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로가 하나로 합쳐지는 이유
어느 날부터 “전문성”이라는 단어가 낡게 느껴진다.
예전엔 직함이 곧 정체성이었다. 회계사, 마케터, 개발자, PM 명함 한 장이면 설명이 끝났다. 그런데 지금은 이상하다. 일을 잘하는 사람일수록 자기 직무를 ‘자기 직무’라고 부르지 않는다.
“문제를 해결한다”고 말한다.
“제품을 만든다”고 말한다.
“의사결정을 설계한다”고 말한다.
AI가 오면서 진로는 정말 하나로 합쳐질까?
나는 절반만 동의한다. ‘전문성이 사라진다’는 말은 과장이고 ‘전문성이 이동한다’는 말이 정확하다. 전문성은 직무의 울타리에서 빠져나와 더 위쪽 인간이 책임져야 하는 층으로 올라가고 있다.
예전의 전문성은 ‘기억’과 ‘반복’의 승리였다.
얼마나 많이 알고 있는가,
얼마나 빠르게 처리하는가,
얼마나 오차 없이 반복하는가.
그런데 생성형 AI는 이 영역을 너무 빨리 잠식한다. 문서 요약, 코드 초안, 기획안 뼈대, 보고서 초안. “일의 초안”을 만드는 속도가 상식 밖으로 빨라졌다. 이때부터 게임의 규칙이 바뀐다.
이제 남는 질문은 딱 세 가지다.
1. 무엇이 문제인가?
2. 어떤 기준으로 ‘좋은 답’을 고를 것인가?
3. 그 선택의 결과를 누가 책임질 것인가?
여기서 인간의 전문성이 시작된다.
AI는 답을 잘 만든다. 하지만 문제를 ‘정의’하는 데는 약하고 기준을 ‘정치적으로’ 세우는 데는 더 약하다. 무엇을 최적화할지(속도? 비용? 안전? 공정?), 누구의 효용을 우선할지(고객? 직원? 사회?), 실패했을 때 어떤 피해를 감수할지. 이런 건 가치 판단이다. 가치 판단은 사람의 이름으로 기록된다.
그래서 요즘 채용과 커리어 담론에서 “한 우물”만으론 부족하다는 말이 나온다. ‘풀스택’, ‘크로스스킬’, ‘커리어 오너십’ 같은 단어들이 떠오르는 이유도 결국 같다. 직무가 바뀐 게 아니라 일의 중심축이 바뀐 것이다. 여러 강을 건너는 사람이 필요해졌다는 선언. ([Brunch Story][1])
그런데 여기서 많은 사람들이 착각한다.
“그럼 나는 이제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해야 하나?”
맞다. 방향이 있다. 잡다함이 아니라 수렴이다.
AI 시대의 진로가 하나로 합쳐진다는 말은 모든 직업이 똑같아진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반대로다. 각자의 도메인(금융, 교육, 의료, 제조, 콘텐츠)은 더 깊어지는데 그 위에 공통의 ‘메타 역량’이 겹친다. 나는 이 메타 역량을 이렇게 부르고 싶다.
문제정의 × 데이터 감각 × 도구 활용 × 스토리텔링 × 책임(윤리/리스크)
이 다섯 가지는 직무를 초월한다.
마케터도 필요하고 개발자도 필요하고 디자이너도 필요하다. 이제는 각자 자기 영역에만 머무는 순간 일이 ‘단절된 파편’이 된다. 기업이 찾는 건 파편이 아니라 끝까지 책임지는 흐름이다. 최근 채용 트렌드에서도 직무역량 중심 선발이 강화되고 AI 활용이 늘고 있다는 이야기가 반복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국경제][2])
흥미로운 건 역설이다.
사람들은 “AI 때문에 전문성이 죽는다”고 말하지만 현장은 “자기 분야 전문성을 가진 인재”를 더 원한다고 답한다. ([한국경제][2])
왜냐하면 AI를 쓰는 순간 얕은 지식은 더 빨리 들통나기 때문이다. AI는 누구에게나 공평한 ‘증폭기’다. 실력이 있으면 더 강해지고 실력이 없으면 더 티가 난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결론 내린다.
AI 시대의 전문성은 ‘한 가지를 깊게 하되 그 깊이를 현실의 문제로 연결하는 사람’에게서 나온다.
연결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바로 진로가 하나로 합쳐지는 느낌 즉 “나는 결국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이라는 정체성이다.
마지막으로 이 시대에 가장 실용적인 진로 질문 하나만 남겨보자.
“내가 잘하는 것을 나열하기 전에,
내가 끝까지 책임질 수 있는 문제는 무엇인가?”
여기서부터 진로는 ‘찾는 것’이 아니라 ‘세워지는 것’이 된다.
AI는 방향을 정해주지 않는다. 속도를 올려줄 뿐이다.
방향은 여전히 인간의 몫이다.
같이 얘기해보고 싶다.
요즘 “전문성”을 어디에서 느끼나요?
당신의 진로는 정말 하나로 합쳐지고 있나요?
[1]: https://brunch.co.kr/%40career/1039
"하나의 전문성으로는 부족 - 풀스택 인재가 대세!"
[2]: https://www.hankyung.com/article/202512089434g
"내년 채용 트렌드 9가지 키워드는?…AI 기반 채용 늘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