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을 못 보는 젊은이가 산속을 이리저리 헤매고 있는 불쌍한 모습을 누군가가 불쌍하다는 생각에 젊은이를 자신의 집으로 안내해 주게 된 것이다. 은인이었다.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그를 자신의 집으로 안내해 준 사람은 목소리로 보아 아주 젊은 여인이었다. 게다가 식구도 전혀 없이 여인 혼자 살고 있었다.
‘무슨 사연이 있기에 이런 깊은 산속에 더구나 젊은 여자 혼자 살고 있다니……!’
그러나 지금 그런 걸 따지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이렇게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 우선 반가이 맞이해 준 것만 해도 여간 고맙고 다행인 게 아니었다.
여인은 젊은이를 집안으로 안내하자마자 우선 아직도 채 아물지 못한 젊은이의 눈을 정성껏 치료해 주었다.
그리고는 곧 정성껏 밥상을 차려 놓더니 앞을 못 보는 젊은이를 위해 밥과 반찬을 정성껏 먹여 주기도 하였다.
여인의 목소리와 태도로 보아 그렇게 상냥하면서도 예절이 바를 수가 수가 없었다. 밥과 반찬 역시 그렇게 기가 막힐 정도로 입맛에 짝 맞았다. 그야말로 젊은이로서는 난생처음 먹어보는 진수성찬이었다.
저녁상을 물리자 젊은 여인이 먼저 젊은이에게 상냥하면서도 예의바른 목소리로 조심스럽게 물었다.
”어쩌다가 그렇게 두 눈을 모두 잃게 되셨는지요? 그리고 무슨 일 때문에 이렇게 깊은 산속까지 오셔서 길을 헤매게 되셨는지요?“
젊은이는 수치스럽고 창피한 마음에 얼른 대답할 수가 없었다. 그보다는 젊은 여인 혼자 이런 깊은 산속에 와서 살고 있다는 게 더 궁금하였다. 그래서 오히려 용기를 내어 되묻게 되었다.
”그보다는 무슨 사연이 있기에 남자도 아닌 여자의 몸으로 이런 깊은 산속에 와서 살고 계신지요?“
”호호호……. 그건 차차 아시게 될 겁니다. 그러니 그대의 사연부터 말씀해 주실 수는 없으신지요?“
여인이 하도 재촉을 하며 조르는 바람에 젊은이는 할 수 없이 자초지종을 털어놓기 시작하였다.
장기를 잘 두기 때문에 장기 잘 두는 사람을 찾아 돌아다니던 일, 그리고 어느 절에 갔다가 장기로 인해 스님에게 두 눈을 잃게 된 일 등을 자세히 설명하게 되었다. 그리고 반드시 복수를 하고 싶은데 두 눈이 멀어서 그것마저 불가능하게 되고 말았다는 원한 맺힌 마음도 덧붙여 설명하게 되었다.
”어이구, 그런 일이 있으셨군요. 장기는 저도 조금은 둘 줄 아는데 그럼 저하고 한번 두어 보시는 게 어떠신지요?”
장기 이야기가 나오자 여인은 몹시 반갑다는 듯, 그리고 심심하던 차에 장기를 두어 보자고 농담처럼 말하고 있었다. 그러자 젊은이는 이제 장기라면 넌덜머리가 난다는 듯 펄쩍 뛰며 소리쳤다.
“저는 이제 장기라면 진절머리가 나서 두 번 다시 두고 싶지 않습니다. 더구나 이렇게 두 눈까지 잃었는데 어떻게 장기를 두자는 말씀이신지요?”
“호호호……. 그런 걱정은 안 하셔도 됩니다. 그러니까 제가 알려드리는 대로만 하시면 가능합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란 속담도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장기 때문에 그런 억울한 참변을 당하셨다면 장기로 복수를 하셔야지요. 안 그렇습니까?”
“……?”
젊은이가 무슨 대답을 해야 할지 우물쭈물하고 있었다. 그런 사이에 여인은 어느새 두 사람 앞에 장기판을 차려 놓았다.
