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창작동화

엄마의 얼굴

by 겨울나무

“딩동댕, 딩동대앵~~~”


첫째 수업을 알리는 경쾌하고 아름다운 음악 소리가 요란스럽게 울리기가 무섭게 선생님이 교실 문을 열고 들어오셨습니다. 선생님은 여느 때처럼 오늘도 얼굴 가득 잔잔한 미소를 띠고 있었습니다.


“차렷! 선생님께 경롓!”


반장의 구령에 따라 아침 인사를 마친 선생님은 교실을 천천히 훑어보다가 빈자리가 보이자 문득 눈길이 멈췄습니다.


빈자리가 보이자 선생님의 곱고 상냥한 미소는 삽시간에 지워지고 금세 어두운 그림자로 얼룩집니다. 그러자 눈치 빠른 윤숙이가 얼른 입을 열었습니다.


“선생님! 정아는 오늘도 학교에 안 나왔어요!”


그 소리에 선생님의 표정은 조금 전보다 더욱 무겁고 착잡해집니다. 정아가 계속 결석을 하게 된 이유가 어쩌면 자기 자신 때문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정아는 1학년 때부터 3학년이 된 지금까지 단 하루도 결석이 없던 아이입니다. 공부도 잘하는 편이지만 늘 선생님 곁을 그림자처럼 졸졸 따라다니며 심부름도 잘하던 정아입니다.


선생님은 표정뿐 아니라 마음까지 차츰 납덩이처럼 무거워집니다.


한동안 아무 말없이 빈 자리를 바라보고 있던 선생님은 문득 닷새 전의 있었던 일을 떠올립니다.


닷새 전, 그날 넷째 시간은 아이들이 가장 즐거워하는 미술 시간이었습니다.


선생님은 칠판에 정성 들여 커다랗고 예쁜 글씨로 '우리 선생님' 이라고 써 놓았습니다.


“자, 그럼 우리 오늘 이 시간에는 어제 약속한 대로 선생님의 모습을 예쁘게 그려보도록 하세요, 알겠죠?”


“예! 알겠어요.”


"어서 예쁘게 그릴 테니까 어서 자리에 앉아 주세요!"


아이들은 벌써부터 스케치북과 크레파스를 준비해 놓고 얼른 자리를 잡고 앉으라고 야단법석들입니다.


선생님은 아이들의 성화에 못 이겨 큼직한 책상 위에 의자를 올려놓더니 예쁘게 자리를 잡고 앉았습니다. 그러자 교실은 금방 아수라장이 된 듯 야단법석들이었습니다.


선생님 가까이 앞에 나가 교실 바닥에 배를 깔고 엎드려 그리는 아이, 화판을 어깨에 메고 서서 있는 대로 폼을 잡으며 그리는 아이, 뒤에서 보이지 않는다고 소리소리 지르는 아이 등등…….


교실 안은 어느새 꼬마 화가들이 모인 듯 그렇지 않아도 예쁜 선생님의 모습을 더 예쁘게 그리느라 저마다 열중입니다.


“히야! 우리 선생님 정말 예쁘지?”


“야, 어른한테 예쁘지가 뭐니? 예쁘시다고 해야지.”


“응, 그래. 아무튼 난 우리 선생님이 이 세상에서 제일 예뻐.”


“아마 방송국에 가서 탤런트를 하시면 인기가 대단할 거야.”


아이들은 예쁜 미소를 띤 표정으로 마치 모델처럼 다소곳이 의자에 앉아 있는 선생님의 모습을 바라보며 저마다 신바람이 나서 떠들어 댑니다.


등과 가슴까지 내려온 곱고 윤기 나는 까만 머릿결, 길고도 까만 속눈썹 밑에는 별처럼 반짝이는 시원스럽게 큰 두 눈동자, 그리고 하얀 피부 색깔에 어울리게 입은 빨간 스웨터와 곤색 스커트…….


오늘따라 선생님의 아름다운 모습은 그렇게 자랑스럽게 보일 수가 없었습니다.


