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모가 기회가 되는 나라에서 우리가 놓치는 것들
어떤 날은 이런 생각이 들죠. “아무리 봐도 한국에서는 서구적으로 생기면 인생이 좀 더 ‘편하게’ 굴러가는 것 같다.”
이 문장에는 질투도, 체념도, 분노도 섞여 있어요. 그런데 저는 여기서 한 발 더 들어가 보고 싶습니다. 이게 정말 “개인의 예민함”일까요 “사회가 만들어낸 편의성(편함의 우대)”일까요.
데이터를 조금만 펼치면 이 감각이 기분이 아니라는 정황이 나옵니다.
예컨대 직업훈련·고용 쪽 연구에서는 구직 과정에서 “외모로 인해 차별을 경험했다”는 보고가 있고 그 경험이 취업 이행과 심리 요인에도 영향을 줄 수 있음을 다룹니다. ([krivet.re.kr][1])
또 국가인권위원회는 “대머리라는 이유로 채용을 거부”하거나 “외모만을 이유로 채용을 취소”하는 사례를 외모 차별로 판단하며 재발방지를 권고한 바가 있어요. 이건 ‘농담’이 아니라 제도적으로도 문제로 다뤄지는 영역입니다. ([humanrights.go.kr][2])
그럼 질문을 바꿔보죠.
왜 하필 “서구적 외모”가 한국에서 더 강한 프리미엄처럼 체감될까요?
저는 이걸 ‘취향’이라기보다 “학습된 기준”이라고 봅니다. 한국은 압축성장의 과정에서 글로벌 기준(특히 미국·유럽의 미디어 표준)을 ‘성공의 언어’로 빠르게 번역해온 사회였고 그 번역의 부산물 중 하나가 외모의 표준화였어요. 서구적 외모는 어느 순간 “글로벌에 통하는 얼굴”이라는 상징 자본이 됩니다. 면접장에 들어갈 때 소개팅 앱에서 첫 사진을 올릴 때 심지어 일상적인 친절의 분배에서까지요. 문제는 여기서 “상징 자본”이 자꾸 “인간의 가치”로 오독된다는 겁니다.
그리고 이 상징 자본은 시장과 결합하면서 더 강해집니다.
‘외모 관리’는 더 이상 개인의 취미가 아니라 비용(시간·돈)과 기대수익(기회·관계·평판)을 따지는 투자처럼 굴러가요. 어떤 연구는 외모 관련 강박과 성형 선택이 차별과 낙인 경험과 연결될 수 있다는 맥락을 다룹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3])
그러니 외모가 “편함”을 주는 게 아니라 외모가 “생존 전략”으로 바뀌는 순간이 오죠. 편해 보이는 사람의 편함은 사실 시스템이 밀어주는 컨베이어벨트 위에 놓인 결과일 수도 있습니다.
여기서 더 불편한 지점이 있어요.
‘서구적 외모’ 프리미엄은 누군가에게는 혜택이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매일의 피로가 됩니다. 왜냐하면 이 프리미엄은 “비가시적 감점”으로 작동하거든요. 눈에 띄게 차별하지 않아도 기회가 조금씩 미끄러져 나가요. “인상이 좋다/깔끔하다/이미지가 있다” 같은 말들이 친절하게 포장된 평가어로 떠다닐 때 그 말은 종종 능력과 무관한 문지기 역할을 합니다.
그런데 한국 사회도 변화를 ‘시도’는 해왔습니다. 2019년 개정된 채용절차 관련 제도에서는 직무와 무관한 개인정보 요구를 제한하는 취지(용모·키·체중 등 신체적 조건 포함)가 명시됩니다. 현실 적용에는 예외와 관행의 벽이 있고 증명사진 문제도 입법 과정에서 논쟁이 컸던 걸로 알려져 있어요. ([대한민국 정책브리핑][4])
제도는 방향을 잡으려 하지만 문화(관행)는 더 느리게 움직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법이 있어도 체감은 안 변한다”고 느끼죠.
그럼 우리는 뭘 할 수 있을까요. 저는 거창한 결론 대신 실무적인 세 가지를 제안하고 싶습니다.
첫째, 개인에게 필요한 건 “자기 가치의 기준을 분리하는 기술”입니다.
외모가 기회를 여는 문이 될 수는 있어도 내 인생의 전체 성적표가 되면 안 돼요. 외모는 ‘인터페이스’일 뿐 ‘운영체제’가 아닙니다. 운영체제는 태도, 학습, 관계의 신뢰, 문제 해결력이죠.
둘째, 조직은 채용에서 “평가 언어”를 바꿔야 합니다.
블라인드는 사진을 가리는 기술이 아니라 ‘좋은 인상’ 같은 모호한 말 대신 직무 역량을 측정하는 질문을 설계하는 일입니다. 평가 기준이 정교해질수록 외모가 끼어들 자리가 줄어듭니다.
셋째, 사회는 미디어를 읽는 법을 가르쳐야 합니다.
서구적 외모 프리미엄은 결국 이미지 산업의 문법과 연결되어 있어요. “왜 이 얼굴이 예쁜가”를 묻는 순간 우리는 권력의 형태를 보게 됩니다. 그걸 보는 눈이 많아지면 프리미엄은 약해집니다. 프리미엄은 ‘무의식’에서 가장 강하니까요.
저는 이런 글을 쓰면서도 조심스럽습니다. 누군가의 외모를 평가하려는 글이 아니라 우리가 사는 시스템의 문법을 해부하려는 글이니까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저는 희망을 놓고 싶지 않아요. 한국은 한 번 마음을 바꾸기 시작하면 생각보다 빠르게 문화가 바뀌는 사회이기도 하거든요. “예쁘면 편하다”가 당연한 말이 아니라 “그 편함은 누군가의 불편 위에 만들어졌을 수 있다”는 자각이 퍼지는 순간부터요.
같이 얘기해보고 싶어요.
여러분이 살면서 느낀 “외모 프리미엄”은 어떤 장면에서 가장 선명했나요? 그리고 그 장면에서 우리가 바꿀 수 있는 ‘작은 규칙’이 하나 있다면 뭐라고 생각하세요?
[1]: https://www.krivet.re.kr/repository/bitstream/202405/7133/2/KC0619_fulltext.pdf
"노동시장 이행에서 외모차별의 영향"
[2]: https://www.humanrights.go.kr/site/program/board/basicboard/view?boardid=616469&boardtypeid=24&menuid=001004002001
"인권위, 대머리를 이유로 채용 거부는 외모 차별 < 보도자료 ..."
[3]: https://eng.kwdi.re.kr/inc/download.do?no=1&upIdx=102745&ut=A
"Focusing on Obsession with Appearance and Cosmetic ..."
[4]: https://www.korea.kr/special/policyCurationView.do?newsId=148866903
"채용절차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