“자, 그럼 지금부터 제가 알려드리는 대로 천천히 시작해 보실까요? 이 장기판은 마침 앞이 안 보이는 사람들을 위해 특별히 만든 장기판이랍니다.”
여인은 말을 끝내기가 무섭게 젊은이의 한 손을 잡더니 장기판을 하나하나 자세히 만져보며 촉각으로 익혀주고 있었다. 여인의 말대로 장기판은 장기판에 금을 손으로 만져보기만 해도 짐작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희한한 장기판이었다.
그리고 장기알은 불편하긴 하지만, 새겨진 글자와 크기의 촉감으로도 어느 정도 분간할 수 있었다.
여인은 며칠 동안 쉬지 않고 틈이 나는 대로 젊은이에게 장기판과 장기알을 분별할 수 있는 훈련을 자세하고도 친절하게 열심히 가르쳐주고 있었다.
그렇게 다시 여러 날이 지나자 젊은이는 이제 여인이 가르쳐준 덕분에 어느 정도 장기판과 장기알을 모두 분간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되었다. 생각해 볼수록 기적 같은 일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젊은이의 장기 실력이 날로 쌓이게 되자 여인이 밝은 표정으로 장기를 두어 보자고 하였다.
“자, 그럼 이만하면 앞이 안 보이셔도 정상인들보다 훨씬 더 잘 두시는 편이니 저하고 한번 두어 보실까요?”
여인의 말에 어느 정도 자신감을 얻게 된 젊은이가 설레는 마음으로 쾌히 응하게 되었다.
젊은이가 한동안 뜸을 들이며 깊은 생각을 하다가 긴 호흡을 한 다음 한 수를 먼저 놓게 되었다. 그러자 여인은 한동안 장기판을 유심히 보며 생각을 하더니 고개를 갸웃거리며 무거운 입을 열었다.
“잘 두셨어요. 그러나 이미 저한테 지셨어요.”
젊은이는 하도 어이가 없어서 고개를 갸웃거리며 되묻게 되었다.
“아니 장기를 두지도 않고 벌써 지다니요?”
그러자 여인은 젊은이가 지게 된 이유를 자세히 설명해 주고 있었다. 영락없이 그때 절에서 그 천하에 원수 같은 스님이 말했던 것처럼…….
여인의 설명을 자세히 듣고 보니 정확하게 맞는 말이었다. 기가 막혔다. 그야말로 귀신이 곡을 할 정도로 대단한 실력이어서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처음부터 실망하실 필요는 없어요. 그리고 눈도 아직 온전치 않으시니 치료도 더 하실 겸 제집에 더 머무시면서 저하고 같이 장기 실력을 키워보시는 것은 어떠신지요?”
“그러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 같지만 무슨 염치로 그렇게 오랫동안 머물면서 신세를 져도 되는 것인지요?”
“호호호……. 신세라니요. 그런 걱정은 하지 마세요. 그리고 마침 적적하던 판에 아주 잘 된 일인걸요. 그리고 열심히 장기를 두시다 보면 언젠가는 틀림없이 저보다 훨씬 더 잘 두게 되는 날이 오게 될 겁니다. 그리고 그런 날이 오게 되면 아마 틀림없이 그 스님보다 더 잘 두실 수도 있을 것으로 믿고 있습니다.”
“…….”
여인의 말에 젊은이는 눈물이 날 정도로 고마웠다. 그리고 갑자기 없던 힘과 용기가 솟구치고 있었다.
그래서 결국 염치가 없는 일이긴 하지만 새로운 각오로 여인에게 처음부터 장기를 다시 열심히 배워야겠다는 결심을 굳히게 되었다. 그리고 죽기 전에 언젠가는 꼭 복수를 하고야 말겠다는 결심을 더욱 굳히게 되었다.
흐르는 세월은 쏜살같다고 하더니 그렇게 열심히 장기를 두며 배우는 동안 다시 십 년이란 긴 세월이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 버렸다.
그날도 두 사람은 여느 때처럼 서로 마주 앉아 열심히 장기를 두고 있었다.
“호호호……. 마침내 오늘은 드디어 그대가 이기셨습니다. 정말 축하드립니다.”
