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지 않는 사람들]
오늘도 어느새 해님이 서산 너머에서 숨바꼭질을 하고 있었습니다.
저녁 때가 되자 여느 때처럼 산골 마을 초가집 굴뚝마다에서는 하얀 연기가 여기저기서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시작합니다. 저녁 밥을 짓는 연기입니다.
오늘따라 북서쪽에서 서릿발처럼 매서운 겨울바람이 불어오면서 저절로 몸을 움츠러들게 합니다.
뒷동산 어디에선가 잠시 머물다가 휘파람 소리를 내며 마을로 달려온 쌀쌀하고 거센 바람은 호밀짚으로 단단히 엮어 만든 부엌문 틈을 헤집고 스며들기 위해 몸부림을 치고 있습니다.
영순이는 몸을 바짝 웅크린 채 아궁이 앞에 혼자 쪼그리고 앉아 저녁밥을 짓느라고 바쁩니다. 어느새 부엌에는 자욱한 연기 때문에 눈이 매워 눈을 제대로 뜨기조차 어렵습니다.
아궁이 속에서 타고 있는 바짝 말린 수숫대 짚은 수숫대 마디가 탈 때마다 마치 총소리처럼 ‘따다닥, 탁탁’ 요란스러운 소리를 내며 활활 타오르고 있습니다.
연신 수수깡 짚을 부지런히 태우자, 마침내 솥뚜껑이 심하게 들썩거리며 밥이 끓어 넘기 시작합니다. 영순인 익숙한 솜씨로 얼른 행주로 뜨거운 솥뚜껑을 두 손으로 쥐더니 뚜껑을 열고 입김을 후후 내붑니다.
그 바람에 부글부글 끓어오르던 밥솥의 거품이 주저앉으며 삽시간에 찾아듭니다.
이번에는 아궁이에 불을 땔 때 함께 넣고 태운 이글거리는 참나무 등걸을 골라 화로에 담고 있습니다.
화로에 담긴 참나무 등걸은 혓바닥처럼 생긴 파란 불꽃을 내뿜으며 이글이글 타오르고 있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이글거리는 화롯불 위에 다릿쇠를 올려놓고 그 위에 다시 물을 담은 냄비를 올려놓았습니다.
그다음에는 물에 불린 좁쌀을 냄비에 조금 넣어 휘휘 저은 다음 뚜껑을 덮더니 화로를 번쩍 들고 방으로 들어갑니다.
“쿨럭쿨럭……, 어휴 이눔의 기침, 오늘은 날씨가 추워서 네가 쿨럭쿨럭……, 고생이 더 많겠구나. 쿨럭, 쿨럭쿨럭……,”
방문이 열리는 소리에 자리에 누워있던 엄마가 몹시 미안한 표정으로 영순이를 바라보며 연신 요란스러운 기침 소리를 토해내고 있습니다. 엄마의 심한 기침 소리를 듣자 영순이는 불안한 마음에 가슴이 철렁하고 무겁게 내려앉습니다.
"엄마, 제발 그런 걱정 말라니까. 얼른 나을 생각이라 하란 말이야. 일하다 보면 생각보다는 덜 추운걸.“
엄마가 건강이 안좋아 자리에 누워 앓기 시작한 지도 벌써 십 년 가까이 됩니다.
여러 군데 병원도 다녀보았지만 아직까지 확실한 병명도 모릅니다. 엄마의 가장 걱정스러운 것은 잠시 잠이 들었다가 잠만 깨면 영락없이 곧 숨이 넘어갈 것 같은 기침을 심하게 하는 바람에 이만저만 불안한 게 아닙니다.
기침만 하다가 그치는 게 아닙니다. 기침을 심하게 할 때는 그때마다 입에서 새빨간 피까지 섞여 나오기 때문에 그게 더 조마조마하고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어느 날, 아빠는 그런 엄마를 보다 못해 잔뜩 울상이 된 채 엄마를 위로해 주고 있었습니다.
“여보, 힘은 들겠지만 용기를 좀 내봐요. 당신 병은 틀림없이 곧 나을 수 있어요. 당신 병을 얼른 고쳐주지 못하고 이렇게 지켜보고만 있는 내 자신이 너무 미안하구려.”
