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 빌딩

by 이인삼각

새로 부사장이 외부에서 영입되었다. 굴지의 S그룹 임원 출신답게 짧은 머리, 단정한 옷차림 단단하다는 인상을 주었다. 환영 겸 임원들 회식 하기로 하고, 행주대교 다리 밑에서 장어 구이에 낮술로 시작하기로 했다. 사실 지금 임원진의 구성은 외인 부대에 가깝다. CFO, CSO, 그리고 디지털 사업을 담당하는 CDO 모두 외부에서 합류한지 1년 남짓하다. 마케팅 CMO가 그나마 오래 근무했지만 외부 출신이니, 회사 초창기에 합류한 나를 제외하고는 모두 외부에서 불러모은 용병 부대인 셈이다. 통통한 장어가 구워 져가고 소주에 얼굴들이 불콰해질때 게임을 제안했다. 새로 오신 부사장님께 각자 소개를 해보자. 단 자기 소개 말고 옆에 앉은 동료의 소개를 대신 해주는 것인데 중요한 것은 옆 동료의 장점을 소개 해주자.


함께 일 한지 1년 남짓, 아직 서먹함이 더 많은 40-50대 남자들이 옆 동료의 장점을 찾아서 표현하기 시작한다. 그들의 얼굴을 사진으로 찍어 각자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장점을 이야기 할 때 수줍음과 조심스러움. 그 이야기를 쑥스러워 들으면서 발개지는 볼들은 취기 때문만은 아니었고, 참 예뻤다. ‘우리는 모두 칭찬을 듣고 싶어하고 참 좋아하는구나’. ‘나를 이렇게 지켜보고 있었구나.’, ‘나도 몰랐는데 그런 면을 장점으로 보는구나’. ‘저것은 사실이 아닌데 장점이라고 칭찬해주니 몸둘바를 모르겠다'. 말하는 사람, 듣는 사람 모두의 얼굴에서 울긋불긋 미소가 끊이지 않는다.


2014년 대표이사가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임원들의 점심 번개가 있었고 회장님이 참석하셨다. 후식으로 커피를 마실 즈음에 뜬금없이 회장님께서 임원들에게 ‘대표이사 장점을 돌아가면서 이야기 해보세요’ 하신다. 하하하 쑥스럽게 웃음들이 터져 나왔지만 한사람, 한사람 돌아가면서 이야기를 시작하자 맞선 자리처럼 금새 엄숙하고 진지 해졌다. 나는 웃다가 고개를 숙이다가 나중에는 한마디도 놓치고 싶지 않아서 메모 하기 시작했다. 스마트하다. 감정콘트롤을 잘한다. 위기상황에서 위트 있게 대응한다. 제일 많이 변한 사람이다. 문제의 맥을 잘 짚는다. 기다려준다. 약속을 꼭 지킨다. 눈높이에서 사람을 사랑한다. 새로운 시각을 갖고있다. 따뜻하다. 스토리라인이 있다. 작은 것을 기억한다. 심지어 전지전능하다는 표현도 있었다(사실이다).


그날 당사자인 내가 느꼈던 복잡미묘한 감정은 몇개 단어로 표현하기 어렵다. 처음 느껴본 감정, 특히 경쟁과 실적 전투 용어로 가득한 회사라는 공간에서 들었던 따뜻하고 친절하고 긍정적인 단어들이 나에 대한 나의 생각도 달리 하게 할만큼 놀라운 힘이 있었다. 그들에게도 그들의 장점을 이야기 해주고 싶은 충동이 자연스레 일어났다. 너무나 고맙고 사랑스러웠다.


팀 빌딩으로 내가 배운 것은 으쌰으쌰 술의 힘이 가장 컸다. 모두 함께 꽐라가 되고 2차, 3차로 가서 머리에 넥타이를 두르고, 어깨동무를 하고 노래를 부르고 때로는 취기에 뽀뽀도 하고, 이마를 부비며, ‘잘해보자’, ‘가는거야’ 요란한 의식들이었다. 창피하고 부끄러운 장면까지 나누고, 공범의식을 만들어서라도 얼른 어색한 거리를 좁히고 싶었다. 그래야 비로소 속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고, 나누고 싶었다. 이제 나는 너를 믿을 수 있고, 그래서 내 이야기를 할 수 있으니 너도 네 이야기를 해도 된다는 묵인된 절차가 있었다.


결국 팀을 만드는 것은 서로가 안전하다고 느끼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 즉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진다는 상호 믿음을 주는 것이 핵심이다. 안전하다고 느끼면 어떤 이야기를 해도 괜찮다는, 또는 불이익이 없다는 확신으로 이어진다. 자기의 생각을 있는 그대로 표현해도, 의도가 왜곡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여진다고 가정해보자. 아이디어가 아이디어로만 논의되고 누구와도 동등하게 합리적으로 협의할 수 있다는 것이 팀의 힘이고 능력이고 실력이 된다. 얼마나 많은 아이디어들이 누가 이야기 했느냐에 따라 의도가 별도로 해석되고, 그에 따른 편견과 상황적 논리에 따라 격추되고 사장되는 지 모른다. 옳은 아이디어가 계속 옳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 의사결정 구조는 그만큼 귀하고 만들어지기 힘들다.


그 친밀감을 확보하기 위해 참 많은 음주가무를 했어야 했는데, 회장님의 점심 번개가 주는 교훈이 있었다. 나도 모르는 나의 장점을 표현 해주는 사람들에게 느꼈던 안전함을 잊을 수가 없다. 팀을 만드는 것은 사실 팀을 작게 만드는 것과 같다. 팀의 규모가 물리적으로 아무리 크더라도, 상호 안전함을 갖는다면, 어떤 이야기도 소곤소곤 들어주게 되고 팀은 작게 느껴진다.


행주산성 장어 회식 이후에 새로운 경영진이 똘똘 뭉친 하나의 팀이 되었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저 사람이 나의 생각을 면전에서 반대 하더라도, 그에게 다른 의도는 없을 거야 전제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감정을 배제하고 그의 반대 이유를 객관적으로 들어보려 하게 될 것이다. 각자의 장점을 굳이 표현하다 보면, 실제 보이지 않던 장점을 찾아야하고, 나중에는 실제로 장점들이 보이고 좋은 사람으로 보인다. 좋은 사람이니 그 사람의 말도 진심으로 들리고 진심으로 듣기 시작한다.


고 문익환 목사님의 말씀이 기억난다. ‘제 할머니가 기르시는 돼지새끼는 할머니 말을 알아듣습니다. 새끼 때부터 말을 하면서 지팡이로 돼지를 지도해 가르치십니다. 자리를 해주면서도, 죽을 주면서도, 매사에 말을 하면서 보살펴 주시니까 돼지도 알아듣는 걸 보면서 저는 자랐습니다. 돼지도 알아듣는데 사람이 어찌 사람의 말을 못 알아듣겠습니까? 이것이 사람을 대하는 저의 자세가 되어 있는 겁니다’.


서로가 서로를 대하는 진심이 느껴지면 된다. ‘나는 존중받고 있구나’. ‘나를 존중하는 이들을 나도 존중하자’ 순서로 순환되는 팀 빌딩은 꼭 오래 걸리거나 번잡한 회식 없이도 만들어 갈 수 있다. 돌아가면서 팀원들과 서로의 장점들을 이야기 해보자. 웃음이 나고 안전함 이 피어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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