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촌유원지 금호강 가에는 수 십대의 오리배가 늘 거기 있다.
크고 작은 크기의 차이도 있고 예쁜 놈, 미운 놈, 생김새도 다르지만
저들의 역할이란 무릇 사람을 태우는 일. 삼삼오오 놀러 나온 친구도 좋고,
결혼 몇 년 만에 나왔다는 가족도 좋고, 알콩달콩 밀어를 속삭이는 연인도 좋다.
노란 부리에 순박하기 짝이 없는 오리배는 두둥실 물결에 몸을 맡긴다.
그리고 그 강, 유원지의 허리깨 되는 곳엔 그 이름도 유명한(?) 출렁다리가 있다.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아니, 벌써 수십년 전부터
효목동과 방촌동을 잇는 최단 거리의 지름길로서,
어린 날 까마득한 추억 속에서 흔들림의 실재를 느끼게 해 주었던 출렁다리.
그것 또한 빛 바랜 추억을 안고 바람을 따라 조금씩 흔들리고 있다.
얼마 전엔 아이랑 그 강변을 걸었다.
예의 그 오리배는 그 날도 대여섯 척 유유자적하고,
유원지 건너 새로이 단장한 체육공원이며 수변공원 쪽 길은
마라톤 하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길게 자란 수풀 사이사이
꽹과리를 배우고 가르치는 사람들 모습도 보였고,
긴 낚싯대를 드리우고 앉아 세상 시름을 잊고 있는 사공의 모습도 보였다.
아이는 내심 물 위에 뜬 오리배가 타고 싶었던지 강변을 걷다말고,
오리배는 혼자서도 탈 수 있느냐, 저도 크면 탈 수 있느냐고 묻더니,
한편으론 물이 겁나 어떡할까 싶은 표정으로 엄마는 타 보았느냐,
엄마랑 함께 타면 되지 않겠느냐 말했다.
그러고 보니 가만, 내 기억에도 오리배를 타 본 기억이 없었다.
그 강가, 녹음 우거진 그 강가에서 아버지, 어머니가 오랜 지인들과 노래를 부르고
세상 근심 걱정이라곤 하나 모르는 어린 내가 내 키만큼 숭숭 자란 갈대를 잡고 서서
어설픈 모습으로 찍은 사진을 봐서는 적어도 한 번쯤은 오리배를 탔음직도 하건만
어찌된 셈인지 금호강 오리배에 대한 기억은 당최 나지 않았다.
찬 바람 부는 겨울날이면 그 강가 즐비한 포장마차에서
해삼이며 멍게를 앞에 놓고 소줏잔 기울이던 아버지도 기억나고
아버지가 드시던 그 해삼, 붕대에 칭칭 싸맨 채 잠들곤 하던 어린 동생,
동상에 걸렸던 기억도 나는데 어째서 오리배에 대한 기억은 없는 것일까.
늘 가까이에 있으면서도 정작 탈 생각은 못했던 걸까.
아니면 겁이 나서 아예 바라만 보았던 것일까.
평화로운 일요일, 강변을 산책하며, 삶은 어쩌면 바다에서 오리배 타기나
바람 부는 날 출렁다리 건너기와 같은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순간순간 감정의 기복이 있듯이 좋은 일이 있는가하면 나쁜 일이 생기고,
나쁜 일이 있는가하면 좋은 일이 생긴다. 그것은 수평적이기도 하고 수직적이기도 하다.
내가 기쁠 때 다른 이들은 슬플 수 있고, 내가 슬플 때 다른 이들은 기쁠 수 있으며,
어제 기뻤으면 내일은 슬플 수 있고, 어제 슬펐으면 내일은 기쁠 수 있는 것이다.
세상살이란 그런 점에서 누구에게나 공평하다.
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누구나 희노애락,
생로병사, 삶의 과정을 밟는다.
예전에는 미처 깨닫지 못했지만, 아니
생각조차 못했지만 이제는 어떻게 하면 순간순간
보다 더 감동적으로 살 수 있을까를 생각한다.
아주 거창한 이벤트를 만들어서가 아니라
사소한 것이라도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우리 인생에선 중요한 일인 것 같다.
내일은 오늘이 되고 오늘은 어제가 되고,
미처 깨닫지도 못하는 순간에 시간은
그렇게 마른 모래처럼 손가락 사이를 빠져나가 버리니까.
함께하는 그 순간을 소중히 간직하는 것,
그것이 삶의 색채를 더 영롱하게 하고 아름답게 하는 것 아닐까.
오늘도 퇴근길에 오리배를 보았다.
수면에 어리는 불빛, 출렁다리도 그대로다.
아마도 차가운 바람 수면을 훑고 지나가면
고요한 적막, 어둠 속에서 겨울은 더 깊어질 것이다.
다음 주에는 식구들과 오리배를 타러 가볼까.
그러면 오리배, 동그란 눈을 하고
잘 왔다 잘 왔다 고개를 끄덕여 줄지도 모르지......
-- 2002년 율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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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년 1월 2일. 동촌유원지 구름다리는 철거되었다. 1968년 관광용으로 만들어졌다던 그 다리가 해맞이다리에 온전히 자리를 내어주고 영원히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이 무렵, 동촌유원지 식당 쪽에서 있는 모임에 가면서 나는 새로 난 다리를 건너갔다. 2011년에 개통되었다는 해맞이다리는 튼튼한 위용을 자랑하며
팔공산과 금호강 풍경을 모두 품어 안고 있었다. 그날 모임에서 어느 분이 말씀하셨다.
“선배는 후배들 거름이 되어야지요.
똘똘한 후배들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떠날 때 떠나야지요.”
새해를 맞으며 지난해를 돌아본다. 나는 어떤 선배요, 어떤 후배였을까.
남아공 넬슨 만델라 전 대통령처럼 떠난 뒤에 더 칭송받고
그리워지는 인물이 될 수 있을까.
지나간 날들은 아쉽고, 새로운 날들은 설렌다.
사라지는 것들은 그립고, 함께하는 것들은 고맙다.
가는 해와 오는 해, 가는 자와 오는 자,
사람에게도 물건에게도 모두가 해당하는 말이리라.
날마다 구름다리를 지켜보던 강변의 오리배도 마지막 인사를 전했을까.
눈에서 안 보인다고 사라지는 게 아니에요.
잘 가요, 구름다리. 포근한 구름 속, 희망의 나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