정아 역시 선생님의 모습을 유심히 바라보고 있다 보니 너무 예뻐서 넋이 나간 표정이었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된 일인지 오늘따라 선생님의 예쁜 얼굴이 쉽게 그려질 것 같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어떤 아이들은 어느새 밑그림을 다 그린 다음 정성껏 색칠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정아는 여전히 손끝 하나 까딱하지 않고 여전히 선생님의 얼굴만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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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정아를 보자 옆에 앉아서 열심히 그림을 그리고 있던 윤희가 이상하다는 듯 입을 열었습니다.


“야! 정아야, 넌 그림은 그리지 않고 아까부터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고 있니?”


“아, 아니야. 아무것도…….”


정아는 그제야 소스라쳐 놀란 표정으로 문득 정신을 차리고 부리나케 그림을 그리기 시작합니다. 그리고는 마음이 급했는지 허둥지둥 급히 서둘러 그림을 그려나갑니다.


그러나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요? 너무 빨리 서둘러 그렸기 때문일까요? 정아가 급히 그려놓은 그림은 엉뚱하게도 예쁜 선생님이 아닌 전혀 엉뚱한 다른 사람의 얼굴이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정아가 그려놓은 것은 동그스름하고 피부색깔이 유난히 햐얀 선생인의 예쁜 얼굴이 아니었습니다. 갸름하면서도 고생을 많이 하여 주름살이 깊이 패였으면서 촌티가 물씬 풍기는 어느 아주머니의 얼굴이었습니다.


또 곱게 빗어 내린 윤기가 나는 긴 머리가 아니었습니다. 파마를 하여 아무렇게나 빗어 넘긴 헝클어진 머리에 옷매무새도 왠지 초라해 보입니다.


‘아니, 내가 지금까지 누굴 그린 거지?’


지금까지 서둘러 자신이 그려놓은 그림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정아의 눈이 갑자기 둥그렇게 되고 말았습니다.


한동안 넋을 잃고 그림을 열심히 들여다보던 정아의 눈에서 순간 반짝 빛이 났습니다.


'아 그래, 맞았어. 이건 분명히 돌아가신 우리 엄마의 얼굴이야. 우리 엄만 그렇게 예쁘지는 않았지만 얼굴이 잘 생긴 그 누구보다도 마음씨가 곱고 인자하셨거든!‘


정아는 이렇게 중얼거리며 매우 만족한 표정으로 여전히 책상 위에 있는 엄마의 얼굴을 넋을 잃고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엄마가 살아 계셨을 때의 모습, 바로 그 엄마의 얼굴이 지금 정아를 바라보며 인자한 모습으로 웃고 있는 것입니다.


정아가 한동안 정신을 잃은 채 엄마의 얼굴을 자세히 바라보고 있을 바로 그때였습니다. 선생님이 손목시계를 들여다보더니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며 재촉을 하고 있었습니다.


“자, 이제 그림을 다 그린 사람은 이 앞으로 가지고 나오도록 하세요!”


선생님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아이들은 저마다 지금까지 열심히 그린 그림을 들고 신바람이 나서 우르르 앞으로 나갑니다. 정아도 우물쭈물하다가 그림을 들고 앞으로 나갑니다.


아이들이 낸 그림을 받은 선생님은 여러아이들이 잘 보이게 칠판에 한 장씩 걸었습니다. 그림이 한 장씩 걸릴 때마다 아이들을 손뼉을 치며 기쁨의 환성을 지르고 있었습니다.


선생님도 여전히 활짝 밝아진 표정으로 그림을 한 장씩 걸어 나가고 있었습니다. 이윽고 정아의 그림이 걸릴 차례가 되었습니다.


"아니, 이 그림은……?”


선생님의 표정이 갑자기 굳어지며 어이가 없다는 듯 아이들을 둘러봅니다. 그러자 교실 안은 갑자기 까르르 웃음바다가 되고 맙니다.


“하하하…….”


"호호호……. 웃긴다.“


“우리 선생님이 어느 틈에 금방 늙은 아줌마가 됐나 봐. 하하하……,”


“그러게 말이야. 얼굴은 새까맣고 머리는 보글보글 지졌잖아? 호호호……,”


아이들이 너무 떠들고 웃어대는 바람에 선생님의 얼굴은 금방 홍당무가 된 표정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 이거 누가 그린 그림이죠?”


