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동화도 읽고 맞춤법도 익히고
할머니가 조금씩 이상한 행동을 하기 시작한 것은 불과 석 달 전부터의 일이었습니다.
할머니는 그 또래의 어느 할머니 못지 않게 기억력이 또렷하고 총명했던 분이었습니다. 그런 할머니가 갑자기 이상한 말과 행동을 하기 시작한 것은 민석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한 지 얼마 뒤부터의 일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신발을 신지 않은 채 맨발로 바깥 출입을 하는 날이 잦았습니다. 방금 전에 식사를 하고도 배가 고프다며 밥을 달라는 일도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할머니가 가끔 이렇게 정신 나간 행동을 하게 되자 은근히 걱정이 되는 것은 우선 엄마와 아빠였습니다. 속이 상하고 가슴까지 답답하기는 민석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그날도 어느 틈에 슬그머니 밖으로 나갔던 할머니가 다시 맨발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 모습을 본 민석이가 몹시 속이 상한 얼굴로 할머니를 향해 소리쳤습니다.
“할머니! 왜 또 맨발이야, 할머닌 창피한 것도 몰라?”
그러자 할머니는 곧 발을 번쩍 들어 올려 보였습니다. 그리고는 오히려 호령을 하듯 민석이를 향해 큰소리로 대꾸하였습니다.
“얘가 갑자기 무슨 소릴 하고 있는 게야. 눈이 있으면 똑똑히 좀 보렴. 이렇게 멀쩡하게 신을 신고 있는데 왜 괜히 이 야단이니?”
“뭐라고? 할머니 지금 맨발이라니까!”
민석이는 어이가 없었습니다. 몇 번이나 맨발이라고 소리쳤지만 할머니는 막무가내였습니다.
할머니의 이상해진 행동은 그게 전부가 아니었습니다.
끼니때마다 번번이 금방 식사를 하고도 나를 굶겨 죽일 작정이냐고 엄마한테 호통을 치며 생트집을
부리기가 일쑤였습니다. 그래서 어떤 때는 배가 고파 밥을 지어야 하겠다며 빈 그릇을 가스레인지에 올려놓고 불을 지피기도 하였습니다. 가장 걱정스럽고 위험한 것은 플라스틱 그릇을 가스레인지에 올려놓고 붙일 때였습니다. 그때마다 마치 모닥불을 피운 것처럼 매캐한 연기가 집안을 가득 채우기도 하였습니다.
“어머니, 안 돼요! 이러시다 정말 큰일 난다니까요.”
다행히도 그런 위험한 광경을 미리 알게 된 엄마가 놀란 얼굴로 기겁을 해서 재빨리 달려가 불을 끄면서 할머니를 말린 적도 한두 번이 아닙니다.
그러나 할머니는 이제 엄마까지 알아보지 못하고 여전히 딴청을 부리면서 태연합니다.
“아니 댁은 뉘신데 괜히 남의 집에 와서 이래라저래라 이 야단이슈?”
“어머니, 정신 차리세요. 저예요. 이젠 집안 식구도 못 알아보시겠어요?”
엄마는 기가 막혀서 더 이상 말문이 막히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불안하고 걱정스러운 나날을 보내던 어느 날 밤이었습니다.
아빠와 엄마는 그 날밤에도 할머니 걱정 때문에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여보, 그동안 생각 좀 해봤어요?”
한동안 한숨만 쉬며 잠을 이루지 못하던 엄마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먼저 입을 열었습니다.
사실 아빠와 엄마는 그동안 매일 잠도 제대로 이루지 못한 채 틈만 나면 할머니 걱정으로 밤을 지 새우곤 하였습니다.
“그동안 많이 생각해 봤지만 별다른 뾰족한 방법이 있어야지.”
아빠는 답답해서 견딜 수 없다는 듯 연신 긴 한숨만 내쉬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엄마가 다시 입을 열었습니다.