“원, 별소리를 다 하세요. 다들 아무 탈 없이 건강하게 잘들 살아가고 있는데……. 나 때문에 늘 걱정을 하고 있는 당신을 생각하면 오히려 미안해서 당신을 볼 면목이 없는걸요. 그리고 내 병 때문에 그동안 당신이 얼마나 많은 고생을 하신 것도 잘 알고 있어요.”
이렇게 대답을 하고 있는 엄마의 눈에서는 어느새 이슬이 맺혀 흘러내리고 있었습니다.
“……!”
사실 아빠는 엄마의 병을 고쳐 주기 위해 거의 십 년이 가깝도록 얼마나 많은 고생과 정성을 쏟아왔는지 모릅니다.
아빠는 읍내 장터가 좀 멀긴 했지만, 이틀이 멀다 하고 읍내 장을 오가며 좋다는 약은 모두 지어다가 써 보았습니다.
또 어떤 때는 이처럼 깊은 산골 마을까지 의사 선생님을 모셔다가 진찰을 하고 약을 써 본 것도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엄마의 병은 점점 심해가기만 할 뿐, 좋다는 약도, 그리고 용하다는 의사 선생님도 모두 소용이 없었습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꼭 해보고 싶은 건 도시에 있는 큰 병원으로 다시 나가서 진찰을 해보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형편으로는 그럴 수도 없는 일이어서 가슴만 답답할 뿐이었습니다.
아빠가 다시 뉘우치는 눈빛이 되어 입을 열었습니다.
"여보, 이제 가만히 생각해 보니 우린 그때 그대로 도시에 눌러있어야 했어. 그런데 이제 생각해 보니 이런 산속으로 들어온 것이 오히려 후회가 되는구려. 도시에 그대로 있었다면 병원 출입하기가 훨씬 수월했을 텐데 말이오.“
"괜히 내려오다니요. 그땐 공기 좋은 산속으로 가면 건강이 좋아질 것 같아서 일부러 이곳으로 이사를 오게 된 거 아니에요. 아마 그대로 도시에 있었다면 병이 지금보다 더 심해졌을 지도 모르는 일이잖아요.”
"허긴 그렇긴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병원에 다니기가 너무 불편하니까 하는 소리지.“
그러니까 십여 년 전, 영순이네는 그때만 해도 도시에서 조그만 사업을 하는 아빠와 함께 남부럽지 않은 생활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차츰 사업이 기울어지고 있을 때 설상가상으로 엄마의 건강도 이름 모를 병으로 점점 나빠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아빠는 사업도 사업이지만, 사업을 일으키는 일보다는 엄마의 병이 더 급한 듯 온 신경을 엄마에게 쏟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곳저곳 병원도 수없이 찾아다녔습니다.
그러나 병원에서는 결국 공기가 맑은 곳에 가서 휴양을 하면서 안정을 하는 것이 더욱 좋겠다는 의사 선생님의 권유에 따라 이곳 화전촌으로 와서 자리를 잡은 지도 어느덧 십여 년이란 세월이 눈 깜짝할 사이에 흐른 것입니다.
막상 이곳 화전촌으로 처음 이사를 왔을 때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너무나 막막하여 한숨이 나왔습니다.
우선 못쓰게 된 황무지를 찾아 불을 지르고 땅을 일구며 밭을 일구는 일이 그 무엇보다도 시급한 일이었습니다. 황무지를 그럴듯하게 일군 다음에는 고구마, 감자, 보리, 밀, 수수, 조, 귀리 등을 닥치는 대로 심고 가꾸면서 겨우겨우 먹고 살아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농사만 짓다 보니 먹고 살기가 너무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돼지와 닭, 토끼, 산양 등을 기르기도 하고 또한 틈틈이 약초를 캐거나 산나물, 버섯 등을 따다가 읍내 장에 내다 팔기도 하였습니다.
