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산

by 율팬

비 오는 날 지하철을 탔다. 맞은편에 앉은 사람 우산에서 물이 뚝뚝 떨어진다. ‘어, 누가 울고 있네.’라는 생각이 든 순간, ‘우예 우산이 우노?’ 하는 마음과 함께 ‘우산이나 사람이나 별다를 게 뭐 있노?’ 이런저런 생각이 꼬리를 문다.


저것은 빨간색, 빛바랜 2단 우산이지만, 파란색 때깔 좋은 3단 우산도 있고, 알록달록 꼿꼿한 키다리 우산도 있다. 빨주노초파남보 무지개 빛깔부터 꽃, 구름, 미피, 체크, 무늬 또한 다양하며, 천, 비닐, 종이 따위 재료도 각양각색이다. 어떤 것은 쉬이 젖어 금방 찢어지고, 어떤 것은 방수가 되어 억수 비에도 끄떡없다.


지금 나는 어떤 우산일까. 언젠가 반짝반짝 비닐 포장이 된 채 진열대에 곱게 놓여 있던 나. 이제는 더 이상 선택의 기다림도 없지만, 때와 장소에 맞게 나래를 활짝 펴고, 햇빛도 막고 거센 바람도 맞고 싶다. 계단을 오르내릴 때도 뾰족한 끝으로 남을 위협하거나 공격하지 않고, 적당한 거리에서 여유롭게 흔들리며 콧노래에 장단도 맞추고 싶다.


하지만 크기가 너무 크지는 않겠다. 소낙비가 쏟아질 때 어떤 사람들은 커다란 우산이니 여럿이 써도 된다지만, 정작 나중에 목적지에 닿아서는 한쪽 팔이 젖었다며 남 탓을 하기에. 차라리 혼자 쓰기에는 조금 넉넉하고 둘이 쓰기에는 다소 모자라 보여서, 곁을 내주었을 때 함께 간 옆 사람이 고마워할 만큼, 그 정도 크기라면 어떨까 싶다.


우산을 보고 있노라니 떠오른 또 한 자락. 아롱아롱 꽃과 나비, 동글동글 잎과 줄기, 좁은 방 안을 가득 메우던 엄마의 양산이 생각난다. 드르륵드르륵 재봉틀 소리가 멎었나 싶으면 노루발 떠난 조각 천에서 꽃을 피우던 엄마의 정원. 아이보리, 연분홍, 연보라, 각색으로 수놓인 꽃들 옆에서 어린 나는 천 쪼가리를 얻어 인형놀이를 하곤 했다.


가진 것 없어도 함께여서 행복했던 순간, 엄마는 세상의 어떤 비바람도 우리를 비켜갈 줄 아셨을 게다. 하지만 마흔 초반에 혼자 된 엄마는 아버지 가시고도 이십 년을 넘게 할머니를 모셨고, 지금까지 자식들의 우산이 되고 계신다. 정작 당신 무릎뼈는 다 닳는 줄 모르고 걸레질도 꿇고서 하지 말라는 엄마, 당신이 만든 그 옛날 정원의 아름드리 그늘이, 오늘을 사는 나에게 최고의 우산임을, 엄마는 알고 계실까?


갑자기 내린 비에 사다 놓은 우산이 서너 개 되었다. 없으면 다시 사기 일쑤지마는 한 번 쓰고 버리는 우산일지라도 그 존재의 소중함을 잊지 말기를, 나 또한 평생 잃어버리지 않을, 내 아이의 든든한 우산이 되기를 나직이 빌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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