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팔년도형 ‘노예 KPI’ 해부
어떤 회사들은 “일 잘하는 사람”을 이렇게 정의하죠.
평정심이 좋고, 잘 피하고, 멀티태스크 빠르고, 억울해도 잘 참는 사람.
처음 들으면 성숙해 보이지만 저는 이 정의를 볼 때마다 등골이 서늘해집니다. 이건 ‘생존 매뉴얼’이기 때문입니다.
조금 과격하게 말하면 이런 기준이 칭찬으로 통하는 회사는 대개 문제를 개인의 정신력으로 덮는 조직입니다. 시스템이 일을 못하니 사람이 대신 방어하는 거죠. “잘 피한다”는 말은 업무 경계가 없고 책임이 뒤엉킨 환경에서 살아남는 회피 기술을 뜻합니다. “멀티태스크가 빠르다”는 말은 사실 업무가 쪼개져서 계속 끼어드는 구조를 인정하는 표현일 때가 많고요. “억울해도 참는다”는 건 더 위험합니다. 이건 협업이 아니라 침묵을 성과로 바꾸는 기술입니다.
데이터는 이 분위기가 개인의 ‘기분 문제’가 아니라는 걸 보여줍니다. 한 보고서(‘청년 삶의 질 2025’)에 따르면 2024년 기준 청년(19~34세)의 32.2%가 번아웃을 경험했고 이유로는 ‘진로 불안’이 가장 컸다고 합니다. ([대구MBC][1])
또 Gallup은 2024년 글로벌 직원 중 41%가 “많은 스트레스”를 경험한다고 요약했고 낮은 몰입이 세계 경제에 큰 비용을 만든다고 지적합니다. ([ahtd.org][2])
이건 “요즘 애들 멘탈이 약해서”가 아니라 일하는 구조가 인간의 한계를 공격하는 쪽으로 진화했다는 신호에 가깝습니다.
여기서 철학 얘기를 잠깐 꺼내볼게요. 조직이 사람에게 요구하는 덕목은 늘 시대를 반영합니다. 산업화 초기는 ‘성실’이 미덕이었고 고도성장기엔 ‘인내’가 영웅이었습니다. 그런데 2026년의 경제는 다릅니다. 지식 노동의 생산성은 집중·판단·관계의 질에서 나오고, 이 세 가지는 공포와 억울함 속에서 급격히 망가집니다. 그러니 “참아라”는 문화는 생산성 파괴 장치가 됩니다.
진짜 좋은 회사는 “평정심 좋은 사람”을 뽑아 위기를 넘기지 않습니다. 평정심이 필요 없는 구조를 만듭니다.
- 멀티태스크를 칭찬하는 대신 업무 흐름을 단일화하고 우선순위를 명확히 합니다.
- “잘 피하라”가 아니라 역할과 책임(R&R)을 계약처럼 선명하게 합니다.
- “억울해도 참아라”가 아니라 의사결정 로그와 피드백 루프를 남깁니다. 납득 가능성이 신뢰를 만들거든요.
그리고 여기서 역설이 생깁니다. “잘 참는 사람”이 많은 회사는 단기적으로 조용합니다. 불만이 사라져서가 아니라 말이 사라져서요.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혁신이 멈춥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위대한 제품과 조직은 대개 불편한 진실을 말할 수 있는 문화에서 나오니까요. 침묵은 안정이 아니라 경고등을 떼어낸 자동차에 더 가깝습니다.
저는 이제 ‘일잘러’의 정의를 바꿔야 한다고 봅니다.
일을 잘하는 사람이란 감정을 억누르는 사람이 아니라 문제를 구조로 바꾸는 사람입니다.
위대한 회사란 그런 사람이 번아웃으로 사라지지 않게 일의 문법을 설계하는 회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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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https://dgmbc.com/NewsArticle/814444
"[심층] 청년 3명 중 1명 '번아웃' 경험···이유는 \"진로 불안\""
[2]: https://www.ahtd.org/files/state-of-the-global-workplace-2024-key-insights.pdf
"State of the Global Workplace: 2024 Repor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