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제 : 기타는 내게 말하네
아이방 침대 옆에 기타가 세워져 있다. 저것은 너무 오래 방치되었다. 버려두고자 한 게 아니었는데, 어쩌다보니 케이스를 벗겨 본 지도 한참 되었다. 줄은 녹슬고 몸판마저 휘어져버린 기타. 이제 정말 작별을 고해야 하나.
저 기타는 내가 대학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듣고 아버지가 사 주신 선물이다.
“정화야, 그 동안 정말 고생했다. 뭐 갖고 싶은 거 없나?”
“뭐, 별로……. 필요한 거 없는데요.”
“그래도 생각해 봐라. 아빠가 뭐라도 하나 사주고 싶어서 그런다.”
“음, 그러면 아빠. 기타를 하나 갖고 싶어요.”
그렇게 말하는 내 마음은 죄송하면서도 좋았다. 기타는 내게 꿈이고 동경이었다. 왠지 기타 하나만 있으면 나는 마냥 행복할 것 같고, 묶인 데 없이 자유롭게 세상 어디든 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것은 착각이었다. 나는 기타를 얻었지만 날마다 슬프고 답답하였다. 대학 교정에 개나리가 피고 진달래, 철쭉이 지천으로 피어났건만 내 맘에는 봄이 오지 않았다. 내 마음은 남동생이 떠난 그 겨울에 머물러 있었다.
초등 6학년이던 남동생은 내가 대학 입학 오리엔테이션을 며칠 앞둔 어느 날, 식구들 곁을 떠났다. 급성골수성 백혈병으로 1년 남짓한 병원 생활 끝에 나와의 골수이식 수술을 앞두고 합병증이 생긴 것이다.
눈이 펄펄 내리던 겨울 밤, 차가운 영안실 복도 끝에서 아버지는 실신 직전의 엄마 몰래 나를 부르셨다. 그리고는 느리고 힘겹게 말문을 여셨다.
“정화야……. 사람이 죽으면 우리 몸은 나무토막과 같다. 땅 속에 들어가면 썩은 나무가 된다.”
“예.”
“우리 석이를 병원에 주면 어떻겠노? 우리 석이가 다른 애들을 살릴 수도 있다는데…….”
“예에…….”
나는 고개를 떨구었다. 애써 의연한 듯 이야기하고 있었지만, 아버지 목소리는 떨렸다. 비 맞은 고목의 밑둥치보다 더 짙은 검회색으로 바싹 마른 아버지는 누군가 손을 대면 금방이라도 바스라질 것 같았다.
“엄마한테는 말하지 말고…….”
“예에…….”
울음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아버지는 긴 한숨을 한번 쉬고는 계단을 올라가셨다. 검은 밤하늘 아래 우두커니 서서 아버지는 담배를 오래오래 태우셨다.
그로부터 3년 뒤 어느 새벽, 아버지는 집에 오는 길에 교통사고를 당했다. 낯선 이의 전화를 받고 엄마와 함께 병원 응급실로 달려갔을 때, 아버지는 이미 혼수상태에 빠져 있었다. 친척 오빠들과 엄마는 ‘나중에 후회라도 안 하게’ 뇌수술을 하기로 결정했다. 수술은 적어도 서너 시간, 길면 대여섯 시간이 걸릴 거라고 했다.
하지만 의사들이 수술실로 들어가고 두 시간도 안 되어 아버지는 침상에 실려 나왔다. 뇌 속 압력이 너무 높아 도저히 수술을 할 수가 없더라고 했다. 머리칼 하나 없이 아이보릿빛 압박붕대로 칭칭 동여맨 아버지의 머리는 놀이공원에서 파는 솜사탕을 두 개쯤 이어붙인 것처럼 커 보였다. 그간 참고 참아온 아버지의 슬픔이 위장과 소장, 대장, 방광까지 다 차고 뇌 속 구석구석까지 물풍선처럼 빵빵하게 차올랐다는 생각이 들었다. 핏기 하나 없는 아버지 얼굴을 얇은 수건으로 닦아드리며 나는 속으로 울었다.