또 겨울철이 돌아오면 아빠가 사냥해 온 산짐승들을 잡아먹거나 읍내에 내다 파는 일도, 이곳 화전민에게는 빼놓을 수 없는 부업의 하나이기도 하였습니다. 산골 생활이 더구나 처음 해보는 일이어서 그렇게 어렵고 힘이 들 수가 없었습니다.
어느 새 화롯불 위에 올려놓은 조당수가 보글보글 소리를 내며 끓고 있습니다.
“영순아, 화로에 올려놓은 음식이 쿨럭쿨럭……, 끓어오르는 모양이구나, 쿨럭쿨럭…….”
엄마는 여전히 기침을 심하게 하면서도 화로에서 끓고 있는 음식 걱정을 하고 있었습니다.
"응, 나도 알고 있어. 오늘도 조당수를 쑤었어. 조금 더 묽게 풀어지게 하려면 조금 더 끓이면 되니까 조금만 더 기다려.“
엄마는 입맛이 없다며 다른 음식들은 전혀 입에 대지를 못합니다. 그런데 아기들이 젖 대신 먹는 미음처럼 끓인 조당수는 그런대로 입에 맞는다며 조당수로만 끼니를 이어 온 것이 벌써 삼 년째입니다. 그래서 벌써 삼 년째 조당수를 끓여본 영순이이기에 조당수를 쑤는 일만큼은 자신이 있는 영순입니다.
엄마는 건강이 안좋으면서도 이번에는 다시 짐승 걱정을 합니다.
“짐승들의 먹이는 쿨럭쿨럭……, 어, 어떻게 됐니?”
“엄마, 그런 건 걱정 말고 어서 엄마 병이 나을 생각이나 하라니까 그러네. 짐승들 먹이는 벌써 저녁밥 짓기 전에 모두 줬거든.”
“벌써 줬다고? 그나저나 엄마 때문에 아빠도 그렇고 너도 그렇고 고생이 너무 많구나. 그런데 아버지가 오늘은 왜 이렇게 늦으시는 거지? 쿨럭쿨럭…….”
“아까 점심을 잡숫고 약초를 캐러 간다고 곡괭이와 망태기를 메고 갔으니까 조금 더 기다리면 오실 거야.”
“땅이 꽁꽁 얼어붙었을 텐데, 쿨럭쿨럭…… 어디서 무슨 약초를 캐겠다고, 쿨럭쿨럭…….”
“엄만 왜 자꾸 그런 얘기만 해? 다음부터는 그런 말 좀 그만하고 얼른 낫기만 하라니까.”
“그려면야 오죽이나 좋겠냐만, 그렇게 쉽게 나을 병이 쿨럭쿨럭……. 이렇게 오래 가겠니?”
엄마의 대답에 영순이는 듣기 싫다는 듯 얼른 다른 말을 꺼냅니다.
“참, 엄마. 배고플 텐데 미음이라도 좀 먹고 얼른 기운을 차려야지.”
"아직 생각이 없구나. 그러니까 아버지가 오시는 대로 같이 먹는 게 좋겠구나. 쿨럭쿨럭……. 참, 배가 고프면 너나 먼저 먹으렴.”
"아니야. 나도 괜찮아. 그러니까 나도 아빠가 오시면 같이 먹을게.“
영순이가 이렇게 대답하고는 화로에서 끓고 있는 조당수를 방바닥에 내려놓더니 사방을 두리번거립니다.
어느새 방 안이 컴컴해지면서 물건들이 제대로 보이지를 않습니다. 영순인 곧 성냥불을 켜서 등잔에 붙입니다. 등잔불이 밝아지면서 방 안에 있던 어둠이 사라집니다. 등잔불에 비친 엄마의 파리한 얼굴빛이 오늘따라 더 창백해 보입니다.
영순인 가끔 밖을 향해 귀를 기울이며 혹시 아빠가 오시지나 않을까 하고 오늘따라 왠지 불안한 마음으로 기다립니다.
그러나 기다리는 아빠는 좀처럼 돌아오지 않고 있습니다. 그 대신 멀리서 간간이 들려오는 산짐승들의 울음소리와 나뭇가지를 흔드는 바람 소리만이 들려올 뿐 사방이 조용합니다.