“이대로는 정말 더 이상 불안해서 못 살 것 같아요. 꼭 무슨 일이 벌어질 것만 같아 어디 마음이 놓여야지요.”
“맨날 그 소리가 그 소리, 그러니까 그걸 나더러 어쩌라구?”
아빠는 이렇게 한 마디 내뱉듯 말하고는 여전히 긴 한숨만 내쉬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엄마가 다시
조심스럽게 무거운 입을 열었습니다.
“당신이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 그동안 망설이다가 말은 못했지만, 내 생각에는 아무래도 요양원으로 모시는 게 어떨까 해서요.”
“글쎄에, 그런다고 마음이 편할 것 같아? 이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차암…….”
“…….”
아빠의 대답을 들은 엄마의 입에서도 다시 긴 한숨만 새어 나오고 있었습니다.
사실 할머니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동안 직장에 나가는 바쁜 아빠와 엄마를 대신해서 민석이를
정성껏 보살펴 준 고마운 분이었습니다. 민석이가 어느 정도 커서 어린이집에 다닐 때는 더욱더 그랬습니다. 마치 그림자처럼 민석이만 따라다니며 끔찍하게 아끼고 사랑으로 정성껏 보살펴 주시던 분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민석이는 그러는 사이에 아빠와 엄마보다는 할머니를 더 좋아하고 따르게 되었습니다.
한동안 한숨만 쉬고 있던 아빠가 다시 천천히 입을 열었습니다.
“만일 어머님을 요양원으로 모신다 하면 민석이는 어쩌지?”
“뭘 어째요?”
“한 시도 어머님과 떨어져서는 못 사는 녀석인 걸 당신도 잘 알고 있잖아.”
“그건 나도 알고 있지만 지금 당장 급한 문제는 어머님이 또 무슨 일을 저지르실지 그게 더 큰 문제라니까요.”
아빠와 엄마의 이야기는 밤이 새도록 좀처럼 그칠 줄을 모르고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아빠와 엄마는 여러 날을 보내며 고민 끝에 별 도리없이 할머니를 요양병
원으로 모시기로 하였습니다. 결국, 민석이가 집을 비우고 나간 사이에 서둘러 할머니를 요양병원으로 모시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밖에서 돌아온 민석이는 할머니가 눈에 띄지 않자 할머니부터 찾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방 저방 다니며 할머니를 소리쳐 불러보았지만, 할머니의 모습은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엄마, 할머니 어디 간 거야?”
엄마를 보자 민석이는 울상이 된 얼굴로 할머니를 찾아달라고 매달렸습니다. 엄마는 애써 놀란 표정을 지으며 걱정스러운 얼굴로 얼버무리며 대답하였습니다.
“글쎄다. 갑자기 어딜 가신 거지?”
엄마는 일단 이렇게 얼버무리며 대꾸는 했지만, 가슴이 미어질 듯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 다음 날부터 민석이는 학교도 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틈만 나면 엄마와 아빠한테 매달리며 성화를 부렸습니다. 당장 할머니를 찾아 달라고 울며불며 엄마를 못살게 굴었습니다. 그리고 아침부터 해님(*)이 서산으로 넘어갈 때까지 할머니를 찾기 위해 동네방네를 온통 헤매곤 하였습니다.
“민석아, 언젠가는 돌아오실 거야. 그러니까 이렇게 쏘다니지 말고 집에 가서 기다려 보자, 응?”
엄마가 아무리 달래보았지만, 민석이의 고집은 좀처럼 꺾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러면 그럴수록 할머니를 기어이 찾아내고야 말겠다는 민석이의 고집은 돌멩이처럼 더욱더 단단하게 굳어져 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느닷없이 요양병원으로부터 아빠에게 깜짝 놀랄만한 뜻밖의 전화가 걸려 왔습니다.
“네? 치매가 아니시라고요?”
