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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 보면 진짜 “거지같은” 경험이 있습니다.

by DataSop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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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같은 시대에 좀 거칠게 말해볼까요.

살다 보면 진짜 “거지같은” 경험이 있습니다.


회사에서 사람 취급 못 받을 때,

연애에서 처참하게 버려질 때,

투자에서 한 번에 몇 년치 월급이 날아갈 때,

가족 안에서조차 혼자 방치된 느낌이 들 때.


그런 순간마다 우리는 이렇게 중얼거립니다.

“그래, 이것도 다 경험이지 뭐…”


맞습니다. 거지같은 경험도 경험입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아주 중요한 전제가 하나 있습니다.


“그 경험을 소화할 만큼, 내가 먼저 제대로 살아있어야 한다.”

“거지같은 상황에서 똑같이 거지가 되어버리면, 그건 큰일이다.”


오늘은 이 이야기를 같이 풀어보려고 합니다.

혹시 지금 ‘거지같은 상황’ 한가운데에 있는 분이라면,

이 글이 최소한 방향 기준점 하나는 되어줬으면 좋겠습니다.




1. “거지같은 경험도 경험이다”는 말의 함정


우리는 힘들 때 이런 말을 많이 씁니다.

• “그래도 경험 쌓는 거지 뭐.”

• “이 정도 당해봐야 인생 공부지.”

• “젊을 때 고생은 사서도 한다잖아.”




문제는, 이 말이 두 가지 얼굴을 갖고 있다는 겁니다.

1. 나를 지키는 말

• “이 경험을 그냥 쓰레기로 버리지 않고, 의미를 뽑아내겠다”는 다짐일 때

• 이 말은 강한 회복력(resilience)이 됩니다.


2. 나를 버리는 말

• “어차피 다 이런 거지 뭐” 하며 스스로를 싼 값에 취급하는 면허증이 될 때

• 이 말은 자기 파괴의 면죄부가 됩니다.




같은 문장인데,

한쪽은 나를 살리고,

한쪽은 나를 갈아 넣습니다.



그래서 이 말에는 항상 질문이 하나 더 붙어야 합니다.


“그래, 거지같은 경험도 경험인데…

그 경험을 견딜 ‘자본금(에너지, 건강, 자존감)’은 남아 있냐?”




투자에서 마이너스가 나는 것 자체는 문제가 아닙니다.

문제는, 그 마이너스가 “게임 오버”를 부르는 수준인지 아닌지입니다.


인생도 똑같습니다.

거지같은 경험은 겪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경험을 겪다가 나라는 사람 전체가 파산나면 안 됩니다.




2. 먼저 살아있어야, 경험도 자산이 된다


살아있다는 건 단순히 숨 쉬는 걸 말하는 게 아닙니다.

제가 말하는 “제대로 살아있음”은 이런 상태입니다.


1. 몸이 망가지지 않은 상태

• 잠을 거의 못 자고,

• 밥도 제대로 못 먹고,

• 만성 통증과 위장 장애를 버티면서,

• “그래도 경험이야”라고 말하는 건, 솔직히 말해 자기 착취입니다.


2. 정신이 무너지지 않은 상태

• 매일 자기 자신을 욕하고,

• “난 안 돼, 난 원래 이 모양”이라고 세뇌하면서

• 그걸 “인생 공부”라고 부르는 건, 공부가 아니라 자기 학대입니다.


3. 도덕적 기준이 부서지지 않은 상태

• 나를 괴롭히는 사람과 똑같은 방식으로

• 나보다 약한 이를 괴롭히기 시작했다면,

• 그건 ‘경험’이 아니라 ‘오염’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결론 하나.



살고 나서야, 그때의 경험을 “자산”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죽을 만큼 갈려나간 건 자산이 아니라 손실입니다.




3. 거지같은 상황에서, 우리가 ‘거지’가 되어버리는 순간


‘거지’라는 말은 여기서 경제적 가난이 아니라,

마음가짐과 태도가 완전히 무너져버린 상태를 말합니다.


거지같은 상황은 피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거지가 되어버리는 건, 우리가 피해야 할 선택입니다.



제가 보는 “거지 모드”의 신호는 네 가지입니다.


1) 자기비하가 일상이 되었을 때

• “나는 원래 이것밖에 안 돼.”

• “내가 못나서 이런 취급 받는 거지.”

• “이 정도로 써주는 것만 해도 고맙지 뭐.”



이 말의 문제는,

타인이 나를 낮게 보는 것을 넘어

내가 나를 싼 가격에 시장에 내놓는다는 것입니다.


투자 언어로 바꾸면 이겁니다.



“나는 원래 저PBR 종목이야. 프리미엄 받을 자격 같은 건 애초에 없어.”


이렇게 스스로를 정의하는 순간,

인생의 모든 협상과 관계에서 헐값에 팔리는 구조가 자동으로 세팅됩니다.




