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으로 가는 길

by 율팬

2002. 집으로 가는 길


어느 가을날, 회사에서 집까지 걸어서 간 적이 있습니다.

2시간 30분쯤 걸렸을까. 집에 도착하니 다리가 후들후들했지만,

오래 미뤄두었던 숙제를 마친 것처럼 마음은 개운했습니다.

아침에 출근해서 그 얘기를 했더니

'돌았다' '드디어 한 사람 가는구나'라고 돌려들 댔지요........


거리의 가게들, 휘황한 네온사인, 서둘러 집으로 가는 자동차의 긴 행렬 -

어둠이 내리는데도 한낮의 열기는 쉽게 식지 않았습니다.

동네시장은 바쁘고 소란스러웠으며 또 치열했습니다.

왁자지껄한 사람들 틈을 지나는데 갑자기 내가

한 컷의 흐린 정지 화면 앞을 빠른 영상으로 휙 지나가는

행인3의 역할을 맡은 것 같은 느낌도 들었구요,

또 제자리를 찾지 못해 떨어져 나온 퍼즐 조각 같다는 생각도 잠시 들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회사 동료들이랑 '집으로 가는 길'을 보았습니다.

물론 그 '집으로 가는 길'은 위의 제 얘기처럼

자동차나 지하철, 버스 등의 교통수단을 이용해 집으로 돌아가듯

그런 일상을 다룬 것이 아닙니다.

한 사람의 생을 마무리하고 '집으로 가는 길'입니다.

도회지에 나갔던 외아들이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기 위해

시골로 돌아오면서 시작되는 영화는

병원에 있는 아버지를 모셔오는 방법에 대한 문제로 전개되고,

이전까지 흑백이던 화면이 컬러로 바뀌면서

그 부모의 애틋한 사랑이야기가 영화 전반에 걸쳐 아름답게 그려집니다.


사랑에도 여러 종류가 있겠지만 '디'의 그 지고지순한 사랑,

늙어서도 은은히 빛나는 그 사랑의 마음이 너무나 애잔해서

영화 보는 중간중간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또 평생을 천직으로 알고 지낸 선생님의 마지막 가는 길이

또 얼마나 사람 마음을 울리던지요.

그 집으로 가는 먼먼 길,

시린 바람 부는데도 끝 없이 늘어선 행렬,

그 길에 아롱아롱 새겨진 이야기를 추억하는 '디'의 마음은

귀한 이를 차마 쉽게 떠나 보낼 수 없는,

남은 자들이 먼저 간 님에게 바치는 최고의 예우였습니다.


벌써 한참이 지났지만 아직도 그때 본 여주인공 '디'의 청순한 모습과

광활한 대륙의 수묵담채화 같은 풍경들이 떠나지 않습니다.

순수한 자연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

전통에 대한 감독의 애정 따위가 잔잔한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순진짜참기름' 같은 영화, '집으로 가는 길'은

참 진솔한, 그리고 닮고 싶은 사랑의 모습을

잔잔한 목소리로 그려내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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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사람을 사랑한다는 건 어떤 모양을 지닌 것인가 하는.......

첫사랑을 할 때처럼 상대방은 모르게 마냥 바라만 보는 사랑도 있을 테고

처음 연애할 때의 두근거림으로 평생을 순정으로 한 사람만 바라보고 살거나

아니면 인간 대 인간으로 느끼는 연민, 존경, 감사 따위 일련의 감정들이

자신도 모르게 사랑으로 발전하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또 그것을 모두 초월하여 마냥 희생하며 행복을 느끼는 부모로서의 사랑도 있을 것이구요.

세상일은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어서

'메디슨카운티의 다리'에서처럼

뜻하지 않은 곳에서 예견치 못한 사랑을 만나기도 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 모든 사랑의 감정이 어떤 것이든 간에

평생 한결 같이 그 사람을 믿고 기다려 준다는 것,

그것만큼 사람을 울리는 것은 없는 것 같습니다.

2002 가을, 내가 가는 길, '집으로 가는 길'은 어떨까 생각해 봅니다.



2003. 집으로 가는 길


2003년 6월, 할머니가 돌아가셨습니다. 일 나간 부모님 대신, 평생 우리 4남매를 고이 길러 주신 분. 어찌어찌 자식 다섯을 모두 앞세운 할머니는 평생 머릿수건을 잘 벗지 않았습니다. 아침부터 밤 늦도록 밭에서 일을 했고,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에는 거의 바깥 출입을 하지 않았습니다. 3일장을 치르고 장지로 가는 버스에서, 저는 할머니가 ‘집’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했습니다. 금산재 너머 돌아가는 버스에서 친척 아주머니가 혼잣말처럼 그랬습니다.

“형님, 집에 오니까 좋나? 인자 저 우에 형님하고 동네 마실이나 댕기시소.”



