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어디서 장기를 잘 두는 사람이 있다는 소문을 들으면 그렇게 반가워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런 소문을 듣기가 무섭게 생기가 나서 쫓아가서 상대를 해주곤 하였다.
젊은이가 살고 있는 마을은 물론이고 이웃 마을까지 찾아다니며 장기에 미쳐 돌아다니곤 하였다.
그러나 소문대로 워낙에 장기를 잘 두기 때문에 젊은이를 당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장기판을 벌이기가 무섭게 너무나 쉽게 이기곤 하였기 때문이었다.
“어이구, 시시하고 재미없어라. 장기를 잘 두는 사람이 이렇게 없어서야 워언…….”
젊은이는 슬그머니 싫증이 나고 심심하였다. 어느 오락이나 그렇지만, 장기를 두는 일 역시 어느 정도 상대가 비슷해야 재미가 있게 마련인데 누구나 너무나 쉽게 지곤 하였기 때문이었다.
결국 젊은이가 어느 날부터는 밥만 먹으면 멀리 장바닥까지 찾아다니며 장기를 두게 되었다. 혹시 장기를 잘 두는 사람이 나타나지 않을까 하는 기대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 역시 아무 소용없는 일이었다. 그 많은 사람들 모두가 상대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거 어디 상대가 돼야 장기를 두든지 말든지 하지. 어이구, 심심해서 이를 어쩌지!”
한동안 생각다 못한 젊은이가 이번에는 집을 나서서 먼 길을 떠나게 되었다. 전국을 돌아다니며 장기를 잘 두는 사람을 찾아보기로 마음을 먹게 된 것이다.
이 마을 저 마을로 돌아다니며 장기를 잘 두는 사람을 찾아 보았지만, 그 역시 헛고생이었다. 그만큼 장기를 잘 두는 사람을 찾아보기가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이 마을 저 마을로 정처 없이 돌아다니던 젊은이가 이번에는 또 다른 마을을 찾아가다가 어느 산을 넘게 되었다. 그러는 사이에 어느새 해가 저물더니 차츰 캄캄해지면서 어디가 어디인지 분간하기조차 힘들게 되었다.
어디선가 사나운 산짐승들의 울음소리까지 들려오고 있었다. 그 바람에 등골이 오싹하면 귀신이나 도깨비가 나타날 것 같기도 하였다.
“허어, 이거 큰일이로군!”
젊은이는 더럭 겁이 났다. 이대로 가다가는 산짐승들의 밥이 될 것만 같아 머리털이 곤두서고 등골이 오싹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그때 마침 반갑게도 저 멀리에 희미한 불빛이 뿌옇게 반짝이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아아! 사람이 죽으라는 법은 없다더니 저기 마침 인가가 있나 보군!”
젊은이는 반가운 마음에 정신을 차리고 용기를 내어 불빛이 보이는 곳을 향해 한 걸음 두 걸음 발걸음을 옮기게 되었다. 가까이 가 보니 그곳은 마침 조그만 절이었다.
젊은이는 곧 스님에게 길을 잃게 된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절에서 하룻밤을 묵게 해달라고 도움을 요청하게 되었다. 그러자 스님은 반갑게 맞이하며 스님과 한 방에서 같이 묵게 되었다.
밤이 점점 깊어 가고 있었다. 그러나 젊은이는 오늘따라 웬일인지 잠이 잘 오지 않았다. 이리저리 몸을 뒤척거리며 잠을 자기 위해 애를 쓰고 있었다.
젊은이가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자꾸만 뒤척이는 바람에 스님이 걱정스러운 표정이 되어 조용히 입을 열었다.
“허어, 무슨 걱정거리가 있기에 그리 잠을 못 이루시오?”
스님의 물음에 젊은이는 마침 잠도 오지 않기에 잘됐다는 생각에 여기까지 오게 자초지종을 자세히 털어놓게 되었다. 장기를 잘 두는 사람을 찾아다니다 보니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솔직하게 털어놓게 되었다. .
그러자 젊은이의 이야기를 다 듣고 난 스님이 껄껄 웃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허어, 그러셨군요? 허긴 장기라면 소승도 어깨너머로 배워서 조금은 둘 줄 압니다만…….“
스님이 장기를 조금 둘 줄 안다는 말에 젊은이는 몹시 반가우면서도 귀가 번쩍 띄었다. 그래서 마침 잠도 안 오는데 장기나 한판 두는 게 어떻겠느냐고 되묻게 되었다. 그리고 기왕에 신세를 지게 되었으니 그 대신 장기 두는 법을 자세히 가르쳐 주겠다고 인심을 쓰듯 말하였다.
그러자 스님이 엉뚱한 대답을 하고 있었다.
“허허, 소승은 장기는 비록 잘 둘 줄은 모르지만, 내기 장기가 아니면 절대로 두지를 않습니다.”
스님의 말에 젊은이는 귀가 번쩍 띄었다. 그렇지 않아도 잠이 안 오고 심심해서 죽을 지경이던 참에 장기 상대가 되어주는 것만 해도 고마운 일이었다.