2) 타인 탓과 피해의식에 취해버릴 때


반대편도 있습니다.

• “세상이 다 썩었어.”

• “윗사람들이 다 문제야.”

• “한국에서 태어난 게 죄지 뭐.”



물론 구조의 문제, 세대의 문제, 계급의 문제, 존재합니다.

하지만 모든 문장을 “남 탓”으로 끝내는 순간

나는 더 이상 플레이어가 아니라 관중석에서 욕하는 사람이 됩니다.


관중석에서 가장 시끄러운 사람일수록,

경기 결과에는 아무 영향도 못 미칩니다.




3) 감정 쓰레기통이 되는 관계를 방치할 때


거지같은 상황에 오래 노출되면, 이런 관계가 생깁니다.

• 나를 일회용 감정 해소용으로 쓰는 사람

• 내 시간, 내 에너지를 공짜 자원처럼 쓰는 사람

• 나를 존중하지 않으면서, 필요할 때만 찾는 사람



이 관계를 방치하면, 어느 순간

“나도 남을 그렇게 대하는 사람”이 됩니다.



“나도 이렇게 살았는데, 너라고 다르냐?”

이 말이 나온 순간,

우리는 내가 싫어하던 어른, 싫어하던 상사, 싫어하던 선배를 닮아갑니다.




4) 윤리의 기준이 가격으로 바뀔 때


가난하거나 힘든 것과,

양심을 버리는 것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하지만 너무 지치고 몰리면, 사람은 이런 생각을 하기 쉽습니다.

• “이 정도쯤이야, 다들 하는데 뭐.”

• “착하게 살면 바보지.”

• “먼저 치고 빠지는 사람이 이기는 거야.”



이 순간부터는 거지같은 상황을 탓할 수 없습니다.

그 상황이 내 안으로 이식된 것이니까요.




4. 그럼 우리는 뭘 해야 할까? (실전 체크리스트)


이제 조금 실무적으로 가보죠.


1) 현 상황 점검 질문 5개


아래 질문에 “예”가 많을수록

지금의 경험은 “자산”이 아니라 “잠재적 파산 위험”에 가깝습니다.

1. 요즘 1주일 중, “나를 비난하는 생각”이 “나를 응원하는 생각”보다 많다.

2. 잠/식사/휴식이 완전히 무너졌는데, “지금은 버텨야 할 때야”라는 말로 덮고 있다.

3. 관계에서 상대가 나를 일방적으로 쓰고 있다는 감각이 든다.

4. 예전에는 하지 않았던, 내 기준에서 부끄러운 행동을 합리화하고 있다.

5. “여기서 나가도 내 삶이 좋아질 거라는 상상이 안 된다”라고 느낀다.



3개 이상 “예”라면,

이건 “지금 당장 버텨라”가 아니라

“지금 당장 나가는 방향을 준비해라”에 가까운 시그널입니다.




5. 거지같은 상황에서 ‘거지가 되지 않는’ 몇 가지 기술


상황을 당장 바꾸지 못하더라도,

나 자신이 무너지지 않게 지키는 기술은 만들 수 있습니다.


(1) 최소한의 몸 보호 습관

• 하루에 제대로 된 식사 1끼는 어떤 일이 있어도 챙긴다.

• 최소 6시간 수면을 기본값으로 둔다. (3+3으로 쪼개도 괜찮습니다.)

• 하루에 10분이라도 햇빛을 보며 걷는 시간을 만든다.



이건 멋있는 말보다 중요한 부분입니다.

몸이 박살나면, 아무 생각도, 아무 결심도, 아무 각성도 오래 못 갑니다.




(2) 기록: 경험을 ‘데이터’로 만드는 일


거지같은 경험도 기록하기 시작하면 “데이터”가 됩니다.

• 오늘 어떤 일이 있었는지

• 그때 내가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 그 상황에서 나는 어떤 선택을 했는지



이걸 꾸준히 쌓으면, 나중에 이런 인사이트가 나옵니다.

• “아, 나는 ‘무시당함’을 특히 힘들어하는 사람이구나.”

• “나는 돈보다 ‘존중’이 깨질 때 더 빨리 무너지는 사람이구나.”

• “나는 이런 유형의 상사·고객과는 오래 못 가는구나.”



이게 바로 “자기 삶의 대시보드”입니다.

사업에서 데이터를 쌓듯이, 우리는 인생에서도 데이터를 쌓아야 합니다.




(3) 관계에서의 “최소 방어선” 그리기


완벽하게 관계를 정리할 수 없더라도, 경계선은 그을 수 있습니다.

• 내 사적인 이야기(가족사, 연애, 약점)는 아무에게나 털어놓지 않기

• 인격을 부정하는 말(“너는 원래…”)을 들었을 때는 반드시 선 긋기

• 나를 반복적으로 깎아내리는 사람과는,

업무/필요 대화 외의 에너지를 쓰지 않기



경계선은 “나도 나를 함부로 대하지 않겠다”는 선언입니다.