'혹시 아빠가 잘못되신 건 아닐까? 아니면 어두운 밤에 높은 낭떠러지에서 발을 헛딛고 굴러떨어지신 건 아닐까?‘
지금 영순이의 머릿속에는 이런저런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한도 없이 길게 이어지고 있습니다.
아빠는 그동안 오직 엄마의 병을 고쳐주기 위해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고생을 하며 견디어 왔는지 모릅니다.
처음 몇 해 동안은 약과 의사만을 믿고 따라다녔던 아빠였습니다. 그런데 그 모두가 아무 소용이 없게 되자 그다음부터는 엄마의 병을 낫게 해주고야 말겠다는 일념으로 오직 엄마를 위해 몸과 마음을 다 바쳐가며 희생해 온 아빠였습니다.
그런 아빠였기에 깊은 산과 높은 산을 찾아다니며 좋다는 약초란 약초는 모두 캐다가 생즙을 내거나 달여서 엄마한테 먹여보기도 하였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산속에서 직접 잡은 사슴의 뿔이나 노루의 선지, 그리고 심지어는 산돼지의 쓸개를 구해서 드리기도 하였지만, 엄마의 병은 아빠의 그런 지극한 정성과 노력을 모두 외면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이제 그처럼 건강했던 아빠의 옛날 모습은 그 어느 한구석에서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쇠약해져 가고 있었습니다. 모르는 사이에 드문드문 섞인 흰 머리칼과 길게 자란 수염 때문에 나이보다 훨씬 더 늙어 보이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아빠의 결심은 대단하였습니다. 사시사철을 가리지 않고 틈만 나면 약이 될 만한 풀이나 열매를 따다가 이것저것 섞어서 약을 만들어 보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제 방 한쪽 구석에는 여러 가지 약초와 열매, 그리고 산짐승들의 피나 뿔을 깎아 섞어 만든 약봉지들이 수북하게 쌓여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아빠는 마치 한약 연구라도 하듯 수북하게 쌓인 그 많은 약들을 이것저것 섞어가며 엄마한테 권해 보면서 차도를 살피는 동안 어느새 십여 년이란 세월이 흘러버린 것입니다.
"으르렁, 으르렁…….“
”캥캥캐앵…….“
밤이 점점 깊어지면서 산짐승들의 울부짖음도 점점 더 가까운 곳에서 들려옵니다.
"쌔앵, 휘리릭~~ 휘이익~~~.”
거센 바람 소리도 더욱 기승을 떨며 연신 휘파람을 불어댑니다.
방안은 가물거리는 등잔불만이 겨우 춤을 추고 있을 뿐, 갑자기 무거운 적막이 흐릅니다. 금방이라도 무서운 산짐승이나 귀신이 방문을 열고 나타날 것만 같은 밤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입니다.
“뚜벅, 뚜우버억~~~”
갑자기 어딘가에서 발걸음 소리가 점점 가까이 들려오는가 했더니 이윽고 사립문을 밀치고 누군가가 집안으로 들어서는 소리가 들립니다. 얼른 들어봐도 아빠의 인기척임에 틀림없습니다.
“아빠야?”
순간 영순인 두려움도 잊은 채 방문을 열어젖히며 반가운 마음에 소리칩니다. 찬 바람이 밀물처럼 경쟁을 하며 방안으로 쏜살같이 쏟아져 들어옵니다. 그 바람에 등잔불이 꺼지고 말았습니다.
“그래, 아빠다! 어서 빨리 좀 나와 보렴.”
앞마당에 들어선 아빠는 몹시 지친 듯 숨을 헉헉거리며 뭔지 모를 육중한 물건을 앞마당에 내동댕이치고 말았습니다.
영순이가 급히 밖으로 뛰어나가며 소리쳐 물었습니다.
“어머! 아빠 그게 뭐야?”
영순인 앞마당에 널부러져 있는 큼직한 물체를 내려다보며 금방 두 눈이 둥그렇게 되고 말았습니다. 검은 털 빛깔에 덩치가 큰 짐승임은 틀림없었지만 어두워서 무슨 짐승인지는 알 수가 없었습니다.
