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의 불안을 먹고 자라는 사회

전쟁보다 더 위험한 것

by DataSopher

최근 세계적으로는 분쟁과 폭력으로 인해 2024년 말 기준 강제이주민이 약 1억 2,320만 명에 이르렀고, 2025년 인도적 지원이 필요한 아동은 1억 900만 명 규모로 제시됐습니다. 전쟁과 충돌을 겪은 사람들 가운데 약 22%는 우울, 불안, PTSD 같은 정신건강 문제를 겪는 것으로 WHO는 설명합니다. 전쟁은 누군가의 집과 몸과 일상을 무너뜨리는 현실이라는 뜻입니다.


게다가 전쟁은 총과 미사일만 남기지 않습니다. 최근 WHO 유럽은 우크라이나 전면전 이후 의료체계 공격이 2,254건 이상 기록됐다고 밝혔고, 유니세프와 유엔 자료는 아동·여성·피란민이 반복적으로 가장 취약한 집단이 된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2024년에 확인된 분쟁 관련 성폭력 사례에서 여성과 소녀 비중은 92%였습니다.


한국에서도 결코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닙니다. 최근 중동 전쟁 여파 속에서 종량제봉투 가격·수급 불안이 SNS를 통해 퍼지며 실제 사재기와 일시 품절이 벌어졌고, 일부 유통 채널에서는 판매 급증이 확인됐습니다. 정부는 가격 인상설과 북한 유입설 등을 허위정보로 규정하며 강경 대응을 예고했습니다. 즉, 전쟁 그 자체만이 아니라 전쟁을 둘러싼 공포 유통이 시민의 행동과 시장 질서까지 흔든 것입니다.





전쟁이 무서운 이유는 폭탄이 멀리 떨어진 나라에서 터지기 때문이 아니다.

진짜 무서운 것은 폭발음이 아주 빠르게 우리 사회의 감정 구조 안으로 들어온다는 데 있다. 사람들은 총알을 직접 맞지 않아도 불안에 맞는다. 화면 속 속보를 몇 번 보다 보면 마음은 이미 전쟁터에 가 있다. 물가는 오를 것 같고, 뭔가 부족해질 것 같고, 지금 당장 뭘 사두지 않으면 나만 뒤처질 것 같아진다. 이때 무너지는 것은 경제만이 아니다. 판단력, 신뢰, 공동체 감각이 함께 무너진다.


사회가 전쟁 자체보다도 전쟁이 만들어내는 불안을 어떻게 소비하고 유통하는지가 더 위험하다고 본다. 전쟁은 분명 비극이다. 더 잔인한 것은 비극을 해석하는 방식이다. 누군가는 피란민의 눈물을 보고 구조를 말하지만, 누군가는 같은 장면을 보고 클릭 수를 계산한다. 누군가는 아이들의 공포를 보며 평화를 말하지만, 누군가는 공포를 더 자극적인 썸네일과 더 독한 문장으로 재포장한다. 피해자는 현실에서 다치고, 가해자는 서사에서 이익을 챙긴다.


사회에는 이상한 습관이 하나 있다.

누군가의 고통이 발생하면 그다음에는 고통을 이용하는 산업이 생긴다. 불안이 커지면 정보 시장이 커지고, 공포가 커지면 선동이 늘고, 혼란이 커지면 누군가는 질서를 가장한 통제를 팔기 시작한다. 그래서 전쟁은 총을 든 자들만의 범죄로 끝나지 않는다. 총을 쏘지 않았지만 공포를 확대 재생산하며 사람들을 조종하는 자들까지 합쳐져야 비로소 하나의 구조가 완성된다.


더 심각한 문제는 많은 사람이 악으로 인식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대비하는 것뿐이다.”

“정보를 빨리 알려준 것뿐이다.”

“세상이 원래 불안한데 뭐가 문제냐.”

이런 말들은 늘 그럴듯하다. 하지만 공동체를 무너뜨리는 방식은 언제나 노골적이지 않다. 합리성의 언어를 빌려온다. 사재기는 생존 전략처럼 포장되고, 혐오는 현실 감각처럼 포장되고, 허위정보는 경고처럼 포장된다. 그러나 결과는 같다. 가장 약한 사람부터 더 빨리 밀려난다.


전쟁의 가장 큰 피해자는 아무 결정도 하지 못했던 사람들이다.

아이들, 노인, 가난한 사람들, 떠날 돈이 없는 사람들, 돌아갈 집이 사라진 사람들. 언제나 전쟁의 원인을 만들지 않았지만 가장 큰 비용을 지불한다. 불안을 조장하는 사회에서는 1차 피해자 위에 또 다른 2차 피해자가 생긴다. 충분한 정보와 자원을 갖지 못한 평범한 시민들이다. 누군가는 공포를 무기처럼 다룰 수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공포를 감당할 도구가 없다. 결국 불안은 위에서 설계되고 아래에서 소비된다.


여기서 아주 불편한 질문을 해야 한다.

도대체 누가 이 불안을 키우는가.

정말 전쟁만 문제인가.

전쟁을 핑계로 사람들의 감정을 수익화하는 사회가 더 본질적인 문제인가.


나는 후자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전쟁은 언젠가 끝나도 불안을 먹고 자라는 구조는 끝나지 않기 때문이다. 오늘은 전쟁이고 내일은 경기침체이고 모레는 범죄와 질병일 뿐이다. 소재만 바뀔 뿐 방식은 같다. 사람들을 차분하게 이해시키기보다 빠르게 흥분시키고, 사실을 설명하기보다 감정을 선점하고, 해결책을 고민하기보다 적을 만들어 분노를 묶어두는 방식이다. 이 구조가 굳어질수록 사회는 점점 생각하지 않는 군중을 원하게 된다.


그래서 지금 필요한 것은 막연한 낙관도 과장된 비관도 아니다.

필요한 것은 불안을 거부하는 훈련이다.

지금 들은 정보가 사실인지, 누가 이익을 보는지, 왜 이렇게 자극적으로 말하는지, 왜 피해자보다 분노와 소비가 먼저 호출되는지 묻는 태도다. 생각은 공포보다 느리지만 공동체를 지키는 것은 결국 생각이다.


평화는 전쟁이 없는 상태가 아니다.

평화는 타인의 고통이 누군가의 장사가 되지 않는 상태다.

피해자의 눈물을 콘텐츠로 쓰지 않고 시민의 불안을 시장으로 만들지 않으며 두려움을 권력과 이익의 연료로 쓰지 않는 사회. 나는 그런 사회가 진짜 문명이라고 생각한다.


전쟁보다 무서운건 총성이 아니다.

사람들이 남의 공포에 점점 무감각해지고 누군가의 불안을 이용하는 것을 능력이라고 착각하는 사회다.

그 사회는 멀리 있지 않다.

뉴스를 소비하는 우리의 손끝, 자극을 퍼뜨리는 우리의 공유 버튼, 확인되지 않은 말을 믿고 확산시키는 습관 속에서 이미 시작되고 있다.


지금 가장 먼저 막아야 할 것은 전쟁만이 아니다.

전쟁을 먹고 자라는 공포의 산업, 불안을 유통하는 인간의 습관, 그 위에 세워진 냉혹한 사회 구조다.

피해자를 구하는 일만큼 중요한건 가해의 수익모델을 부끄럽게 만드는 일이다.


전쟁은 사람을 죽이지만 불안을 조장하는 사회는 살아 있는 사람들의 판단과 연대를 먼저 죽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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