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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업의 체계는 왜 ‘다음 분기’로 미뤄지는가

by DataSopher


— 책임, 모두 만족, 화살, 바쁨, 보상, 그리고 ‘정신승리’의 함정


책임도 져야 하고 모두를 만족시켜야 하고 화살도 나한테 오고 내 일도 바쁘고 돈 더 주는 것도 아니고. 남는 건 ‘나의 성장’이라는 정신승리 하나뿐.


스타트업에서 리더십 혹은 핵심 실무를 맡아본 사람이라면 이 문장에 고개를 끄덕이실 겁니다.

그런데 이상하죠.

이렇게 다들 바쁘고 헌신하는데 왜 ‘체계’는 좀체 만들어지지 않을까요?


여러 조직을 보며 내린 결론은 간단합니다.

체계는 시간이 없어서가 아니라 ‘거짓 인센티브’와 ‘책임-권한 불일치’ 때문에 자라지 못합니다.





체계를 가로막는 6가지 오해


1. 책임은 주되 권한은 나눠주지 않는다

오너십 가져라는 말을 좋아하지만 예산·우선순위·사람 배치를 쥔 스폰서 권한은 내려주지 않습니다.

그러면 책임은 ‘희생’이 되고 체계는 ‘잔소리’가 됩니다.


2. 모두를 만족시키려는 환상

PM은 마케팅·세일즈·개발·재무의 요구를 한 장에 담으려 하고 그 결과 아무도 쓰지 않는 범용 프로세스가 탄생합니다.

체계는 ‘선택’에서 생깁니다. 범용은 책임 회피의 다른 이름입니다.


3. 화살 회피 문화

문제가 터지면 누가 했냐로 회의가 시작됩니다.

그러면 문서 대신 DM, 재발 방지 대신 급한 땜질이 늘어납니다.

체계는 사후 책임 추궁이 아닌 사전 합의된 원칙에서 나옵니다.


4. 바쁨의 숭배

오늘 일단 굴러가게라는 말이 내일의 비용을 폭증시킵니다.

바쁨을 성과로 착각하면 체계는 언제나 다음 분기로 밀립니다.


5. 보상 구조의 미스매치

매출을 띄운 사람만 인정받고 리스크를 낮추고 속도를 올리는 ‘보이지 않는 일’은 박수도 인센티브도 없습니다.

그러니 아무도 체계를 만들지 않습니다.


6. ‘정신승리’의 자기기만

그래도 내가 성장했잖아는 소중하지만 공동체의 학습으로 번역되지 않으면 개인의 소모로 끝납니다.

성장 스토리가 아니라 조직 지식으로 남겨야 합니다.


한 줄 요약 : 체계의 적은 게으름이 아니라 구조적 무보상과 권한 없는 책임입니다.




악순환의 메커니즘


요청 폭주 → 특정 개인에게 몰리는 책임 → 급한 불 끄기 중심의 ‘바쁨’ → 문서/정의/합의는 뒤로 → 일관성 없는 의사결정 → 장애·반복 이슈 증가 → 다시 요청 폭주


끊는 방법은 단 하나 ‘합의-기록-가시화’의 루틴을 최소 단위로 고정하는 것입니다.





나의 고백 : ‘정신승리’로 끝나지 않으려면


저 역시 내가 성장했으니 됐어로 많은 밤을 버텼습니다.

하지만 기록되지 않은 성장은 개인 신화에 불과합니다.

체계는 관료주의가 아니라 타인의 시간을 절약하는 기술입니다.


기록과 합의, 소소한 자동화는 사람을 기계로 만드는 일이 아니라 사람이 사람답게 문제에 집중할 시간을 돌려주는 일입니다.




함께 생각해볼 질문


- 여러분 팀에서 가장 자주 되돌아오는 문제 1개는 무엇인가요? 그 문제를 끊을 첫 줄은 무엇이어야 할까요?

- 책임은 내게, 권한은 위에였던 순간을 돌이켜 볼 때 어떤 권한 하나만 있었다면 결과가 달라졌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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