그런데 더구나 내기 장기를 두고 싶다는 말에 이만저만 기분이 좋은 게 아니었다. 그만큼 장기 두는 일만큼은 자신만만했기 때문이었다.
“그러시군요. 그거 아주 좋고말고요. 그렇다면 무슨 내기를 하면 좋을까요?”
“…….”
그러자 한동안 뜸을 들이고 있던 스님의 입에서 나온 말이 또다시 엉뚱하면서도 충격적이었다.
“소승은 장기에서 지는 사람의 눈알을
뽑는 내기를 좋아합니다. 어때요? 해보시겠습니까?"
”하하하……, 사람의 눈알을 뽑다니요? 스님 농담도 아주 재미있게 잘하십니다.“
”아닙니다. 절대로 농담이 아닙니다. 사실입니다. 어때요? 내기 장기를 두시겠습니까, 아니면 여기서 그만두시겠습니까?“
스님은 여전히 정색을 하면서 대답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농담이라고 생각한 젊은이였다. 장기 두기에 진다 해도 설마 그럴 일은 없을 것이란 생각을 하게 된 젊은이였다.
”좋습니다. 스님 말씀대로 그렇게 해보시지요.“
”그럼 나중에 절대로 후회하시면 그때는 이미 늦습니다.“
”후회를 하다니요. 절대로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젊은이가 이렇게 자신만만하게 대답하기가 무섭게 스님은 어딘가 잘 보관해 두었던 장기판을 젊은이 앞에 꺼내놓았다.
”자 그럼 먼저 두어 보시지요."
“아닙니다. 스님이 먼저 두십시오.”
몇 번의 실랑이 끝에 결국 젊은이가 장기알 하나를 장기판 위에 올려놓게 되었다. 그러자 장기알을 놓기가 무섭게 스님이 혀를 끌끌 차면서 안됐다는 듯 입을 열었다.
“쯧쯧쯧……. 미안하지만 이번 판은 소승이 이미 이겼습니다.”
젊은이는 어이가 없었다. 끝까지 장기를 두어 보지도 않고 이겼다니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게 무슨 말이냐는 듯 두 눈이 둥그렇게 된 채 스님을 바라보며 물었다.
“아니, 끝까지 장기를 두지도 않았는데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그러자 스님이 자세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잘 보세요. 젊은이가 장기알을 거기 놓았으니까 그다음에 소승은 여기에 놓을 게 아닙니까? 그리고 그다음에는 젊은이가 방어하기 위해 여기에 놓게 될 것이고…….“
아닌 게 아니라 스님의 설명을 끝까지 듣고 보니 영락없이 진 것이 틀림없었다. 귀신 같은 비상한 솜씨였다.
이처럼 장기를 잘 둘 수가 없었다. 그야말로 귀신이 곡을 할 노릇이었다 .장기로 져보기는 이번이 난생처음이어서 혀를 내두르고 말았다.
”스님의 말씀을 듣고 보니 제가 진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러니 다시 한 판만 더 두시는 게 어떠신지요?“
그러자 스님은 그게 아니었다.
”장기를 더 두는 것도 좋지만, 우선 약속한 것은 지키셔야지요.“
”무슨 약속을 말이십니까?“
”아까 한번 질 때마다 눈알을 하나씩 빼기로 했는데 벌써 잊으셨단 말씀이신가요?“
”어이구, 별말씀을 다하십니다. 그건 농담으로 한 소리지 어떻게 사람이 사람의 눈을 뺀단 말입니까?“
”농담이라니요. 약속은 약속입니다.“
스님은 말을 끝내기가 무섭게 앉은 채로 손을 뒤로 길게 뻗치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스님이 앉은 뒤쪽 벽에는 천으로 만들어진 작은 망태기 하나가 걸려 있었다.
망태기 속에는 무언가가 묵직하게 담겨 있었다. 아마 오랫동안 내기 장기로 두어 이긴 대가로 누군가의 눈알을 빼서 담아둔 망태기임이 틀림없는 것 같았다.
또한, 망태기 속에는 손잡이가 달린 길고도 강한 철사가 준비되어 있었다. 그리고 철사 끝이 갈고리 모양으로 구부러져 있는 것으로 보아 그것을 이용하여 오랫동안 사람들의 눈알을 뺐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스님은 매우 신속하고도 익숙한 솜씨로 망태기를 꺼내더니 이내 철사로 된 갈고리의 손잡이를 잡았다. 그리고는 젊은이에게 서슴없이 다가섰다.
”스, 스님, 왜 이러십니까? 정말 제 눈을 빼시려고요?“
젊은이는 그제야 깜짝 놀란 나머지 납덩이처럼 굳은 표정으로 떨리는 목소리로 묻고 있었다.
”아암, 두말하면 군소리죠. 정말이고말고요. 소승은 원래 한 입 가지고 두말을 안 하고 삽니다.“
스님은 이렇게 말을 끝내기가 무섭게 한 손으로 젊은이의 머리를 꽉 잡았다. 그리고는 갈고리 모양으로 생긴 철사로 삽시간에 젊은이의 눈알을 빼서 망태기에 담고 말았다. 그야말로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닌 참으로 익숙한 솜씨였다.