‘아버지, 이제 고만 슬퍼하세요, 고만 슬퍼하세요’.
엄마와 나의 기도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의 의식은 돌아오지 않았다. 다음 날 우리는 아버지를 집으로 모셔왔고 장례식을 치렀다. 모든 일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대학 3학년, 나는 더더욱 기타를 칠 수 없었다. 동기들이 한창 기타 연습을 하고 무대에 오를 때, 나는 침묵하는 기타를 안고 기타 케이스조차 벗기지 못했다. 아니, 케이스를 벗긴 기타를 품에 안았다가는 금방 도로 닫고 말았다.
결혼을 하면서 나는 기타를 챙겨 왔다. 그래도 기타를 치지는 못했다. 작고 아담한 몸통에 부드러운 음색을 가진 나의 기타. 그것은 자유로이 하늘을 날아다니며 봄날 피어나는 꽃들과 여름날 바다의 파도와 가을의 낙엽과 겨울의 눈부신 풍경을 연주할 수 있었건만, 숨 쉴 곳 없이 갑갑한 기타집 안에서 다 말라비틀어지고 휘어졌다.
“이거, 줄 좀 갈 수 있을까요?”
“아이고, 이거, 정말 오래 된 거네요. 요즘은 이런 기타 안 나와요.”
“예... 어떻게 쓸 수는 있겠습니까?”
“거참, 데크가 휘어서 고쳐도 안 될 텐데…. 새로 하나 사시죠?”
고장이 난 걸 몰라서가 아니었다. 실은 지난해에도, 그 몇 년 전에도 나는 악기사를 찾았던 적이 있다. 그때도 악기사 주인은 기타를 못 쓴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무엇을 기대하고 있었던 걸까. 새 봄이면 새로 피어나는 꽃들처럼 기타가 내 마음을 알고 다시 한 번 맑은 소리를 들려줄 거라 믿었던 걸까. 주인장 말에 괜히 날을 한번 세우고는 기타를 안고 돌아오곤 했다. 기타는 방 한 구석의 제자리에 세워졌고, 그렇게 1년이라는 시간이 또 흘러갔다. 그런데 오늘 문득, 그것이 말을 거는 게 아닌가.
‘이제 그만하면 되었어. 너도 예쁜 옷 입고 봄나들이도 가고 그래. 가볍게, 즐겁게, 신나게 노래 부르면서 살아….’
아이의 책상을 닦던 나는 그만 방바닥에 퍼져 앉아 펑펑 울었다. 사십 년이 넘도록 살면서 속으로만 삼킨 슬픔이 여름날 폭우에 불어난 도랑물처럼 걷잡을 수 없이 콸콸 쏟아졌다.
해가 까무룩 넘어가고 창밖이 어둑해질 때서야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아이가 올 시간이구나.’ 그제야 눈가를 훔치고 기타를 집어넣었다. 그리고 20대 초반, 날마다 아침마다 했던 다짐들을 다시 떠올렸다.
‘나는 더 이상 슬픔에 빠져 있지 않겠다. 먼저 죽은 동생 몫까지 열심히, 비명에 가버린 아버지 몫까지, 옥수수가 알알이 열매를 맺듯이 그런 하루하루를 채워가겠다.’
조만간 나는 기타를 버리거나 새로 장만하거나 둘 중 하나를 택할 것 같다. 아니, 어쩌면 다시 제자리에 둘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것이 어떤 선택이든 내 마음의 기타는 영원히 아름다운 선율로 내가 힘들 때나 기쁠 때나 나와 함께 하리라. 그리고 나는 나의 기타에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리라. 그것이 내게 말을 건 기타에 대한 대답이자 최소한의 예의가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