오늘따라 젊은이가 장기 한 알을 놓자마자 여인은 너무나 기쁜 나머지 펄쩍 뛰면서 젊은이보다 더 좋아하고 있었다. 그렇게 좋아할 수가 없었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여인을 이겨본 적이 없던 젊은이였다. 그런데 십 년 만에 이렇게 꿈같은 일이 일어나다니 이처럼 가슴이 벅찰 정도로 기쁠 수가 없었다. 마치 꿈속을 헤매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 여인이야말로 절망 앞에 나타난 은인임에 틀림없었다.
여인이 급하다는 듯 다시 재촉을 하고 있었다.
“더 늦기 전에 지금 곧 서둘러 보심이 어떠신지요?”
“이런 실력으로 정말 제가 이길 수 있을까요?”
“지금까지 세상에서 저를 이겨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답니다. 그런데 그대는 저를 이기셨으니 틀림없이 이기실 수 있습니다. 제 말을 믿어주세요.”
여인의 이야기를 들은 젊은이는 마음이 급해져서 이대로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 길로 스님을 찾아가기 위해 길을 떠나게 되었다. 복수를 한 뒤에 반드시 여인을 다시 찾아오겠다는 굳은 언약을 남긴 채…….
젊은이는 곧 십여 년 전의 기억을 더듬으며 수둘러 길을 재촉하게 되었다.
몇 날 며칠을 헤맨 끝에 마침내 용케도 그 절을 찾아갈 수 있게 되었다. 절에 당도해 보니 천만다행히도 그때의 그 스님이 그대로 절을 지키고 있었다.
젊은이는 초면인 척하고 스님을 향해 공손히 합장을 하며 사정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스님, 길을 가다가 날이 저물어서 하룻밤만 묵고 갈까 하고 이렇게 염치없이 찾아뵙게 되었습니다.”
천만다행히도 젊은이가 변장을 했기 때문에, 그리고 너무 오래 된 일이어서 그랬는지 스님은 젊은이를 알아보지 못했다.
“아암, 묵고 가셔야 하고말고요. 그대처럼 어려운 길손들을 돕기 위해 소승이 이 절을 지키고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그런 말씀 마시고 편안한 마음으로 어서 들어가시지요.”
스님은 여전히 십 년 전에 그랬던 것처럼 몹시 인자한 표정으로 젊은이를 다정히, 그리고 반갑게 맞이해 주고 있었다.
저녁 식사를 마치자 두 사람은 십여 년 전에 바로 그 방에 자리를 잡고 마주 앉았다. 그리고 스님이 먼저 젊은이의 싸맨 두 눈을 바라보며 매우 안 됐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허어, 그래 어쩌다가 두 눈이 그렇게 불편하게 되셨소?”
“네, 전생에 무슨 죄가 많아서 그런지 태어날 때부터 그만 이렇게 앞을 못 보는 불구가 되고 말았습니다.”
“허허, 우리의 몸이 천 량이라면 눈은 구백 량이라고 하던데 그거 몹시 안타까운 일이로군요. 그런데 이걸 어쩌나? 소승은 심심할 때마다 찾아온 손님과 장기를 두는 게 취미인데 앞을 못 보시니 그럴 수도 없고 말입니다.”
가증스러운 스님의 말에 젊은이는 마음 속으로 쾌재를 부르고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먼저 장기를 두자고 운을 떠보려고 했는데 일이 나무 쉽게 잘 풀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아, 그러십니까? 저도 보시다시피 앞을 전혀 볼 수는 없지만 장기를 두는 것이 유일한 취미랍니다.”
그러자 스님은 깜짝 놀라는 기색이 되어 되물었다.
“아니 그렇게 불편한 눈으로 어떻게?”
“네, 저는 손가락으로 만져보면서 어느 정도 장기판이나 장기알을 분별할 줄 알고 있기에 가능하답니다.”
“아아, 그렇군요. 그러시다면 그거 아주 잘 됐군요. 그럼 심심풀이로 한번 두어 볼까요?”
스님은 어느 틈에 준비해 두었던 장기판과 장기알을 꺼내놓았다. 그리고 다시 입을 열었다.
