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우리 회사엔 젊은 리더가 없냐”는 말을 들을 때마다 저는 늘 이런 반문부터 떠오릅니다.
1. 나이 탓을 하기 전에 질문을 바꿔보자
한국에서 “리더”라고 하면 아직도 자동으로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습니다.
머리가 희끗희끗하고 경력 20년 이상이고 회의실에서 말수는 적지만 마지막에 한 마디로 정리하는 사람
그래서 많은 조직에서 이런 암묵적인 공식이 존재합니다.
“리더 = 나이 + 연차 + 직급”
이 공식이 너무 강하게 박혀 있다 보니 젊은 리더가 나올 수 있는 자리는 애초에 설계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말하게 됩니다.
“아직 어려서 책임지기엔 그렇잖아.”
“경험이 더 쌓이면 그때 시켜도 늦지 않아.”
“실패하면 회사가 버틸 수가 없어.”
막상 속마음을 뜯어보면 이 말 속에는 다른 진실이 숨어 있습니다.
“내가 가진 권한을 나눠주기 싫다.”
“내가 만든 방식이 틀렸다는 걸 인정하기 싫다.”
“네가 성공하면 나는 뭐가 되지?”
한국에 젊은 리더가 없는 근본 원인을 ‘나이’나 ‘경험 부족’에서만 찾으면 중요한 질문을 놓치게 됩니다.
문제는 사람보다 구조에 더 가깝습니다.
2. 미국의 젊은 리더들은 대체 뭐가 다를까?
많이들 떠올리는 이름들이 있습니다.
메타의 마크 저커버그, 스케일 AI의 알렉산더 왕(Alexander Wang) 같은 젊은 창업자들, 그 외 수많은 20–30대 창업자들
이 사람들은 나이가 어려서 기회를 얻은 게 아닙니다.
그들이 속한 환경이 달랐습니다.
1) “나이가 어려도 숫자가 말해주면 인정한다”
미국에서는 특히 테크업계에서 일단 “결과”가 나오면 나이에 상관없이 리더로 올라갈 여지가 있습니다.
사용자 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났거나
매출이 증명됐거나
투자자가 “이 팀은 된다”고 판단했거나
그러면 이들이 젊어도 “그래, 리더는 얘네야”라고 인정해 줍니다.
한국은 어떤가요?
성과를 내도 조직에서 인정받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너무 깁니다.
“그래도 연차 순은 지켜야지”, “라인을 밟아야지”가 먼저 나옵니다.
결국 성과보다 연차와 인맥이 리더를 결정하는 구조에서는 젊은 리더가 탄생하기 어렵습니다.
2) 실패 비용이 다른 두 나라
미국의 젊은 리더들은 말 그대로 “깨져도 다시 할 수 있는” 환경에서 자랍니다.
물론 미국이라고 만만하진 않지만,
한 번 망해도 다시 창업할 수 있고
투자자도 “저 사람은 한 번 겪어봤으니 더 잘 할 것”이라고 보기도 하고
이직할 때도 “실패 경험”이 오히려 스토리가 됩니다.
한국은 어떤가요?
한 번 망하면 “저 사람은 쫄딱 망한 사람”이 됩니다.
회사에서 큰 실수를 한 번 하면 그 이후로는 중요한 일에서 자동 제외됩니다.
실패는 “경험”이 아니라 “낙인”으로 남습니다.
이 환경에서 누가 20, 30대에 리더 자리를 선뜻 맡으려고 할까요?
실패의 책임은 온전히 개인 몫인데 권한은 온전히 회사 몫이라면요.
3. 한국에 젊은 리더가 없는 진짜 이유들
이제 조금 더 찐하게 들어가 보겠습니다.
제가 보는 근본적인 이유는 몇 가지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1) “위에서 아래로”만 흐르는 권한 구조
한국 조직은 여전히 이런 흐름이 강합니다.
돈과 정보와 결정권은 위로 모이고 책임과 업무량은 아래로 흘러간다.
젊은 리더가 나오려면 일찍부터 작은 결정권이라도 맡아볼 수 있어야 합니다.
작은 팀이라도 운영해보고
작은 예산이라도 책임져 보고
작은 제품이라도 처음부터 끝까지 맡아봐야 합니다.
하지만 많은 한국 조직에서는 “중간단계의 리더십 연습” 단계가 거의 없습니다.
팀장은 곧 “관리자”가 아니라 그냥 “윗사람”이 되고
그 아래에는 사실상 “실무자”만 쌓여 있습니다.
그러니 리더 경험을 해 볼 수 있는 층이 비어 있고 그 자리를 채우기 위해 연차만 더 많은 사람들끼리 계속 돌려 앉는 구조가 됩니다.
(2)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라 “시킨 대로 하는 사람”을 뽑아온 역사
우리가 지난 수십 년 동안 조직에서 키워온 사람상(像)을 떠올려 봅니다.