선생님은 무안한 듯 벌겋게 된 얼굴로 아이들을 향해 물었습니다.


“그건 정아가 그린 그림이래요.”


정아의 짝인 윤희가 얼른 대답했습니다. 선생님은 정아가 그렸다는 말에 더욱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뜻밖의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처럼 믿었던 정아가 그럴 리가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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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정아는 선생님의 생각과는 달리 어떻게 된 일인지 고개를 푹 숙인 채 아무 말도 없습니다. 그러자 선생님이 정아를 향해 천천히 물었습니다.


“정아야 왜 그랬니? 어느 정도 비슷하게라도 그렸어야지 이렇게 장난을 치면 되겠니? 공부 시간에 그렇게 장난을 하면 못써. 알겠니?”


“…….”


그러나 정아는 여전히 아무 대꾸가 없습니다.


지금까지 선생님을 그토록 좋아하며 잘 따르던 정아였습니다. 그런 정아가 그런 그림을 그리다니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다.


그러나 정아는 정아 대로 그 그림을 보고 자신의 마음을 이해해 주지 못하는 선생님이 오히려 야속하기만 합니다.


'우리 엄마가 얼마나 인자하고 훌륭하셨는데 이렇게 웃음거리가 되다니, 쳇, 이런 땐 선생님도 미워!’


정아는 갑자기 성이 잔뜩 난 표정이 되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칠판 앞으로 성큼성큼 다가가더니 칠판에 걸려 있는 자신이 그린 그림을 거칠게 낚아챕니다. 그리고는 다시 자리로 급히 돌아와 책상 위에 푹 엎드리더니 슬프게 흐느끼기 시작합니다.


“……?”


“……?”


지금까지 갑자기 달라진 정아의 그런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선생님과 아이들은 무슨 영문인 줄을 몰라 어리둥절한 표정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날 공부가 모두 끝났습니다.


선생님은 궁금하기도 하고 섭섭한 마음에 정아를 혼자 교실에 남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정아에게 아무리 달래며 그 이유를 물어보았지만, 정아는 끝내 입을 꼭 다문 채 아무 대답이 없었습니다. 결국 선생님은 정아를 그냥 집으로 돌려보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날 이후로 정아가 학교에 나오지 않은 것도 벌써 닷새가 되었습니다.


오늘도 무거운 마음으로 오전 수업을 겨우 마친 선생님은 학교를 나섰습니다. 정아네 집으로 가정 방문을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정아 때문에 선생님은 요즘 너무나 궁금하고 답답한 마음에 도무지 일손이 잡히지 않있습니다.


정아네 집은 생각보다 거리가 꽤나 멀었습니다. 작은 산을두 개나 넘고 거의 한 시간을 걸어서야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널빤지로 만든 대문이 반쯤 열려 있는 앞마당에는 낡은 리어커 한 대가 놓여 있었고, 그 옆에는 고철과 빈병, 그리고 폐지들이 너저분하게 흩어져 있었습니다.


부엌 한 칸, 방 한 칸에 마루도 없는 댓돌에는 남자 고무신 한 켤레와 정아가 신고 다니던 낯익은 운동화가 눈에 띄었습니다.


선생님은 정아의 운동화를 보자 반가움에 얼른 대문 안으로 들어서며 정아를 불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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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아야! 정아야! 안에 아무도 안 계세요?“


이윽고 방문이 열리면서 정아의 아버지인 듯한 분이 둥그렇게 된 눈으로 선생님을 바라봅니다.


“안녕하세요? 정아네 집이 맞는지요? 정아의 담임입니다.”


“아아, 네에? 정아 선생님이시라구요? 아니 그런데 이런 먼 곳까지 갑자기 무슨 일로……?“


정아 아버지는 갑자기 반갑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부끄러움에 어쩔 줄을 모르며 안절부절을 못합니다.


“어이구, 이거 너무나 누추하기 짝이 없습니다만 잠시라도 들어오시지요.”


선생님은 정아 아버지가 안내하는 대로 일단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얘, 정아야, 선생님 오셨다. 정신 좀 차리고 잠깐 일어날 수 있겠니?”