“얼른 모르겠지? 이놈이 바로 곰이란다. 그리고 엄마는 좀 어떠니?”
“조금 전까지만 해도 기침을 심하게 하다가 이제 막 잠이 들었어. 그런데 이렇게 큰 곰을 어디서 어떻게 잡았어?”
"어이구 말도 마라. 아빠가 이놈 한 마릴 잡느라고 하마터면 죽을 뻔했단다 .얼마나 애를 먹었는지, 원…….“
아빠는 몹시 지쳐 있었지만 그래도 기분은 너무 좋은 듯 흐뭇한 표정을 짓고 있었습니다.
“어머나! 아니, 아직도 이렇게 큰 곰이 산에서 살고 있었어?”
“그러게나 말이다. 약초가 있나 하고 미륵바위 근처에 가서 두리번거리다 보니 글쎄 이놈이 미륵바위 근처에서 서성거리고 있다가 나한테 덤벼들려고 하지 않겠니?”
“어머, 그래서 어떻게 하셨어요?”
“그래서 한참 도망을 치고 실랑이를 벌이다가 결국 약초 캐는 곡괭이로 이놈의 정수리를 정확히 찍어 잡게 되었단다. 헛허허…….“
아빠는 하마터면 죽을 뻔했다는 표정으로, 그러나 매우 신이 나고 자랑스럽다는 듯 이렇게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다음 날이었습니다.
아빠는 이른 아침부터 서둘러 칼을 갈더니 곰을 손질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는 집에서 먹을 것만 조금 남기고 마을 사람들에게 모두 나누어 주기로 하였습니다.
”뭐라고? 그 귀한 곰 고기를 공짜로 나누어 준다고?”
소문을 들은 마을 사람들은 하나 둘 앞을 다투며 모여들었습니다. 그 큰 곰의 고기는 마치 날개가 돋친 듯 삽시간에 바닥이 나고 말았습니다.
곰 고기를 나누어 주자 어떤 사람은 돈을 주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돈은 얼마든지 줄 테니 쓸개를 좀 달라고 매달리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빠는 무슨 생각인지 쓸개와 간은 엄마의 병 때문에 절대로 팔지 않겠다고 한마디로 거절을 하였습니다.
사실 아빠는 곰을 잡을 때부터 쓸개에 대해 큰 욕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혹시 엄마한테 약이 될 수도 있겠다는 커다란 믿음과 희망 때문이었습니다.
아빠는 그 뒤부터 바깥 출입도 하지 않고 집에 머물면서 정성껏 다시 약을 만들기에 모든 마음과 정신을 쏟고 있었습니다.
약의 재료는 그동안 방구석에 쌓아두었던 갖가지 약초, 그리고 산 짐승들의 피와 간에 곰의 쓸개를 조금씩 섞었습니다. 그리고는 그것을 동그란 모양으로 여러 종류의 환약을 만들기에 바빴습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자 방 한쪽 구석에 새로 만든 갖가지 환약이 수북하게 쌓이게 되었습니다.
아빠는 곰의 쓸개를 넣은 환약이 쌓이게 되자 그 약을 한 가지씩 엄마한테 먹여보며 차도를 살피게 되었습니다. 약의 반응이 전혀 없을 때는 다시 다른 환약을 섞어 가면서 많은 나날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했던가. 그렇게 한 달쯤 이 약과 저 약을 써 보던 어느 날 마침내 거짓말 같은 기적은 일어나고야 말았습니다.
좀처럼 차도를 보이지 않던 엄마가 차츰 기침이 줄어들면서 화색이 돌기 시작한 것입니다. 초점을 잃었던 눈동자에도 차츰 생기가 돌기 시작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다시 며칠이 지나자, 가쁜 숨소리와 지독하던 기침도 씻은 듯 사라지고 거칠기만 했던 숨결도 훨씬 부드러워지고 있었습니다.