”으아아악! 사람 살려!“
젊은이는 곧 숨이 끊어질 것 같은 비명을 지르며 두 손으로 눈을 감싸더니 방바닥에 나동그라지며 이리저리 뒹굴고 있었다. 금방 눈알이 빠진 움푹한 눈에서는 새빨간 피가 연신 흘러나오고 있었다.
여전히 이리 뒹굴고 저리 뒹굴며 비명을 지르고 있던 젊은이가 겨우 정신을 차리고는 스님을 무섭게 노려보며 서슬이 시퍼래진 채 절규하듯 입을 열었다.
”스, 스님, 스님이란 분이 이렇게 사람의 눈을 생으로 빼다니 그게 말이 되는 겁니까? 좋아요. 하, 한 판만 더 둡시다.“
젊은이는 너무 약이 오르고 억울했다. 그래서 반드시 복수를 하고야 말겠다는 각오로 이렇게 다그치고 있었다.
그러나 스님의 대답은 그게 아니었다.
”이제 그만두시지요. 하나 남은 눈마저 빼게 되면 정말 후회하게 되실 겁니다.“
”안 돼요! 이제 그런 동정은 필요 없어요. 저는 이제 두 눈이 다 멀어도 좋아요. 그러니까 이번에는 기어이 스님의 눈을 꼭 빼고야 말 테니까 어서 장기판이나 준비하시라까요!“
얼마나 억울하고 분했을까. 젊은이는 숨이 넘어갈 듯한 그런 지독한 고통 속에서도 장기를 더 두자고 애원하다시피 매달리며 다그치고 있었다.
젊은이가 하도 펄쩍 뛰면서 장기를 더 두자고 하자 스님은 마지못해 다시 장기판을 다시 차려 놓게 되었다.
”좋아요. 그럼 그렇게 애원을 하시니까 딱 한 판만 더 두기로 합시다.“
이번에도 서로 먼저 두라고 실랑이를 하다가 스님이 먼저 하나를 놓게 되었다. 젊은이는 여전히 피가 줄줄 흘러내리고 있는 한쪽 눈을 손으로 꼭 누른 채, 그러나 정신을 바짝 차리고 벌벌 떨리는 손으로 장기 한 알을 놓게 되었다.
그런데 이건 또 무슨 경우란 말인가. 젊은이가 장기 한 알을 놓게 되자 이번에도 스님이 매우 안 됐다는 듯 혀를 끌끌 차며 입을 열었다.
”쯧쯧쯧, 이거 어떡하면 좋죠? 또 지셨어요. 그러게 아짜 그만두자고 할 때 그만두셨어야지요.“
스님은 이렇게 말하더니 이번에도 다시 벽에 매달린 망태기를 서슴없이 꺼내 들었다.
그러자 젊은이는 다시 공포에 질린 표정으로 스님에게 매달리며 애원을 하고 있었다.
”스님, 한번만 살려주십시오. 하나 남은 눈마저 잃고 나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수 있습니까? 그러니 제발 용서하시고 딱 한 번만 살려주십시오. 이렇게 빕니다, 네?“
그러나 스님의 표정은 마치 악마처럼 싸늘하고 냉정하기가 그지없었다.
”그러게 아까 소승이 뭐라고 했어요. 후회하게 될 테니 그만두자고 하지 않았나요?“
스님은 말을 마치기가 무섭게 또다시 젊은이의 눈알 하나를 순식간에 뽑아버리고 말았다. 그렇게 잔인할 수가 없었다. 스님이 아니라 악마였다. 그런 악마가 따로 없었다.
”으아아악~~~!“
젊은이의 처절한 비명 소리가 다시 울려 퍼지고 있었다. 결국, 두 개의 눈알이 삽시간에 모두 빠져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그다음 날이었다.
밤새 살과 뼈를 깎는듯한 극한 고통을 견디며 하룻밤을 지새운 젊은이는 날이 새기가 무섭게 일찌감치 절을 나서게 되었다. 이 원수를 언젠가는 반드시 갚고야 말겠다는 서릿발처럼 무서운 원한을 품은 채…….
그러나 원수를 갚고야 말겠다는 것은 마음뿐이지 아무 소용없는 일이었다. 졸지에 앞을 못 보는 소경이 되고 보니 당장 한 걸음을 내딛기조차 불편하고 힘든 신세가 되고 말았던 것이다.
전혀 안 보이는 몸으로 이리 넘어지고 저리 자빠지며 무작정 한 걸음 두 걸음 무작정 걷고 있었다. 지금으로서는 목적지도 없었다. 무작정 정처 없이 그렇게 산속을 헤매며 걷고 있었다.
그렇게 죽을 것만 같은 고통을 이겨내며 여러 날을 헤맨 끝에 젊은이가 간 곳은 깊은 산속에 있는 어느 외딴집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