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려나간 나뭇가지도 시간이 지나면, 다시 자라난다.

모든 존재는 생명력을 지닌다.

작년 10월 지금 집으로 이사 오고 얼마 안 됐을 때 즈음, 화분을 선물 받았다. 일주일에 한 번씩 물만 주다가 몇 주 전에 드디어 가지치기를 했다.


가지치기는 처음이라, 보이는 대로 마구잡이로 잘랐더니 앙상한 상태가 됐다.


나는 어렸을 적부터 무언가를 키우고 가꾸는데 소질이 없었다.


초등학생 때 콩나물을 키우는 실습도 엉망으로 했고 병아리 같은 것들도 내가 돌보기 시작하면 금세 죽고 말았다.


어디 콩나물을 키우는 것만 그랬을까. 인간관계도 처음 시작할 때는 의기양양하지만 꾸준히 돌보고 물을 주는 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렇게 내 손에 들어온 저 식물(이름도 키우기 시작한 지 3~4개월이나 지나서야 알았다.)이 가엽게 느껴졌다.


집에 손님이 자주 오지 않는 터라, 햇볕이 잘 드는 벤치형 의자에 올려두고 일주일에 한 번씩 화분이 잠길 정도로 물을 줬다.


그게 내가 지속해서 해줄 수 있는 유일한 돌봄이었다.

<집 창가를 지키고 있는 화분>


이번 주에도 어김없이 물을 주기 위해 화분을 낑낑 들어 화장실로 옮겼다.


물을 주려 수전을 당기는데 지난주와 달라진 식물의 상태를 확인했다.


엉망으로 잘라 놓은 그 나뭇가지에서 새로운 잎사귀가 자라난 것이다.


기분이 이상했다.


무언가를 제대로 키워본 적이 없는, 나의 서툰 손길에도 생명이 자라난다는 게 신기했다.


새롭게 자란 초록색 잎사귀는, 지칠 대로 지쳐 보였던 예전의 것보다 더 생명력이 있어 보였다.


화분을 다시 창가에 올려놓고 생각에 빠졌다.


서툰 손길에 처참히 잘린 저 나뭇가지도 결국에는, 다시 자기 모습을 찾았다는 것이 내 마음 한쪽을 찌른다.


나뭇가지가 잘리면, 나머지 부분은 며칠 이내 줄기로부터 힘을 잃고 떨어진다.


떨어진 가지 조각은 흙의 거름이 되고 그때부터 줄기는 다시 새로운 나뭇가지를 만들려 애를 쓴다.


1주~2주가 지나면, 다시 자라났을까 싶어 잘린 쪽을 유심히 살펴봐도 그 상태 그대로다.


다시 자라나지 않겠거니 하고 포기하고 나면, 어느새 이전보다 더 생명력 있는 잎사귀가 피어나 있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모를 정도로 작게 피어난 잎사귀>


인간에게도 생명력이 있음을 상기하게 된다.


힘들고 외롭고 아프고 서럽고 슬픈 시기가 우리 삶 도처에 있지만, 그런 시기도 언젠간 잘려 나가 우리 삶에 거름이 된다.


나뭇가지를 잃었다는 슬픔과 고통이 무뎌질 때 즈음, 이전의 것보다 더 생명력 있는 잎사귀가 내 삶 한쪽에 자라나게 된다.


요즘 나를 누르는 자책들을 벗겨내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겠냐는 생각을 많이 한다. 이제는 정말 좋은 생각들을 하고자 한다.


이미 좋은 일이 내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고 나 역시도 더 좋아질 수 있다고, 매일 조금씩 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다고, 이전의 것은 매듭짓고 진짜 한 발자국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그러고 나면, 조금 더 나답게 살게 될 수 있다고,


저 엉망으로 부러진 나뭇가지도 결국엔 다시 살아나는 것처럼, 나 역시도 언젠가 더 단단한 사람으로 자라나 있지 않을까 알량한 희망을 품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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