 마음 졸이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또 2003 겨울이 가고 대구에도 봄이 오고 있습니다.
자꾸만 소화불량, 체기에 시달리며
멈칫멈칫 절름거리는 봄이
저만치서 가만 기다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