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에세이] 삶은 자신의 의지에 반응한다.

해안 길을 따라 걸으며 하는 명상일기 in Jeju

애월읍 한담해변부터 곽지해수욕장까지 쭉 이어진 길을 걸었다. 태양이 머리 위에 있어 땀이 비 오듯 쏟아진다. 괜히 이 길에 들어섰는지 조금 후회가 된다. 처음에는 푸른 빛 파다와 일렁이는 파도가 위로되는 듯싶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감흥이 없다.

<애월읍 곽지해수욕장에 도착했다. 태풍이 예정되어 있어서인지, 관광객이 많지는 않았다.>

고개를 푹 숙인 채 묵묵히 길을 걷고 또 걷다 보니, 멀리 200미터 앞에 오아시스처럼 한 카페가 보인다. 아직은 잘 보이지 않지만,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 유심히 살펴본다. 그리고 속으로


제발 영업 중이어라, 라고 되뇌어본다


한 50미터 정도 가까워졌을 때, 카페 안에는 주인으로 보이는 아주머니와 할머니 둘이 앉아 있는 것을 보고 안도의 한숨이 나온다.


목을 축이고 갈 수 있을 거란 작은 희망과 행복감이 든다. 카페에 들어서 짐을 내려놓고 계산대 앞으로 간다. 이미 오전과 오후에 커피를 마셔서 더는 커피가 당기지 않는다. 마땅히 시킬 음료가 없어서 고민하던 찰나에 계산대 넘어 냉장고가 보인다. 그 안에 초록색 병에 담긴 하이네켄 맥주가 눈에 들어온다. 메뉴판에 없는 걸 보니 파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런데도 확인 차 아주머니에게 물어본다.


사장님 혹시 저것도 파는 거예요?
파는 건 아니고 아들이 서핑하고 마시려고 사둔 거예요


평소 같았으면, 그냥 포기하고 말았을 텐데 오늘은 웬일인지 용기를 내어 한 번 더 말해본다.


저거 혹시 괜찮으시면, 팔면 안 될까요? 먼 길을 걸어 왔더니 시원한 맥주가 마시고 싶어서요.


아주머니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내게 초록색 병에 담긴 맥주를 건네 줬다. 자리로 돌아가 휴대용 선풍기를 몸쪽을 향해 틀고 시원한 맥주를 들이켜니 큰 행복감이 느껴진다. 평소와 다르게, 용기를 내본 자신이 대견했다.

<사람이 없어서 마음대로 널브러져서 쉬었던, 오아시스 같은 카페. 하이네캔의 재발견 시간이었다.>


심리학자 아들러는 인간은 자신이 지향하는 대로 삶을 만들어가며, 끊임없이 변화하고 발전하는 존재로 말한다. 만약 나 역시 평소해왔던 것처럼 안되겠지라는 마음으로, 적당히 타협했으면 아쉬움과 미련을 가진채로 카페에서 나왔을 지도 모른다. 그리고 다음에도 이와 같은 상황에서 똑같이 스스로 아쉬움을 남기는 선택을 했을 것이다.

<애월읍 봄날카페에서 마셨던 스페셜티 원두 커피, 봄날카페는 사람이 많아서 저렇게 대기실에서 기다려야 바다가 보이는 자리로 이동할 수 있다.>
<약 10분정도 기다리니 창가 자리가 났다. 바다가 한 눈에 보여, 눈이 즐겁다. 제주의 푸른 바다는 언제봐도 >

인간이라는 존재는 이중적이다. 내면 깊은 곳에서는 변화를 원하면서도 현실에서는 늘 해온 방식대로 한다. 그리고 그것을 본래 자신의 삶으로 받아들인다. 그럼에도, 자신이 원하는 것이 어느 날 우연처럼 찾아와주기 바라면서 자기위안을 한다.


이제는 알 것 같다. 인생은 우연히 만들어지지 않는다. 삶은 우리의 의지에 반응하며 그 모양대로 살게된다. 내 삶의 모양이 불만족스럽다면, 변하기 위해 혹은 바꾸기 위해 용기를 내야하는 시기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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