말 잘 듣고
불만 안 드러내고
시키면 밤새워서라도 해내는 사람
이런 사람을 “일 잘한다”고 평가해왔습니다.
그런데 리더라는 역할은 정반대입니다.
질문해야 하고
기존 방식을 의심해야 하고
때로는 위에 “NO”라고 말해야 합니다.
우리가 키운 인재상과 우리가 원하는 리더상 사이에 큰 모순이 있습니다.
“생각하지 말라고 키워놓고 어느 날 갑자기 ‘이제 네가 리더야, 왜 주도적으로 안 해?’라고 묻는 꼴”
이 모순이 해결되지 않는 한 젊은 리더가 아니라 그냥 나이 든 실무자만 계속 양산됩니다.
(3) 대표의 가치관 : “젊은 리더”는 말뿐인 슬로건인가
핵심은 대표와 최고 리더들의 가치관입니다.
“나는 젊은 사람한테 진짜로 권한을 줄 준비가 되어 있나?”
“내가 틀릴 수 있다는 걸 인정할 수 있나?”
“내가 만든 회사 문화 일부를 부숴도 괜찮은가?”
이 질문에 “그래도…” 라는 말이 자꾸 붙는다면 그 조직의 젊은 리더 이야기는 대부분 브랜딩용 문구에 그칩니다.
반대로 정말 젊은 리더가 많은 조직을 보면,
실패해도 다시 기회를 주고
의견 충돌을 두려워하지 않고
“어리니까 네가 해봐”가 아니라
“제일 잘 아니까 스스로 책임져”라고 말합니다.
4. 그럼 우리는 뭘 바꿔야 할까? (희망편)
비판만 하면 솔직히 읽고 나서 허무합니다.
“그래, 다 알겠는데 그래서 어쩌라고?”가 남죠.
그래서 저는 우리가 지금 당장시도해볼 수 있는 변화들을
조금 현실적으로 적어보려고 합니다.
1) “나이 제한 없는 프로젝트 리더”를 만들어보자
회사의 공식 직급과 별개로 특정 프로젝트만큼은 가장 그 일을 잘 이해하는 사람이 리더가 되게 하는 겁니다.
나이가 아니라,
아이디어를 냈든
고객을 가장 잘 알고 있든
데이터와 현장을 제일 많이 들여다본 사람이든
그 사람에게 진짜 권한과 책임을 함께 주는 겁니다.
작은 프로젝트부터 시작해도 좋습니다.
이 한 번의 경험이 그 사람에게는 평생 갈 자산이 됩니다.
2) “실패자 보호 장치” 없는 젊은 리더 시스템은 위선이다
젊은 리더를 세우고 싶다면 꼭 같이 가야 하는 게 하나 있습니다.
실패했을 때 그 사람을 어떻게 지킬지에 대한 약속이죠.
실패해도 인사평가에서 완전히 무너지지 않게,
실패 리뷰를 “처벌 회의”가 아니라 “학습 회의”로 만들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더 큰 역할을 맡길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
이게 없으면 젊은 리더는 계속 생각합니다.
“성공해도 내 것이 아니고, 실패하면 내 탓이면, 내가 이 자리를 왜 맡아야 하지?”
3) 40·50대 리더에게 필요한 건 ‘자리를 비워주는 용기’
젊은 리더가 없는 사회에서 가장 큰 키는 사실 기성 리더들이 쥐고 있습니다.
자리를 완전히 내어주라는 말이 아니라
결정 과정에 젊은 사람을 동석시키고
중요한 자리에 함께 서게 하고
공식 석상에서 “이 사람의 판단을 믿는다”고 공개적으로 말해 주는 것
이 한 번의 말이 한 사람의 인생을 통째로 바꿔놓을 때가 많습니다.
5. 우리 세대가 던져야 할 질문
이 이야기는 “한국엔 왜 젊은 리더가 없을까?”에서 끝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나는 내 주변에서 단 한 명의 젊은 리더라도 진짜로 키우고 있는가?”
혹은 좀 더 직접적으로,
나는 후배에게 ‘자리’를 나눠 주고 있는가?
내가 가진 노하우와 권한을 넘겨줄 준비가 되어 있는가?
내가 리더라면 나보다 어린 사람에게 공개적으로 ‘신뢰’를 표현한 적이 있는가?
젊은 리더는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지는 존재가 아닙니다.
누군가의 “그래, 네가 해봐. 내가 뒤에서 책임질게.”
이 한 문장에서 시작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정말 궁금한 것...
이제 공을 여러분께 넘기고 싶습니다.
한국에도 충분히 젊은 리더가 있을 수 있습니다. 이미 있는 곳도 있죠.
다만 그들이 앞으로 나올 수 있는 길을 우리가 아직 제대로 깔아주지 못했을 뿐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리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