(4) 돈의 “생존 구역” 만들기


거지같은 상황에 오래 묶이는 이유 중 하나는 돈입니다.

그래서 완벽한 재테크보다, 생존 구역 확보가 더 중요합니다.

• 월급의 일정 비율(예: 10%)은 “탈출 자금 계좌”로 따로 모으기

• 이 돈은 여행·쇼핑이 아니라 ‘언제든 여기서 나갈 수 있는 힘’을 위한 돈이라는 이름 붙이기

• 투자도 좋지만, 생존 구역이 없는 상태에서

과도한 변동성 자산에 올인하지 않기



투자에서 현금 포지션이 심리적 안정을 주듯,

인생에서 이 “생존 구역 자금”은 거지같은 상황을 버틸 수 있는 심리적 완충장치가 됩니다.




(5) 배움으로 ‘쓰레기 경험’을 의미화하기


거지같은 경험은,

그냥 놔두면 쓰레기지만,

어느 순간 그것이 언어와 개념으로 정리되면 지식이 됩니다.

• 그때의 일을 글로 쓰기

• 비슷한 주제의 책을 읽고 내 경험과 연결해서 생각해보기

• 누군가에게 이야기로 풀어내면서, 감정이 아닌 인사이트로 뽑아내기



이 과정에서 우리는 어느 정도 거리를 확보하게 됩니다.


“그때의 나는 확실히 힘들었지만,

그 경험이 지금의 나를 전부 정의하진 않는다.”


이 문장이 나오는 순간,

우리는 더 이상 거지같은 경험에 종속된 사람이 아닙니다.


그 경험을 자신의 언어로 재해석한 사람이 됩니다.




6. 투자로 비유해 보는 ‘거지 모드’ 탈출 전략


투자 언어로 정리해보겠습니다.


1) 거지같은 상황 = 극단적인 베어마켓

• 시장이 폭락하고, 모두가 비관적이며,

• 좋은 기업조차 헐값에 거래되는 구간.



여기서 중요한 건 두 가지입니다.

1. 내 계좌가 마진콜 안 나게 지키는 것

• 과도한 레버리지(과한 책임, 무리한 관계, 감정 노동)를 줄이는 것


2. 좋은 자산을 헐값에 던지지 않는 것

• 내 자존감, 내 가치관, 내 재능을

순간적인 공포나 분노 때문에 아무에게나 넘기지 않는 것



2) ‘거지’가 된다는 것 = 스스로를 패닉 셀하는 것

• “난 원래 이 정도 인생이야.”

→ 자신의 잠재가치를 영구적으로 낮게 평가하는 행위


• “여기서 나가도 별수 없어.”

→ 미래 현금흐름(가능성)을 아예 0으로 설정하는 행위


• “다 썩었어. 나도 이렇게 살래.”

→ 스스로를 질 낮은 자산으로 구조조정하는 행위



이건 시장 탓이 아니라, 내가 내 자신을 처리하는 방식의 문제입니다.




7. “거지는 피하자. 하지만 거지같았던 나까지 미워하진 말자.”


오늘 주제를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거지같은 경험도 경험이다.

하지만 그 경험을 견디겠다고,

내 삶 전체를 거지처럼 취급하지는 말자.”



우리가 피해야 하는 건 ‘거지 같은 상황’ 그 자체보다,

그 상황을 견디겠다고 내 안의 존엄마저 할인해버리는 태도입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이 글을 쓰면서 꼭 덧붙이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이미 한동안 거지 모드로 살았던 시기가 있더라도,

그때의 나를 완전히 부정할 필요는 없다는 겁니다.



그 시기의 나는,

• 살아보겠다고

• 버텨보겠다고

• 나름의 방식으로 안간힘을 쓰던 미숙한 생존자였을 뿐입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때의 나를 부끄러운 실패작으로 지우는 것이 아니라

그때의 나에게서 이렇게 말해주는 겁니다.


“수고했다. 이제는 그 방식 말고,

우리에게 더 맞는 방식을 같이 찾아보자.”




8. 당신에게 던지는 질문


글을 마무리하면서,

이 글을 읽을 여러분께 묻고 싶습니다.

• 당신이 겪었던 가장 ‘거지같았던 경험’은 무엇이었나요?

• 그 경험이 지금의 당신에게 남긴 진짜 자산은 무엇인가요?

• 혹시 아직도 그때의 상처 때문에

스스로를 헐값에 평가하고 있지는 않나요?



댓글로 여러분의 이야기를 들려주셔도 좋겠습니다.

서로의 “거지같았던 시간들”을 나누다 보면,

우리가 생각보다 훨씬 단단한 사람들이라는 걸

서서히 확인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거지같은 경험은 피할 수 없지만,

거지같은 태도는 선택이다.

시장이 나를 저평가해도,

내가 나를 헐값에 내놓지 않는 것,

그게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롱텀 투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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