바깥 출입은커녕 전혀 일어서지도 못하던 엄마가 이제는 차츰 가벼운 집안일을 거두는 일도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그것은 꿈조차 꾸지 못했던 기적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여보, 고맙소, 당신이 이렇게 옛날의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오고 있는 걸 보니 그동안 가슴 속에 맺혔던 무거운 응어리들이 모두 풀려나간 것만 같구려. 정말 고맙소.”
아빠는 정말 너무나 기쁜 나머지, 엄마의 두 손을 꼭 잡고 감격의 눈물까지 흘리고 있었습니다. 하마터면 영영 잃어버릴 것만 같았던 아내를 다시 찾은 느낌에 가슴이 벅차올랐습니다.
엄마도 너무나 고마운 마음에 어리둥절해진 표정으로 아빠의 품을 파고들며 흐느끼고 있었습니다.
"여보! 정말 고마운 건 저예요. 이 모두가 당신 덕분이예요.“
그렇게 다시 여러 날이 지나자 그동안 앓고 있던 엄마의 병은 씻은 듯이 회복되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옛날과 다름없이 건강한 모습을 되찾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아! 과연 성공이다, 성공이야! 지성이면 감천이라더니 십여 년 고생 끝에 드디어 신비한 약을 발명했단 말이야, 으하하하…….“
아빠는 너무나 기쁜 나머지 혼자 감격해서 겅중겅중 뛰면서 소리소리 지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마치 미친 사람처럼 혼자 큰소리로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며 어쩔 줄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아! 그렇지. 내가 만든 약이 그 어떤 불치병이라도 낫게 할 수 있는 신비한 힘을 가지고 있는가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더욱 많은 연구와 실험을 거쳐야지! 아암 그래야 하고말고.”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아빠는 무슨 생각을 했는지 지금까지 정성껏 만든 약을 몇 봉지 챙겨 들더니 슬그머니 밖으로 나갔습니다. 그리고는 곧 몇 해째 이질과 열병으로 고생을 하고 있는 그 마을 어느 아주머니를 찾아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아주머니는 역시 아빠가 준 약을 먹은 지 며칠 뒤, 그렇게 오랫동안 끈질기게 고생을 하며 앓던 병이 신기하게도 거짓말처럼 몸을 툭툭 털고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허어! 과연 명약은 명약이로다!“
아빠는 더욱 신바람이 났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만든 약에 대해 다시 한번 자신감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다음에는 집에서 기르는 돼지가 병이 들어 오랫동안 자리에서 일어서지를 못하고 고생을 하고 있는 돼지에게 그 약을 먹여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약을 먹은 돼지도 신통하게 금방 부스럼 딱지가 저절로 떨어지면서 거짓말처럼 다시 건강을 되찾게 되었습니다.
”아하 과연 명약이 따로 없구먼!“
아빠는 이제 이 약을 가지고 더 이상 실험을 해볼 필요가 없다는 자신감을 갖게 되었습니다.
"와! 드디어 성공이구나, 성공이란 말이야!“
아빠는 어린애처럼 소리치며 기쁨에 겨워 겅중겅중 뛰며 어쩔 줄을 몰랐습니다. 그런 아빠의 기쁨은 정말 하늘 끝까지 닿을 듯 하늘로 둥둥 뜨는 느낌이기도 하였습니다.
그렇게 다시 여러 날이 지난 어느 날이었습니다.
아빠는 무슨 생각에서인지 제법 흥분된 표정으로 엄마를 향해 말문을 열었습니다.
“여보, 나는 이 약을 가지고 곧 도시로 떠나야 할 것 같소.”
“아니 갑자기 도시로 떠나시다니요? 도시로 가서 무슨 일을 하시러요?”
엄마는 느닷없이 꺼낸 아빠의 말에 두 눈이 갑자기 둥그렇게 되어 다시 물었습니다.
“이 신비한 약을 그냥 썩히기에는 너무 아깝기 때문이오. 지금 이 시각에도 원인을 모르는 병 때문에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고 있는 환자가 얼마나 많겠소. 그런 사람들에게 이 신비한 약을 헐값으로 팔아 넘길 생각이오. 그리고 그들 모두가 건강을 되찾게 된다면 그 얼마나 보람 있는 일이겠소. 여보 안 그래요?”