“소승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장기를 그냥 두는 법은 없었습니다.”
“그냥 두는 법이 없다니 그건 또 무슨 말씀이신지요?”
“원래 내기 장기를 좋아합니다. 장기로 지는 사람의 눈알을 빼는 내기를 좋아하고 있지요.”
“으하하하……. 원 스님도 참 별 재미있는 농담을 다 하십니다. 사람의 눈을 빼시다니요?”
젊은이는 겉으로는 시치미를 떼고 있었지만, 마음속으로 너무나 잘됐다는 듯 기뻐하고 있었다. 이제야말로 원수를 제대로 갚을 기회가 왔다는 원한 맺힌 복수심에 가슴이 불끈 솟아오르며 요동을 치고 있었다.
젊은이의 말에 스님은 절대로 농담이 아니라는 듯 정색을 하면서 다시 입을 열었다.
“농담이라니요. 그건 사실입니다. 소승은 지금까지 눈알을 빼는 내기 장기만 두어왔으니까요. 그보다는 손님은 두 눈이 모두 없으니 만일 장기에 진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스님의 말씀이 농담인 줄은 잘 알고 있습니다만, 그럼 저는 눈이 없는 대신 제 손목을 기꺼이 내놓겠습니다.”
“그래요? 그거 아주 좋은 생각이십니다. 그럼 그렇게 하십시다. 눈 대신 팔을 자르기로요. 허허허…….”
아아, 이게 얼마 만에 찾아온 꿈같은 기회란 말인가!
그렇게 해서 십여 년 만에 꿈에도 그리던 두 사람의 장기판은 다시 벌어지고야 말았다.
두 사람은 십여 년처럼 서로 먼저 놓으라고 옥신각신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결국 스님이 먼저 두게 되었다. 그리고 스님이 한동안 깊이 생각한 끝에 마침내 장기 한 알을 올려놓게 되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장기판을 잠시 더듬어보던 젊은이가 무거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스님, 서운하시겠지만, 지셨습니다.”
“어허, 아니 장기를 두어 보지도 않고 그게 무슨 말이요?”
스님의 물음에 십여 년 전에 스님이 설명했던 것처럼 이번에는 젊은이가 자세히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스님이 가만히 생각해 보니 아닌 게 아니라 젊은이의 말은 틀림이 없었다. 그러자 스님이 몹시 민망한 듯 웃음띈 목소리로 다시 입을 열었다.
“허어, 말씀을 듣고 보니 제가 진 것이 틀림없군요. 아직까지는 단 한 번도 져본 일이 없었는데 정말 실력이 대단하신 분을 만났군요. 그럼 다시 한번 더 두도록 해 보십시다.”
“대단하다니요. 그러나 약속은 약속이지요.”
젊은이는 이렇게 대답을 끝내기가 무섭게 손을 번쩍 들더니 뒷벽에 걸린 망태기를 서슴없이 꺼내 들었다. 아주 익숙한 솜씨로…….
그러자 스님은 새파랗게 질린 사색이 된 표정이 되어 펄쩍 뛰고 있었다.
“어이구, 손님, 농담 한번 한 걸 가지고 왜 그러십니까? 그러지 말고 한 번만 더 두시지요.”
스님은 겁에 질려 안색이 하얗게 질려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웃음이 사라진 젊은이의 입에서는 서릿발 같은 차가운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었다.
“기억하고 계신지요? 십 년 전에 스님이 바로 제게 그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농담을 한 것이 아니라고요. 자, 어서 얼굴을 이리 대십시오.”
“……!!”
아뿔싸! 스님은 그제야 젊은이의 정체를 알아차리고 극도의 공포를 느낀 나머지 사시나무처럼 벌벌 떨고 있었다.
“으아아악~~~~”
젊은이는 결국 익숙한 솜씨로 스님의 눈알을 인정사정 두지 않고 뽑아버리고 말았다. 그러자 스님의 처절한 비명소리가 다시 방안에 울려 퍼지고 있었다.
스님이 방바닥에 나뒹굴면서 피를 흘리고 있는 처참한 모습을 한동안 바라보고 있던 젊은이가 벌떡 일어서더니 스님을 향해 다시 무거운 입을 열었다.
