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혐오에 빠진 이들에게 전해주고 싶은 작은 위로,
“어젯밤 9시 탤런트 A 씨는 OO동 자신의 집에서 사체로 발견되었습니다. A 씨는 자신의 삶을 비관하며 극단적 선택을 내린 것으로 보입니다.”
이는 1년에도 수차례 언론을 통해서 볼 수 있는 익숙한 멘트다. 그리고 이것은 단순히 연예인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역시 삶에서 직접적으로 맞닥뜨리는 현실적인 문제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10만 명 당 26.5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자살이라는 것은 자기 자신에 대한 혐오감이 최고조에 다다랐을 때 하는 극단적 행동이다. 무기력함과 우울증은 팽배하며, 자살률이 높아진 시대, 즉 자기혐오 시대가 도래한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 국민들은 늘 투쟁하며 살아왔다. 일제시대 때는 독립을 위해 일본과 투쟁했고, 독재 시대 때는 자유 민주주의를 위해 독재정권과 투쟁해왔다.
우리는 폭력과 억압과 싸우고 자유를 쟁취하며 그렇게 살아왔지만, 지금 이 시대는, 우리는 더 이상 예전만큼 투쟁해야 할 대상이 없다. 이제 우리가 투쟁해야 할 대상은 오직 나 자신, 즉 성공하는 삶을 강요하는 타인의 기대와 투쟁해야 한다.
자기 자신에 대한 끝없는 투쟁과 기대는 무언가를 성취하게 하지만, 때때로 과도한 팽창 욕에 사로잡히거나 분노로 바뀌게 하곤 한다. 더 이상 모두가 기대하는 내가 될 수 없을 때, 우리는 자기혐오에 빠지게 된다.
원인 1: 과도한 경쟁 환경에서의 성장
증상 : 과도한 경쟁 환경에서 개인은 스스로 높은 기준을 적용하게 한다. 이는 늘 기준에 도달하지 못하는 자신에 대한 모습을 자책하고 혹은 주변과 자신의 비교를 통해 자기혐오에 빠지게 된다.
물론, 과도한 경쟁 환경에서 성장한 사람이 사회적으로 많은 성취를 하곤 하지만, 그 안에 강한 경쟁심과 비뚤어진 욕망이 내재되어 있어서 심리적으로 불안정하다.
또한, 오직 무언인 가를 성취했을 때에만 만족감을 느끼므로, 이것이 충족되지 못했을 때 깊은 자기혐오에 빠진 곤 한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었을 때는, 성취를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게 되어 인격이 상실되곤 한다.
원인 2: 이해받지 못하는 환경에서의 성장(결코 ‘잘했다’는 말을 해주지 않는 환경)
증상 : 어떤 실수나 행동에 대해 감정적으로 이해받지 못할 때 우리는 수치심을 느끼게 된다. 수치심은 우리에게 나쁜 감정을 가져다주며, 자신의 솔직한 욕구나 감정을 표현하지 못하도록 하게 한다.
어떤 감정을 표현할 때 수치심이 떠오르게 되면 이를 주저하게 되고 서서히 우리의 감정은 마비되어 간다. 반복된 자기 배반은 자기혐오 정서로 직결된다.
우리는 과도한 경쟁을 통해 가파르게 성장했고 나와 내 주변 사람들 모두 열심히 살아왔다. 그리고 치열한 경쟁 속에서 도태될 것 같아서 아프고 지친 마음도 드러낼 수 없었다.
이제는 나와 내 주변 사람에게 해줘야 할 말이 있다. ‘괜찮아, 그럴 수도 있어’ 자신과 타인에 대한 이해심은 더 이상 스스로 자신을 혐오하지 않게 한다.
이것은 삶을 포기하라는 말이 아니라, 쟁취하는 것만이 삶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이다.
자기혐오는 단순히 개인만의 문제라기보다, 우리 모두의 상호작용을 통해 발생하는 것이다. 더 이상 우리 주변 사람들이 자기혐오에 빠지도록 그냥 두어서는 안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