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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의 멸종 시대, 우리는 어떤 인간이어야 할까?

by DataSopher



“거짓말은 더 쉽게, 더 많이 퍼진다. 그리고 죽은 자의 자리는 디지털 무덤만이 남는다.”


디지털 시대, 우리는 어디에 있는가? 아니, 우리는 여전히 ‘존재’하고 있는가?


『The Extinction of Experience』는 단순히 기술 비판서가 아니다.


이 책은 인류의 본질적 질문, “우리는 어떤 인간으로 살아갈 것인가?”를 파고드는 철학적 선언이자, 인간의 감각과 시간, 공간, 정체성, 기억이 어떻게 기술에 의해 대체되고 있는지에 대한 통렬한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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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경험’이 사라지는 시대


저자 크리스틴 로젠은 말한다.

“경험의 멸종”이란 결국 ‘직접 경험의 멸종’이다.

오감을 통한 시간적, 공간적 맥락 속의 체험이, 스마트폰 화면 속 대리 경험으로 빠르게 대체되고 있다.


우리는 더 이상 ‘거기 있었어야’ 할 이유가 없다.

‘리뷰’와 ‘후기’로 모든 것이 대체되는 시대다. 가장 충격적인 데이터는 이것이다.

“10대~20대 초반의 절반 이상이 후각을 잃는 것보다 스마트폰을 잃는 것을 더 두려워한다.”


이건 단순한 기술의 문제가 아니다.

인간이라는 존재 방식 자체의 변화다.




“나는 인간인가, 알고리즘의 출력물인가?”


이 책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는 '경험의 자기 마케팅화'다.

과거에는 여행을 ‘가서’ 경험했고, 지금은 ‘올릴 수 있는’ 경험을 하기 위해 여행을 간다.


인간은 점점 자기 삶을 콘텐츠화하고 있다.

‘나는 브랜드다’는 슬로건은 더 이상 기업에만 적용되지 않는다.

우리는 SNS를 통해 ‘일상’을 수익화하고 ‘사적인 추억’을 퍼블릭 플랫폼에 업로드하며 자기 자신의 광고가 되어간다.


기술의 발전이 인간의 정체성을 어떻게 재구성하는지를 보여주는 결정적 장면이다.




기술이 앗아가는 인간의 감각과 창의성


기다리는 시간, 멍 때리는 시간,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


이런 시간은 이제 ‘비효율’로 간주된다.

그러나 철학자 데카르트는 침대에서 누워 파리를 보다가 좌표기하학을 떠올렸고, 아인슈타인은 트램에서 창밖을 바라보다 특수상대성이론을 생각해냈다.


기술은 ‘지루함’을 제거했다.

대신 ‘영감’도 함께 제거해버렸다.

아이들은 더 이상 상상할 틈이 없다.

창의성은 사라지고, 정해진 콘텐츠를 소비하며 자라난다.




공간이 사라진다. ‘장소’가 아닌 ‘위치’만 남는다


저자는 공간과 장소를 명확히 구분한다.

공간(space)은 물리적 배경이지만, 장소(place)는 인간적 의미가 부여된 공간이다.

그런데 오늘날의 기술은 ‘공간’만 남기고, ‘장소’를 지워버리고 있다.


사람들이 더 이상 광장에서 눈빛을 교환하지 않고, 카페에서 낯선 사람과 대화하지 않으며, 지하철에서 서로의 표정을 읽지 않는다.


사람은 물리적으로는 함께 있어도 정신적으로는 서로 단절된 채, 각자의 디지털 우주를 여행한다.

우리는 하나의 세계에 함께 있지만, 서로 다른 알고리즘으로 분리된 섬이다.




기억은 내 것이 아니다. 기업이 소유한다


죽은 이의 인스타그램, 사라진 유튜브 채널.

디지털 무덤은 누구의 소유인가?


과거의 기억은 대화를 통해 살아있었다.

앨범을 펼치고 추억을 이야기하는 것이 그 방식이었다.

그러나 이제 기억은 클라우드에 저장되고 플랫폼이 그것을 소유한다.


심지어 기억의 ‘알고리즘 추천’은 우리의 기억조차 조작하려 한다.




그러나 희망은 있다


이 책은 디지털 금욕주의를 주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렇게 묻는다.


“이 기술의 시대에, 우리는 어떻게 인간다움을 지켜낼 것인가?”


저자는 기술을 향한 절대 복종이 아닌, 자기 회복의 감각을 강조한다.


예를 들어,


- 아이에게 스마트폰을 중학교 전까지는 주지 말자.

- 온라인보다 오프라인 대화를 늘리자.

- 멍 때리는 시간과 기다림의 공간을 되살리자.


기술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기술에 잠식되지 않는 인간이 되자는 것이다.




‘경험의 멸종’ 이후, 우리가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경험


『The Extinction of Experience』는 누구에게나 필요한 경고이며, 동시에 위로다.

디지털의 편리함에 길들여진 우리에게 불편함 속 인간성을 회복하자고 말한다.



이 글을 읽은 당신이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며,

누군가의 표정을 가만히 바라보며,

줄을 서며 하늘을 올려다보며,

지금 이 자리에서 살아있다는 감각을 되찾는다면,

그것이 바로 ‘경험의 부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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