“스님, 이제 저는 볼일을 끝냈으니 저는 이대로 갑니다. 아마 한동안 저처럼 뼈아픈 고생을 하시게 될 겁니다. 그럼 안녕히 계세요.”
젊은이가 이렇게 인사를 하고 막 방문을 나서려고 하자 스님은 너무나 억울하고 분했던지 그런 고통스러운 상황임에도 젊은이를 향해 다급하게 소리치고 있었다.
“아, 안 됩니다. 이대로 그냥 가면 안 된다니까요. 제발 다시 한 판만 더 둡시다.”
“아닙니다. 이대로 끝내는 게 스님에게 좋을 듯합니다. 그나마 하나 남은 눈마저 잃어버리시면 어쩌려고 그러십니까?”
그러나 스님은 막무가내였다.
“천만에 말씀, 이번에는 기어이 소승이 당신의 팔을 잘라버리고 말겁니다. 그러니 더도 말고 제발 한 판만 더 둡시다.”
스님이 하도 울부짖으며 애원하다시피 젊은이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매달리는 바람에 젊은이는 차마 뿌리치고 그냥 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다시 자리에 앉게 되었다. 그리고 장기판을 도로 내놓게 되었다.
“자, 조금 전에는 소승이 먼저 두었으니 이번에는 손님이 먼저 두시지요.”
“좋습니다. 그럼 스님 말씀대로 이번에는 제가 먼저 두겠습니다.”
젊은이는 곧 장기알 하나를 장기판에 올려놓았다. 그러자 스님이 잔뜩 긴장한 얼굴로 오랫동안 깊이 생각하다가 마침내 벌벌 떨리는 손으로 장기알을 놓게 되었다. 그러자 젊은이는 안 됐다는 듯 이번에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입을 열었다.
“하아, 이걸 어쩌면 좋지요? 스님, 이번에도 지셨습니다.”
순간 스님은 죽을 상이 된 표정으로 되물었다.
“뭐라고요? 장기도 둬보지 않고 지다니요? 그런 법이 어디 있어요?”
스님의 말에 젊은이가 다시 자세히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설명을 듣고 보니 영락없이 이번에도 스님이 진 것이 틀림없었다.
젊은이는 다시 익숙한 동작으로 벽에 걸린 망태기를 꺼내들었다. 그리고는 쇠꼬챙이를 손에 힘을 주고 꽉 잡더니 한 개 남은 스님의 눈알을 빼기 위해 덤벼들었다.
“아, 아니, 한 개 남은 눈마저 잃게 되면 소승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 제발 용서해 주십시오. 이렇게 빕니다, 네에?”
스님은 피범벅이 된 두 손을 마주 대고 싹싹 빌며 살려 달라고 애원을 하고 있었다.
그것은 비명에 가까운 소리였다. 그 모습이 그처럼 불쌍하고 갸련해 보일 수가 없었다. 그러나 지금 그런 사정을 보아줄 젊은이가 아니었다.
“지금 무슨 말씀을 하고 계신 겁니까? 그러게 제가 그만두자고 하지 않았습니까? 저도 스님 덕분에 이렇게 두 눈을 잃고 뼈를 깎는 아픔을 견디며 살아온 지가 이미 십여 년이란 세월이 흘렀습니다. 자, 저를 원망하지 마시고 어서 눈을 대세요.”
젊은이는 말을 끝내자마자 이번에도 인정사정 두지 않고 남아 있는 스님의 한쪽 눈알을 순식간에 뽑아버리고 말았다.
“으아아악! 나 죽는다! 나 죽어!”
스님은 다시 곧 숨이 넘어갈 듯한 목소리로 소리소리 지르며 두 손으로 눈을 틀어막은 채 비명을 지르며 데굴데굴 구르고 있었다. 스님의 눈에서 흘러내리고 있는 새빨간 피가 방바닥을 흥건히 적셔가고 있었다.
“사람 살려요! 사람 살려!”
그런 스님의 비명을 뒤로 한 채 젊은이는 냉정한 표정으로 아무 말 없이 절을 나서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