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연애예능을 보고 허무해지는 이유

관계의 KPI화와 감정 노동의 플랫폼화

by DataSopher




넷플릭스 연애예능이 “계속” 나오는 이유?

‘체류시간’을 설계한다


요즘 넷플릭스를 켜면 “또?” 싶은 연애 프로그램이 눈에 들어오죠. 보고 나면 기분이 찝찝한데 다음 화 예고편이 뜨면 손가락이 멈춰요. 플랫폼은 조용히 승리합니다.


저는 이 현상을 “사람들이 타락했다” 같은 도덕 재판으로 설명하고 싶지 않아요. 넷플릭스가 무엇을 최적화하는 회사인지(그리고 무엇을 최적화당하는지)를 데이터의 언어로 해부해보면 의외로 답이 담백해집니다.



넷플릭스가 진짜로 파는 건 ‘콘텐츠’가 아니라 ‘시간’입니다.

넷플릭스는 반년에 한 번씩 시청 데이터를 묶어 공개합니다. 2025년 하반기만 해도 총 시청 시간이 수십억 시간(96B hours) 규모로 잡혀요. 이 보고서의 핵심 지표는 “얼마나 많이 봤는가”를 ‘조회수(views = 총 시청시간/러닝타임)’로 표준화해 비교한다는 점입니다. 작품성 논쟁보다 더 위에 있는 KPI는 체류시간과 완주율이에요. ([about.netflix.com][1])


연애 리얼리티는 이 KPI에 특화된 장르입니다.


- 서사 이해 비용이 낮고(중간부터 봐도 됨)

- 감정 기복이 크고(분노/질투/대리수치)

- 다음 화로 넘어가는 “미끼(클리프행어)”가 쉬워요


플랫폼 입장에선 제작비 대비 시청시간을 뽑아내기 좋은 포맷이죠.



“끝까지 보게 만듭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자극의 구조입니다. 연애 예능은 대개 장치를 반복합니다.


- 규칙: 고립/매칭/패널티/선택(게임처럼 단순)

- 보상: ‘커플’이라는 즉시 결과물(장기 서사 필요 없음)

- 갈등: 오해와 편집, 삼각관계, 집단 규범(“누가 문제냐”)

- 확산: 짧은 클립으로도 전달되는 장면(릴스/쇼츠 친화)


이 구조는 개인의 취향을 넘어 알고리즘이 좋아하는 “신호”를 만듭니다. 중도 이탈이 적고 재생이 이어지고 공유가 일어난다. 플랫폼이 보는 건 “호감”이 아니라 “지속”인거죠.



넷플릭스는 ‘분노’를 팔기보다 ‘대화거리’를 팝니다.

“사람들의 분노를 부추겨서 돈을 번다”는 말은 절반만 맞습니다. 더 정확히는 분노 자체보다 ‘논쟁이 계속되는 상태’가 돈이 됩니다. 왜냐하면 논쟁은 곧 체류시간(시청) + 체류시간(댓글/커뮤니티) + 재방문으로 연결되니까요.


게다가 넷플릭스는 한 번에 다 공개(완전 몰아보기)만 하지 않습니다. 일부 리얼리티는 몇 주에 걸쳐 배치 공개를 하면서 마치 주간 방송처럼 “대화의 수명”을 늘립니다. 이 방식은 작품이 SNS에서 오래 떠다니게 만들죠. ([Parrot Analytics][2])


결국 연애 예능은 ‘콘텐츠’이면서 동시에 마케팅 엔진입니다.



광고 요금제 시대, “무해한 몰입”이 돈이 됩니다.

광고 모델이 커질수록 플랫폼은 더 노골적으로 “광고주가 좋아하는 시청 환경”을 설계합니다. 넷플릭스는 광고 사업을 핵심 성장축으로 삼아 기술/구매/측정 체계를 확장해왔고(인하우스 광고 기술 롤아웃 등), 광고 상품 자체를 고도화하고 있어요. ([about.netflix.com][3])


이때 연애 리얼리티의 장점은 아주 현실적입니다.


- 반복 시청이 많고(광고 노출 기회 많음)

- 글로벌로 포맷 복제가 쉽고

- 제작 속도가 빠르며

- “지나치게 무거운 이슈”보다 광고주 리스크가 상대적으로 낮을 수 있어요(정치/전쟁보다 안전한 편)


즉 연애 예능은 “저급해서”가 아니라 비즈니스 구조상 효율이 좋아서 늘어납니다.



그런데 왜 보고 나서 자꾸 허무해질까요?

여기서부터는 넷플릭스를 비난하기보다 자신을 조금 더 정교하게 이해해야 합니다. 연애 예능은 사랑을 보여주는 듯하지만 실제로는 사랑을 측정 가능한 이벤트로 바꿉니다.

호감은 ‘선택’이 되고 선택은 ‘탈락’이 되고 탈락은 ‘서사’가 됩니다. 그 과정에서 사랑은 관계가 아니라 경쟁이 되죠.


이 구조를 오래 보다 보면 현실의 관계도 무의식적으로 KPI화됩니다.


- “상대가 날 얼마나 좋아하지?”

- “내가 더 우위인가?”

- “여기서 손해 보나?”


사랑이 손익 계산이 되면서 피곤해져요. 재미는 있었는데 마음이 줄어든 느낌. 그게 허무의 정체입니다.



그럼 넷플릭스는 ‘돈만’ 보고 있을까? (제 결론: 돈만 보진 않는다. 하지만 돈이 방향을 정한다)

넷플릭스가 돈만 보는 회사냐고요? “돈만”은 아닙니다.

넷플릭스는 기본적으로 ‘사람이 무엇에 멈추는가’를 연구하는 회사입니다. 그 연구의 최종 목적이 “인간 이해”라기보다 지속 가능한 구독/광고 비즈니스라는 게 현실이죠.


그래서 저는 이렇게 제안하고 싶어요.

연애 예능을 끊어야 한다는 도덕 훈계가 아니라 내 시간을 어디에 둘지 내가 결정하는 힘을 되찾자는 제안입니다.


- 재생 버튼을 누르기 전에 3초만 묻기: “이건 나를 회복시키나, 소모시키나?”

- 소모형 콘텐츠를 봤다면 회복형 콘텐츠를 1개 붙이기(책/산책/대화)

- ‘분노 시청’이 시작될 때 멈추기: 분노는 내 시간이 플랫폼 KPI로 변환되는 신호입니다


플랫폼은 계속 최적화할 겁니다. 그러니 이제는 우리 자신을 최적화해야 해요. AI와 데이터가 삶을 쉽게 만들수록 “무엇을 보지 않을지”가 가장 고급 기술이 됩니다.


마지막으로 질문 하나 남겨볼게요.

여러분이 넷플릭스를 보고 난 뒤 ‘오히려 마음이 좋아졌던’ 콘텐츠는 무엇이었나요?

그 목록이 모이면 우리만의 편안한 알고리즘이 됩니다.







[1]: https://about.netflix.com/en/news/what-we-watched-the-second-half-of-2025

"What We Watched the Second Half of 2025"


[2]: https://www.parrotanalytics.com/academy/the-truth-of-binge-vs-weekly-release-strategies

"The truth of binge vs. weekly release strategies"


[3]: https://about.netflix.com/news/netflix-celebrates-two-years-of-advertising

"Netflix Celebrates Two Years of Advertis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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