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 여행으로 발견하게 된 자기 자신, 그리고 성찰 일기
이번 연휴 동안, 강원도 춘천을 다녀왔다.
설 전에 시작한 프로젝트가, 무르익어 삶이 퍽퍽해질 때쯤, 여유로운 시간이 찾아왔다.
처음엔, 어디로 떠날 마음이 없었는데 친한 형과 전화통화를 하던 중 갑작스레 일정을 잡았다.
요즘 도통 삶의 의욕이 없는 것이 마치 몇 리터 남지 않아 일정 속도 이상을 달리지 못하는 무기력한 자동차 같았다.
지금 이 곳에서는 바닥난 연료가 채워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물론, 나와 같이 여행을 떠났던 형도 마찬가지다.
떠나야만 연료가 채워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경주, 부산, 대구, 춘천 등 어디를 갈지 고민했다. 떠나기로 마음먹었다면서도, 한편으론 서울을 멀리 떠나는 게 조금은 두렵고 부담스럽다.
결국, 처음 가졌던 포부와는 다르게 고작 서울과 1시간 떨어진 춘천을 선택했다.
그럼에도 가장 위안이 되었던 것은, 춘천행 열차 이름이 “청춘”이라는 것이다.
비가 주룩주룩 오는 수요일, 평소보다 일찍 퇴근하고 춘천행 청춘 열차에 탑승했다.
춘천에 도착한 후 비가 와 택시를 타고 숙소로 향했다. 짐을 다 풀기도 전에, 나는 형에게 맥주 한 잔을 청했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형은 오케이 사인을 보낸다. 그리고 숙소 밑 편의점에서 맥주 네 캔에 만원 세트를 사 왔다.
월요일부터 수요일까지 만만치 않은 회사 생활에 피로감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마음은 가벼웠다. 맥주 한 모금, 두 모금 들어갈수록 취기와 함께 대화도 무르익어간다.
우리가 겪고 있는 삶의 이야기를 하나씩 꺼내 놓는다. 어쩌다 이렇게 삶이 척박해지고 힘겨워졌는지 돌이켜본다. 처음엔, 나의 상사, 회사, 사회제도, 주변 사람들로부터 원인을 찾아봤지만, 명쾌한 답이 나오지 않는다.
한참을 이야기하다, 결국 모든 문제의 시작은 자신에게 있으며, 해결할 수 있는 열쇠 또한, 자신에게 있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매 순간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선택하고 싶어 하는지 알아야 되지 않을까.”
마음에 있는 짐들을 풀어놓으니, 조금은 가벼워졌다. 그러다 문득, 무언가를 채우기 위해서는 비워야 한다는 말이 생각났다. 지금이 내 마음을 비우는 시간인 것 같다. 그렇게 춘천에서의 첫날이 마무리되었다.
아침이 밝은 후 형과 나는 간단하게 조식을 먹고 여행지인 김유정역으로 이동했다. 레일 바이크로 북한강 강자락에 만들어진, 기찻길을 따라 강촌역까지 가는 일정이다.
막상 도착하니, 전날 비가 와서인지 공기가 매우 차가웠다. 그래서 목도리에 털장갑까지 했음에도 불구하고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추위 때문인지 여기저기 볼멘소리가 들린다.
“이렇게 추운데, 도대체 왜 이런 걸 해야 하냐고.”
나 역시, 불평의 말이 나오려 했다. 하지만 지난밤 형과 같이 나눴던 이야기를 상기시키며, 마음을 고쳐먹는다. 지금 이 순간을 헛되이 보내고 싶지 않은 마음에서다.
1열 종대로 쭉 늘어선 2인, 4인 열차들이 하나씩 출발한다. 덜덜거리는 기차 바퀴 소리에, 옆에 있는 사람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나만의 기차여행이 시작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레일, 하얀 눈이 수북이 쌓인 산, 푸른 북한강은 불과 하루 전 수많은 사람과 빌딩으로 둘러 쌓인 여의도의 퍽퍽한 삶을 까맣게 잊게 한다.
최근에 읽었던 책 '늘 펼쳐지는 지금'에서 나온 '자신으로 존재하기 위한 명상'이 떠올랐다. 그냥 그대로 자신을 둔다. 두 팔을 넓게 벌리고 눈을 지긋이 감는다. 그리고 머리카락 사이로 스치듯 지나가는 차가운 바람을 느껴본다. 숨을 깊게 들이 마시고 천천히 내뱉는다. 바로 지금 이 순간이 채워야 할 때임을 직감한다.
열차에서 내릴 때쯤, 형과 나는 마치 2016년 여의도 63 빌딩에서 처음 회사 동기로 만났을 때의 밝고 행복한 미소를 되찾은 듯 보였다. 텅비워진 기름통에 기름이 채워진 느낌이 들었다.
강촌역에 도착한 후, 점심을 먹기 위해 숯불닭갈비집으로 갔다. 닭갈비 2인분을 시키고 형이 화장실 간 사이에 소주 1병을 시켰다. 화장실에서 돌아온 형은 적잖이 당황한 기색을 보이며 나에게 말했다.
"대낮부터 소주 마셔?"
"응 형, 한 잔만이라도 꼭 마셔야 될 것 같아서. 지금이 꼭 그래야만 하는 때인 것 같아서."
새생명이 태어나고, 새로운 여정이 시작되는 시기 그리고 두려움보단 설레임이 더 큰 2018년 봄.
바로 그 계절을 앞두고 다녀온 춘천 여행은 거창하지 않았지만, 일상의 작은 힘이 된 것 같다.
우리 모두 어느 때에 있다. 열심히 달려야 할 때, 조금은 힘든 때, 잘되는 때, 그리고 어느 지점에서는 말끔히 비우고 다시 채워야 하는 때처럼 말이다. 이 봄이 끝나고 뜨거운 여름이 왔을 즈음엔 어느 때에 있을지 조금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