2005. 집으로 가는 길


2005년 7월, ‘집으로 가는 길’을 다시 보았습니다. 다시 본 영화는 ‘디의 첫사랑’뿐만이 아니라 등장인물들의 사랑에 대한 표현, 우리 문화와 공통적인 중국 문화에서 느껴지는 반가움과 친숙함, 삶의 순간순간 크게 고개 끄덕이며 공감하게 되는 요소들로 가득했습니다. 그리고 첫사랑의 아름다운 기억보다 이번에는 길이라는 것, 삶의 도리나 가치에 비중을 두어 찬찬히 훑어보게 되었습니다.


영화는 현재의 이야기, 즉 장례 절차를 의논하고 결정하며 실행에 옮기는 과정은 흑백으로, 주인공 디의 아름다운 첫사랑의 기억은 컬러로 구성하고 있습니다. 대개 영화나 드라마 등을 보면 과거는 흑백, 현재는 컬러로 구성하는 듯합니다. 그런데 이 영화는 그 반대로 보여줌으로써 ‘현실의 삶이란 꿈이나 무지개처럼 그리 달콤한 것이 아니라 빛깔이 없는 무채색에 가까우며, 오히려 아름다운 기억이야말로 나이에 상관없이 사람을 설레게 하는 것으로서 형형색색의 빛깔을 지닌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또, 어머니의 소원- 아버지가 아이들을 가르쳤던 교실에서 자식도 아이들을 가르치는 모습을 보고 싶어하는 것-을 알아 챈 아들이 아버지가 섰던 그 자리에서 아이들에게 글을 읽히는 장면에서는 젊은 날의 디와 늙은 디의 모습을 흑백과 컬러로 넘나들며 보여줌으로써 시간을 초월하는 기억, 나이가 들어도 변하지 않는 지고지순한 사랑의 장면들은 우리 인생에 어떤 값비싼 보석보다 아름답고 영롱한 빛깔을 지니는 것임을 부각시키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이 영화가 그리 분답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잔잔한 감동을 주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무엇인가를 하고 있는 사람들 - 주인공뿐만이 아니라 그의 아들, 할머니, 제자 등등 -의 모습 때문입니다.

영화 처음부터 끝까지 아들은 어머니의 뜻에 따릅니다. 그는 촌장이나 숙부의 말씀, ‘편한 것을 찾는 요즘 사람들’의 말을 듣기보다 자신만의 신념으로 ‘옛것’을 고집하는 어머니의 뜻을 따라줍니다. 병원에서 집까지 모셔오는 장례 절차도 그렇고, 수의를 직접 짜서 입히려는 어머니를 위해 물레를 고쳐오는 것도 그렇고, 아이들의 독경 소리를 듣고 싶어 하는 어머니를 위해 자신이 직접 ‘일일교사’가 되는 장면도 그러합니다.




내가 생각하는 ‘집’으로 가는 길


기형도 시인은 자신의 시 ‘빈집’에서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라고 했습니다. 잘은 모르겠지만 저는 거기서 집을 ‘반갑게 맞이해줄 누군가가 떠나버린 공간’으로 느꼈습니다.

이 영화에서의 ‘집’은 표면적으로는 실제의 집이요, 어떻게 보면 인간 삶의 종착역인 ‘죽음’, 궁극적으로는 이루고자 하는 ‘목표’ 쯤으로 여겨집니다. 그렇다면 ‘집으로 가는 길’은 인간이 살면서 걷는 모든 과정, 추구하는 어떤 세계에 다다르기 위한 여정이라고 볼 수 있을 테구요.

사람마다 ‘집’이란 실체에 대한 이미지도 다르고, ‘집’이라는 종착지를 향해 가는 ‘수단이나 방법’도 천차만별일 것입니다. 하지만, 모두가 저 나름의 어려움을 이기며 ‘집’으로 가고 있을 것입니다.

그 길에서 때로는 천둥 번개나 폭풍우에 놀라기도 할 테지만, 푸른 나무와 여린 풀과 시원한 물과 기분 좋은 바람의 즐거운 노래도 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시간이 얼마가 걸리든 그것도 문제가 아니고, 가는 길의 어려움도 피할 일이 아니다 싶습니다. 혹시 또 모르지요. 집으로 가는 그 길에서 만날 수많은 사람들, 그 중에는 넘어진 나를 일으켜 줄 누군가도 있을 것입니다.

나의 길은 어떠한가, 자문해봅니다. 경제적 부를 이룬 ‘성공’의 길은 아닐지라도, 부끄럽지 않은 길이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간 뒤에라도 마음에 오래 여운이 남는, 그리운 사람으로 살고 싶습니다.


- 율팬(your pen, your fan)


사진출처 : 네이버 이미지 & 픽사베이진출처 : 네이버 이미지

집으로 가는길11.JPG

사진출처 : 네이버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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