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만 도와줘”라는 말이 불편했던 날
재능은 생각보다 가볍지 않다
재능기부라는 말은 왜 불편해졌을까
재능기부라는 말은 참 좋은 말이다.
그래서 가끔은 가장 쉽게 오해되는 말이기도 하다.
나한테는 조금 별 볼 일 없는 재주가 하나 있다.
친구들은 나를
댛무위키, 댛지피티, 댛초리 라고 부른다.
뭘 물어보면 다 찾아주고,
고민을 던지면 적당한 위로 대신
가끔은 따끔하게 현실적인 말을 해버리는 쪽이다.
그래서인지 친구들은 뭔가 생기면 꼭 나를 찾는다.
“댛, 이거 좀 봐줘.”
“댛, 이거 어떻게 해야 되냐?”
나는 늘 말한다.
“야 이 핑거프린세스야. 손이 없냐.”
그러면서도 결국은 다 해준다.
이상하게 못 찾으면 내가 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다.
그렇게 나는 누군가의 문제를 해결해 주는 일에서
작은 뿌듯함을 느끼며 살아왔다.
생각해 보면 이런 일은 꽤 자주 있었다.
누군가는 도면을 들고 와서
“이거 어떻게 해야 되냐”라고 물어보고,
누군가는 자재를 뭘 써야 하냐고 묻고,
또 누군가는 “이거 하면 얼마쯤 나오냐”라고 물어본다.
대부분은 커피 한 잔 값도 안 되는 이야기들이지만
그 안에는 내가 몇 년 동안 쌓아온 시간이 들어 있다.
그래도 괜찮았다.
그건 내가 선택해서 해주는 일이었으니까.
사람은 자기가 잘하지 못한 건 남의 손을 빌려서라도 잘살면 된다고 믿고 살기에
문제는 그 선택이 내 것이 아닐 때 생긴다.
어느 날, 단톡방에서 한 친구가 나를 불렀다.
신축 아파트 입주를 앞두고 있는데
사전점검을 좀 도와줄 수 없겠냐고 했다.
나는 건축 일을 하고 있고 현장 관리소장이기에
사전점검 필요한 장비는 얼추 다 갖고 있다.
못하는 일은 아니었다.
문제는 시간이었다.
그때 나는 문경 현장에 있었고 일정이 꽉 차 있었다.
대구에서 왕복 네 시간 거리.
그래도 나는 말했다.
“조금 늦게라도 맞춰볼게. 내가 가서 봐줄게.”
그리고 덧붙였다.
“10 만원만 줘라. 기름값이랑 시간값 정도만.”
그건 돈을 벌겠다는 의미가 아니라
이건 그래도 ‘일’이라는 최소한의 선이었다.
보통 사전점검업체를 부르면 20~30만 원에서 시작하니깐
그때 그 친구가 말했다.
“그럴 거면 업체 부르지.”
“안 그래도 돈 아까워서 그러는 건데.”
“한 번만 도와줘라. 재능기부한다는 셈 치고.”
그 말을 듣는 순간 묘하게 열이 올랐다..
도와줄 수 있다.
충분히 해줄 수 있다.
친구니까.
아마 그 친구가 말을 조금만 다르게 했어도 나는 그냥 갔을 거다.
아무 말 없이.
근데 그날은 그 단어 하나가 걸렸다.
그 말이 내 시간을
값없이 가져가도 되는 것처럼 들렸다.
친구라서가 아니라,
친구니까 더 쉽게 꺼낸 말처럼 느껴졌다.
나는 단톡방에서 말하지 않았다.
괜히 분위기를 망치고 싶지 않았고,
사람들 앞에서 누군가를
민망하게 만들고 싶지도 않았다.
대신 전화를 걸었다.
“야, 내가 너한테 10만 원 벌려고 이러는 거냐.”
“최소한 성의는 보여야 하는 거 아니냐.”
“내가 왔다 갔다 하는 게 그렇게 가벼워 보여?”
조금 세게 말했던 것 같다.
그 친구는 미안하다고 했다.
그날 나는 결국 갔다.
사전점검을 해주고, 하나하나 설명해 주고,
놓치기 쉬운 것들까지 다 잡아줬다.
끝나고 나서 그 친구는 돈을 건넸고,
조금 미안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집들이 날,
나는 친구가 갖고 싶다던
꽤나 비싼 금액의 음식물 처리기를 선물이라며 건넸다.
그날 이후로 나는 하나를 더 알게 됐다.
사람은 말보다 행동으로 관계를 정리한다는 걸.
이 이야기는 누가 맞고 틀리고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다만 그날 이후로 나는 ‘재능기부’라는 말을
조금 다르게 받아들이게 됐다.
재능이라는 게 생각보다 가볍게 만들어지는 건 아니라서
시간이 쌓이고, 실패가 쌓이고,
그 위에 책임까지 얹히면서 천천히 만들어진다.
그래서인지 그 안에 담긴 시간까지 생각하게 된다.
나는 어딜 가도 사람의 직업이나 전문성은
가볍게 보지 않으려고 한다.
내가 아는 곳에 가면 가끔은 그냥 해주겠다고,
혹은 조금 깎아주겠다고 말해주는 분들도 있다.
그럴 때면 늘 괜찮다고 말하게 된다.
그 사람이 쌓아온 시간을
내가 쉽게 덜어내도 되는 것 같지 않아서다.
그래도 그 호의를 끝까지 사양하지 못할 때가 있다.
그럴 때는 조금 더 고맙게 받고,
언젠가는 다른 방식으로라도 돌려줘야겠다고 생각하게 된다.
재능기부라는 말은 여전히 좋은 말이다.
다만 요즘은 그 말이 조금 조심스럽게 들린다.
그게 내가 선택한 일일 때는 괜찮은데,
누군가의 비용을 줄이기 위한 선택처럼 느껴질 때는 조금 다르게 다가온다.
그럴 때는이게 정말 ‘기부’에 가까운 건지,
아니면 그냥 내가 대신 해주고 있는 건지
한 번쯤 생각하게 된다.
그래도 여전히 친구들이 뭘 물어보면 대부분 답해준다.
검색 몇 번이면 되는 것들, 짧은 고민들, 방향을 잡아주는 정도의 이야기들.
그건 내가 가진 걸 가볍게 나누는 일에 가깝다고 느껴진다.
재능기부는 내가 선택하는 것이다.
내가 의미 있다고 느끼는 곳에 내 시간과 기술을 쓰는 것.
하지만 시간이 들어가고, 책임이 따라붙고,
그게 점점 ‘내 일’처럼 느껴지는 순간부터는 조금 조심하게 된다.
그걸 가볍게 넘기는 순간 해주고도 욕먹는 일이 생긴다.
그래서인지 요즘은 ‘재능기부’라는 말을 들으면
예전처럼 쉽게 고개가 끄덕여지기보다는 잠깐 멈추게 된다.
내가 괜찮은 방식인지,
내가 선택한 도움인지.
재능이라는 건
한 번쯤은 그 가치를 확인받아야 한다는 생각도 든다.
그게 꼭 어떤 형태여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때로는 그 방식이 돈일 수도 있고,
아니면 다른 어떤 방식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
그리고 그렇게 인정받은 가치로
내가 납득할 수 있는 방식으로 누군가를 돕는 게
더 오래 이어질 수 있는 방법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돈을 받았고 집들이선물을 조금더 신경쓰는것처럼.
나는 여전히 누군가를 도와주는 걸 좋아한다.
아마 그 마음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 같다.
다만 이제는 그 도움이
내가 무너지지 않는 선 안에서 이어지기를 바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