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자 야근이 “아직도” 사라지지 않는 구조적 이유
어느 업종은 야근이 “가끔”이고 개발은 야근이 “기본 옵션”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이걸 개인의 성실함이나 팀장의 성향 탓으로만 돌리면 답이 영원히 안 나와요. 개발자의 야근은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시스템의 산물’인 경우가 많거든요.
먼저 숫자부터 깔끔하게 잡고 갈게요. 국내 조사에서도 IT·개발 직무는 야근을 자주 하는 직무 상위권이고, 한 번 야근할 때 추가로 일하는 시간은 길게 나타납니다. (예: 월평균 5.1회, 1회당 추가 2시간 내외, IT·개발은 1회당 2시간 24분 수준으로 응답) ([이코노미스트][1])
또한 개발자 일자리 환경을 다룬 국내 보고서에서는 개발자 다수가 주 2회 이상 야근 같은 강한 신호를 보여줍니다. ([spri.kr][2])
한국 전체 노동시간은 줄어드는 흐름이지만(하향 추세) 개발 현장 체감은 “왜 나는 그대로지?”가 됩니다. ([조선일보][3])
그럼 질문은 하나죠.
왜 ‘개발’이라는 직업만 아직도 야근을 붙잡고 있는가?
1) 개발은 “보이지 않는 일”이 너무 많다: 추정 불가능성의 비용
개발은 빙산이에요. 화면에 보이는 기능은 30%고, 나머지 70%는 보통 아래에 숨어 있습니다.
레거시와 기술부채(당장 안 보이지만 반드시 갚아야 하는 빚)
예외 처리, 보안, 성능, 장애 대응
테스트/배포/모니터링/롤백 같은 “운영의 기술”
문제는 이 70%가 일정표에 거의 적히지 않는다는 점이에요.
그런데도 비즈니스는 약속을 합니다. “이번 분기 안에 런칭.”
약속이 먼저 나오면 나중에 현실이 따라잡는 방식은 딱 하나죠. 야근.
2) “정해진 가격”과 “변하는 요구”가 충돌한다: 계약 구조가 야근을 만든다
특히 SI/외주/고정가(혹은 고정 일정) 구조에서는 이런 장면이 흔합니다.
요구사항은 계속 늘어남(스코프 크립)
일정/예산은 그대로
품질은 최소치로 버팀
마지막에 남는 건 사람의 시간(=야근)
이 구조는 개인을 갈아 넣는 게 아니라 시간을 ‘완충재’로 쓰는 시스템이에요.
야근은 “누군가의 부족함”이 아니라 “계약의 기본 작동 방식”이 됩니다.
3) 개발은 상시 운영 산업이 됐다: 배포 이후가 ‘진짜 시작’
예전엔 “만들고 끝”이었죠. 지금은 “만들고 운영”입니다.
장애는 새벽에 오고
트래픽은 이벤트 때 폭증하고
보안 이슈는 공지 없이 터지고
온콜은 심리적 상시 대기 상태를 만듭니다
그래서 개발자는 종종 근무시간을 ‘선형’으로 살지 못합니다.
특히 제품이 커질수록 야근은 ‘업무량’이 아니라 리스크 관리 비용으로 나타나요.
4) 야근을 미덕으로 만드는 문화: “영웅서사”가 팀을 망친다
더 무서운 건 문화입니다.
야근이 반복되면 어느 순간 이런 문장이 칭찬처럼 떠다녀요.
“역시 ○○님이 밤새 해결했지.”
“런칭 앞두면 당연히 고생해야지.”
“개발자는 원래…”
이건 로맨스가 아니라 조직이 실패 비용을 개인에게 전가하는 언어예요.
야근이 ‘성과’로 보이기 시작하면 시스템 개선은 멈추고 “버티기”만 남습니다.
여기서 생산성의 역설이 터집니다. 오래 일할수록 성과가 떨어지는 현상은 국내에서도 반복적으로 지적돼 왔고, 비과학적 프로세스가 야근의 근본 원인으로 언급되기도 했습니다. ([미래를 보는 창 - 전자신문][4])
그럼 해법은? “야근이 필요 없는 구조로 바꿔라”
제가 좋아하는 문장은 이거예요.
개발 문화는 ‘설계’로 바뀐다.
현장에서 바로 먹히는 처방은 의외로 단순합니다.
1. 스코프를 자르지 말고 ‘순서를 자르기’
다 만들려다 야근합니다. “이번 주에 반드시 되는 최소 단위”로 쪼개야 해요.
2. 기술부채를 ‘숨기지 말고 회계 처리’
기술부채는 숫자입니다. “이번 분기 부채 상환 15%”처럼 목표로 박아야 사라져요.
3. 릴리즈/장애 대응을 자동화(DevOps/관측성)로 이전
야근의 절반은 “사람이 반복하는 절차”에서 나옵니다. 자동화는 야근을 ‘구조적으로’ 제거합니다.
4. 야근을 칭찬하지 않는 팀 규범
“밤샘 해결”을 칭찬하는 순간 다음 밤샘을 예약하는 겁니다. 칭찬은 “재발 방지 설계”에게 가야 합니다.
개발자 야근이 남아 있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우리는 아직도 개발을 ‘공장 생산’처럼 관리하려고 하기 때문이에요.
개발은 지식 노동의 실험실입니다. 실험실에선 “계획”보다 “학습 속도”가 중요하죠.
저는 앞으로 개발자의 경쟁력이 “더 많이 코딩하는 사람”이 아니라,
야근 없이도 시스템을 굴리는 사람 즉 자동화·관측·우선순위·커뮤니케이션으로 리스크를 설계하는 사람에게로 이동할 거라고 봅니다.
당신이 겪는 야근은 당신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시스템이 아직 성숙하지 않아서일 가능성이 큽니다.
그러니 자책보다 먼저 질문을 바꿔보면 좋겠어요.
“왜 나는 야근을 할까?”가 아니라
“우리 팀은 왜 야근이 ‘필요한 구조’로 설계되어 있을까?”
여러분의 야근은 보통 (1) 일정 약속, (2) 요구사항 변경, (3) 장애/운영, (4) 팀 문화 중 어디에 가장 가까운가요?
#개발자야근 #IT업계 #워라밸 #번아웃 #기술부채 #SI외주 #프로덕트개발 #데브옵스 #애자일 #조직문화 #업무생산성 #커리어고민
[1]: https://economist.co.kr/article/view/ecn202310250051
"韓 직장인 10명 중 8명 “야근한다”…늦은 귀가, 월평균 5.1회"
[2]: https://spri.kr/download/22853
"개발자의 직업 가치와 일자리 만족도"
[3]: https://www.chosun.com/english/industry-en/2025/09/18/Z3CFUZWQWRGEBDNAAQHLTXANIE/
"South Korea's working hours drop faster than OECD average"
[4]: https://www.etnews.com/20160315000158
"야근 많을수록 업무성과 떨어져..`야근의 역설` 한국 기업문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