아빠의 목소리는 이미 결심을 굳힌 듯 매우 힘이 있었습니다.
“그거 아주 좋은 생각이에요. 하지만 하지만 요즈음 당신 건강도 좋지 않은데 갑자기 갑자기 집을 떠나신다니 걱정이 앞서게 되네요.”
“난 지금 한시가 급해요. 그리고 모든 게 자신이 있으니 그런 걱정 말아요.”
결국 아빠는 서운해 하는 엄마를 설득해 놓고야 말았습니다.
그다음 날이었습니다.
아빠는 아침 식사를 끝내자마자 어젯밤에 챙겨둔 약 보따리를 챙겨 등에 메더니 집을 나섰습니다. 수많은 환자들을 고통 속에서 구원해내겠다는 부푼 희망과 기대를 걸고 집을 나선 아빠는 저절로 힘이 솟아오르는 듯 발걸음도 가벼웠습니다.
마침내 도시로 나온 아빠가 제일 처음으로 찾아간 곳은 방송국이었습니다.
방송국 현관문 현관 앞에 을 열고 거침없이 성큼 들어선 아빠는 경비원 아저씨에게 다가서서 당당한 목소리로 말을 걸었습니다.
“제가 여길 찾아오게 된 것은 이 약에 대해 광고를 좀 해주십사 하는 부탁을 드리기 위해서입니다."
안내원 아저씨는 아빠의 허술한 의복 차림을 아래위로 한번 훑어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어이가 없다는 듯 대뜸 두 눈이 둥그렇게 되어 되물었습니다.
“밑도 끝도 없이 무슨 광고를 하시려고 찾아오셨다는 겁니까?”
“바로 이 약입니다. 이 약은 제가 십여 년 동안 갖은 고생 끝에 만들어낸 아주 신비한 효과를 가진 약으로 사람이든 집짐승이든 한 알만 먹이면 무슨 병이라도 기적처럼 완쾌될 수 있는 신비한 약입니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에도 병마에 시달리며 고생을 하고 있는 수많은 환자들에게 이 약을 싼값으로 공급했으면 하는 생각에서 이렇게 찾아오게 된 것입니다.”
”그래요? 그럼 정식으로 허가를 받은 약이란 말씀입니까?“
"아직 허가까지 받지는 않았습니다.“
경비원 아저씨는 말도 되지 않는 소리라는 듯 아빠의 부탁을 한마디로 딱 잘라 거절하고 말았습니다. 아빠의 허술한 행색으로 보아 틀림없이 가짜 약으로 돈을 벌기 위해 생떼를 쓰는 이상한 사람으로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약이 그렇게 좋다는 걸 어떻게 믿습니까?“
“제 아내를 비롯해서 우리 마을에서 오랫동안 중병을 않고 있던 아주머니, 그리고 우리 집 돼지가 이미 이 약을 먹고 거짓말처럼 금방 나았거든요.”
"하하하……. 그건 선생님 말씀이고요. 잘 아실 텐데 왜 그러십니까? 그 약이 가령 약효가 좋다고 해도 허가를 내지 않았는데 어떻게 방송국에서 광고를 해 드릴 수가 있습니까? 그러니 여러 말씀 마시고 어서 딴 곳이나 가 보십시오.”
경비원 아저씨는 머리가 좀 돈 사람이 아닌가 하고 고개를 갸웃하고는 귀찮다는 듯 아빠를 밖으로 내몰아버리고 말았습니다.
큰 기대를 가지고 찾아갔던 방송국에서 처음부터 보기 좋게 쫓겨나다시피 밖으로 나온 아빠는 이번엔 할 수 없이 어느 신문사를 찾아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신문사라고 해서 아빠의 말을 믿어줄 리가 없었습니다. 대수롭지도 않은 가짜 약을 들고 와서 공연히 생떼를 부리고 있다는 말투로 이번에는 미친 사람 취급까지 당하기도 하였습니다.
이번에도 신문사에서 쫓겨난 아빠는 은근히 속이 상하고 자존심까지 상해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아무리 좋은 약이라고 설명을 해도 그 말을 절대로 믿어주지 않는 방송국과 신문사가 그렇게 원망스럽고 야속할 수가 없었습니다.너무나 억울했습니다.