아버지가 흔들어 깨우는 바람에 자리에 누워 앓고 있던 정아가 간신히 눈을 뜨고는 뜻밖이라는 듯 화들짝 놀랍니다.


선생님이 정아의 곁으로 다가가며 다정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습니다.


“정아야, 네가 이렇게 몹시 아픈 줄도 모르고 너무 늦게 찾아와서 정말 미안하구나. 그래 그동안 얼마나 아팠니?”


“…….”


선생님이 정아의 손을 잡고 따뜻한 말로 위로하는 바람에 정아의 눈에는 금세 눈물이 가득 고입니다.


“그나저나 어쩌다가 우리 정아가 이렇게 아프게 된 거니?”


“…….”


정아가 얼른 대답을 하지 않자 아버지가 얼른 입을 열었습니다.


“글쎄 지금까지 잔병도 없이 건강하게 지내던 아이였거든요. 그런데 며칠 전에 무슨 일 때문인지 심통이 잔뜩 나서 학교에서 돌아오더니 내일부터는 학교에 안 가겠다는 거지 뭡니까? 그래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밑도 끝도 없이 그저 선생님이나 아이들 모두가 싫다고 야단이니 그게 무슨 말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더군요.”

"아하, 그랬었군요.“


순간, 선생님은 가슴이 철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저 애가 일곱 살 때 엄마를 잃었지만, 정말 저희 엄마를 잘 따르고 정도 많았죠. 그러다가 학교에 다니고부터는 선생님들과 정을 붙여가면서 제 엄마를 잠시 잊는 것 같더니만 이게 또 웬 까닭인지 워언…….”


“……!”


정아 아빠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던 선생님의 마음은 더욱 무거워지면서 말문이 막히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정아의 마음을 좀더 이해해주지 못한 죄스러운 마음에 그만 말문이 막히고 말았습니다.


“저도 나중에야 겨우 알게 되었지만, 저 애가 결국 학교를 가지 않고 그 대신 교회에 나가서 기도를 드리게 된 것 같습니다. 제발 엄마를 다시 만날 수 있게 해달라고 말입니다. 그러다가 마침 비가 몹시 쏟아지는 날 저희 엄마 무덤에 가서 비를 흠뻑 맞으며 시간을 보내다가 온 모양입니다. 그날 제가 멋도 모르고 일을 나갔다가 와서 보니 벌써 자리에 누워 앓고 있었으니까요.”


거기까지 말을 마친 정아 아버지의 눈에는 어느 틈에 이슬이 가득 고였습니다.


선생님은 순간, 자리에 누워 있는 정아를 덥석 껴안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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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아야! 선생님이 너무나 잘못했다. 용서해 다오. 이제 병이 낫는 대로 아무 걱정 말고 다시 학교에 나오렴. 이제부터 선생님이 정아의 엄마갸 돼 줄테니 아무 걱정 말고 알았지? 흐흐흑…….“


순간. 선생님의 따뜼한 위로의 말을 듣게 된 정아의 눈빛이 반짝이고 있었습니다.


"선생님, 지금 그 말씀 정말 약속하시는 거죠?“


”아암, 그렇고 말고, 선생님이 지금 이렇게 약속하지 않니?"


선생님은 손가락을 내밀더니 정아의 새끼손가락에 걸고 힘차게 흔들어 줍니다.


“선생님, 고맙습니다. 하나님, 정말 감사합니다.”


정아는 갑자기 부끄러움도 잊은 채 선생님의 품을 파고들며 흐느끼고 있었습니다.


선생님의 품에 파묻힌 정아는 지금 말할 수 없는 행복감을 느낍니다. 그리고 오랜만에 그 옛날 따뜻하고도 포근했던 엄마의 사랑을 다시 느껴보고 있는 모양입니다.


“뎅그렁, 뎅그러엉~~~.”


그때 마침 멀리서 들려오는 은은한 교회의 종소리가 더욱 방 안의 분위기를 평화롭게 만들어 조고 있었습니다.


‘하나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정아는 여전히 선생님의 품에서 떨어질 줄을 모르고 주님께 계속 감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벽에 붙어 있는 정아가 그린 엄마의 그림이 어느새 활짝 웃는 모습으로 정아와 선생님을 번갈아 내려다보며 연신 웃고 있었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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