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한잔 하셨네

by 율팬

퇴근길, 지하철 타러 오다가 문득
모과향 냄새를 맡았습니다.

설 무렵 친척집에 가면 짙은 흙빛 아련한 동네 어귀에서
다 쭈그러진 국자에 누런 설탕 녹이고
한 스푼 소다를 넣어 방그랗게 불린
일명 '포또, 뽑기'의 향기처럼 단,
흰설탕은 도저히 낼 수 없는 달큰함을

오늘,
지하철표 내러 오는 길
지나치는 사람에게서 맡은 거지요.

그런데 그게요, 참 우습게도
동시에 아버지 생각이
난 것은 웬일일까요.

.............................................................


아버지는 K2의 군무원이었습니다.
수리창에서 일을 하셨지요.
'창의창안'인가 뭔가 하는 걸루요.
빛나는 상과 부상을 받을 정도로
아버지는 훌륭한 사람이었습니다.

오후 다섯시, 아버지의 퇴근시간,
비가 오거나 눈이 오는 날이면
나는 부대 후문 지나는 철길 가에서
보초병들의 휘파람소리를 듣곤 했죠.

"어이, 꼬마야. 너거 언니 있나?"


대답도 못하고 땅만 바라보다가
사이렌 소리가 들렸던가 그 문이 열렸던가
하나둘 사람들
걸어서, 혹은 자전거를 타고
피곤한 하루 석양에 접으며
솔솔 바람처럼 빠져 나가면

아무리 찾아도 아버지는 보이지 않고
울상이 된 얼굴로 문만 바라보는데
바랜 청녹색
군복인가 작업복
아버지 자전거가 얼핏설핏 보이면

'히야∼ 아빠다'

벼락같이 달려갔지요.


비가 오거나
눈이 오거나
뒷자리에 앉은 나는 우산을 들고
아버지는 남는 손 하나 없으면서
되려 그것을 받아들려 하고....


때로 후문 앞 대폿집에서
아니 실은 자주 대폿집에서
막걸리 기울이던 아버지 모습

내가 자란 어느 날에도
그렇게 마중 한 번 간 적이 있는데
갑자기 늙어버린 그 모습이 서러워서

"아빠, 내가 술 한잔 살까?"했더니
"어이구, 네가 무슨 돈이 있다고....."

.........................................................


그렇게 시간이 흘렀습니다.

진작에 그 모과향기
까칠한 수염이 따가워도
인상 쓰거나 얼굴 돌리지 않고

"아버지, 오늘 한잔 하셨네."

그렇게 말할 수 있었더라면
지금처럼 이렇게 그 달큰함이
그리웁지는 않았을 것을요.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돈방석에 앉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