아빠는 그만 맥이 탁 풀리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온몸의 힘도 모두 빠져나간 것처럼 기운마저 빠지고 말았습니다.
아빠가 이번에는 무거운 발걸음으로 도시의 거리를 무작정 걷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다다른 곳이 어느 지하철의 지하도였습니다.
지하도에는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마치 밀물처럼 이리 가고 저리 가며 바쁘게 출렁거리며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그렇지. 방송국이나 신문사보다는 차라리 이곳이 낫겠군!”
이런 생각을 하며 문득 걸음을 멈춘 아빠는 지금까지 등에 메고 다니던 약 보따리를 그곳에 자리를 잡고 풀어 놓았습니다. 그리고는 오가는 행인들을 향해 크게 소리치기 시작했습니다.
“여러분! 아무리 바빠도 잠깐만 제 이야기를 들어보십시오. 이 약으로 말할 것 같으면, 어떤 종류의 심한 병이라도 한두 알만 먹으면 감쪽같이 나을 수 있는…….”
그러나 아무리 목이 터질 정도로 떠들어 보았지만 지나다니는 행인들은 모두 귀가 막혔는지 왼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그대로 지나쳐 버립니다. 그리고 어쩌다 한 사람씩 고개를 기웃거려 보고는 그나마도 콧방귀를 뀌며 저마다 한 마디씩 중얼거리고 있었습니다.
“흥, 한동안 안 보이는가 했더니 저런 가짜 사기꾼 약장수가 또다시 나타났구먼. 저런 가짜 약에 한두 번 속았어야지. 나잇살이나 먹은 사람이 할 일은 없고 돈독이 바짝 오른 모양이군.”
“지금이 어떤 세상인데 저련 걸 팔고 있다니? 저렇게 길바닥에서 파는 약 치고 가짜가 아닌 약은 없거든. 저런 걸 갖다 놓고 만병통치가 된다고 떠들어 대며 사기를 치다니 쯧쯧쯧…….”
“언젠가 나도 저런 것과 비슷한 약을 샀다가 병이 낫기는커녕 큰 돈만 날리고 말았다니까.”
“저런 사람의 말을 믿고 사는 멍청한 사람이 있을까? 도대체 경찰들은 뭘하는 거야. 저런 엉터리 약장수들을 싹 잡아가지 않고…….”
지나다니는 사람들은 모두가 못 믿겠다는 듯 한결같이 비웃는 투로 지껄이고 있었습니다. 하도 가짜에 많이 속아 본 사람들이어서 언제부터인가는 진짜도 진짜로 믿지 못하는 세상이 되고 만 것입니다.
결국, 아빠는 목이 쉴 정도로 하루 종일 떠들어 보았지만, 약은 단 한 봉지도 팔리지 않았습니다. 그 바람에 아빠는 맥이 빠졌습니다. 지치고 말았습니다.
어느새 오늘도 하루 해가 지는가 했더니 지하도 밖에는 땅거미가 내리면서 어둠으로 뒤덮여 가고 있었습니다.
‘아아, 아무리 좋은 약이라고 목이 터지게 외쳐봐도 남의 말을 절대로 믿지 않는 이런 삭막한 세상이 되다니……!”
아빠의 입에서는 자신도 모르게 긴 한숨이 나왔습니다. 아빠가 지금 너무나 억울하고 서운한 것은 약을 한 개도 팔지 못한 일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사람이 사람의 말을 절대로 믿지 않는 그런 세상에서 살고 있다는 것이 새삼 서글프고 한심할 뿐이었습니다.
“하아! 모처럼 좋은 일을 해보려고 했더니 병을 고쳐주기는 다 틀렸군!”
아빠는 몸과 마음이 모두 지치고 지친 상태가 되어 벌려 놓았던 약봉지들을 주섬주섬 보따리에 챙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마침 한 줄기의 차고 매서운 겨울바람이 지하도 입구 쪽에서 아빠를 향해 더욱 싸늘하게 몰려오고 있었습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