너무나 뜻밖이어서 아빠는 어느 새 흥분된 목소리로 통화를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네, 그렇습니다. 정말 천만대행입니다. 그동안 몇 번이나 재검사를 해보았지만, 그때마다 결과는 지극히 정상이었습니다. 아무튼 축하드립니다. 그러니 오늘이라도 당장 퇴원 수속을 밟아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아빠는 도무지 믿지 못하겠다는 듯 연신 고개를 갸웃거렸습니다. 그리고 그 길로 서둘러 식구들을 데
리고 급히 요양병원을 향해 달려갔습니다.
요양병원 현관에는 어느새, 퇴원 수속을 모두 끝낸 할머니가 나와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가장 먼저 민석이가 달려가서 할머니의 따뜻한 품속을 파고들었습니다. 그리고 다시는 할머니를 놓치지 않겠다는 듯 할머니를 꼬옥 껴안았습니다. 할머니도 민석이의 등을 힘껏 껴안았습니다. 그런 두 사람이 눈에서는 어느 새 이슬이 맺혀 흐르고 있었습니다.
“어머니, 정말 괜찮으신 거예요?”
아빠가 어리둥절해진 얼굴로 할머니를 향해 물었습니다. 엄마도 할머니의 입에서 어떤 대답이 나올지 몰라 몹시 긴장된 표정으로 할머니만 빤히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할머니는 몹시 미안스럽고 민망해진 얼굴로 무거운 입을 열었습니다.
“아암, 괜찮고말고. 아마 내가 그동안 잠깐 정신이 나가서 너희들한테 공연한 걱정을 끼쳐 준 것 같구나. 정말 미안해서 어쩌지? 후후훗…….”
할머니는 갑자기 너털웃음까지 지어보이면서 몹시 민망해진 표정을 감추지 못하였습니다. 그러자 이 번에는 정말 잘 됐다는 듯 엄마가 입을 열었습니다.
“미안하다니요. 어머니, 그런 말씀 마세요. 아무 일이 없다니 그게 얼마나 다행인데요.”
어느 새 아빠와 엄마의 눈에서도 기쁨의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리고 있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자동차에 몸을 실은 할머니는 내내 눈을 감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오랜만에 하마터면 잃을 뻔했던 행복을 다시 찾았다는 생각에 얼굴 가득 해맑은 미소가 번져 가고 있었습니다.
‘아암, 아무리 고생은 좀 된다 해도 지금처럼 이렇게 식구들과 같이 부대끼면 살아가는 것이 행복이고말고. 조금 불편하다고 서로 떨어져서 산다면 그게 무슨 한 식구라고 할 수 있겠누.“
아빠와 엄마, 그리고 민석이는 여전히 할머니의 마음을 조금도 눈치조차 채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마치 치매에 걸린 사람처럼 이상한 행동을 하게 되었던 할머니의 속마음을…….
할머니는 나이가 점점 들어가면서 벌써부터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나이를 먹다 보면 앞으로 가족들에게 도움을 주기는커녕, 조금이라도 짐이 될 것 같다는 죄책감에 결국 요양원으로 가기를 결심하고치매라는 꾀병을 앓았던 할머니의 하늘보다 더 높고 바다보다 더 깊은 할머니의 깊은 뜻을…….
( * )
- 우리말 익히기 -
‘해님’과 ‘햇님’
※ 해님 ; ‘해님’을 소리내어 읽을 때는 ‘ㄴ’과 ‘ㄴ’소리가 덧나기 때문에 ‘햇님’으로 표기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나 ‘해(태양)’는 ‘해’그 자체이지 해의 님은 따로 없기 때문에 이 낱말은 맞춤법에서 예외로
된 낱말이므로 ‘해님’으로 표기하는 것이 원칙이다.
<예문>
* 해님이 뉘엿뉘엿 서산으로 넘어가고 있다.
* 그날따라 나무를 하러 간 아버지가 해님이 지고 서산 너머로 넘어갈 때까지 돌아오지 않으셨다.
* 해님이 방긋 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