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옛날이야기]
아주 오랜 옛날 어느 마을에 마음씨가 착하고 성실한 젊은이가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아가고 있었다. 그는 홀어머니를 남달리 극진히 정성으로 모시는 효자였다.
그는 효성이 지극할 뿐만 아니라 인물 또한 누구 못지 않게 남자답게 잘 생긴 미남이어서 그야말로 어느 곳 하나 나무랄 데가 없었다.
아들은 어머니에 대한 효성이 지극하여 마을 사람들마다 칭송이 자자하였다.
그러나 옥에도 티가 있다고 했던가. 아무리 마음씨가 착하고 성실하며 효성이 지극하면 무엇하랴. 그리고 아무리 인물이 뛰어나면 무슨 소용이 있으랴.
그는 안타깝게도 보기와는 달리 한 가지 커다란 흠을 가지고 있었다. 워낙 머리가 아둔한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그는 금방 가르쳐 준 말도 기억하지 못하고 금방 까먹는 버릇이 있었다. 심지어는 자신의 생일은 물론이고 가끔은 이름까지도 기억해내지 못하는 돌대가리 같은 머리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허어, 그 사람 머리가 조금만 똑똑하게 태어났다면 어디 하나 나무랄 데가 없는 젊은이인데 그거 차암 아깝구먼. 쯧쯧쯧…….“
마을 사람들은 젊은이를 볼 때마다 혀를 끌끌 차며 안타까워하며 머리를 흔들곤 하였다.
그런 아들을 둔 어머니는 더욱더 속이 탈 지경이었다. 가장 속이 타는 것은 혼기가 훨씬 지났지만, 결혼을 하겠다고 선뜻 나서는 처녀가 좀처럼 나타나 주지를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자나 깨나 늘 걱정이 태산 같았다.
어느 날 하도 답답함을 견디다 못해 마침내 어머니가 아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얘야, 너 이러다 총각 귀신이 되면 어쩐다냐? 에미는 그게 가장 걱정이로구나.“
그러나 아들은 어머니의 애타는 심정과는 달리 그저 천하태평이며 낙천적이었다. 그 바람에 날이 갈수록 어머니의 속은 점점 더 타들어 가고만 있었다.
”어쩌긴 무얼 어쩐다고 그런 걸 가지고 걱정을 해 쌓고 그래유?“
”이런 철딱서니 없는 녀석 같으니라구. 에이구, 이놈아, 이러다가 그냥 총각으로 늙을까 봐 그러는 거지.“
”어이구, 엄니도 차암, 별걱정을 다 하셔유. 그까짓 결혼을 못하면 어때유. 난 색시보다는 엄니하고 같이 사는 게 더 좋은 걸유. 엄닌 안 그래유? 흐흐흐…….“
어머니는 기가 차서 더 이상 할 말을 잃고야 말았다.
그러나 쥐구멍에도 볕 들 날이 있고, 길바닥에 굴러다니는 짚신도 제 짝이 있다고 했던가.
누군가의 소개로 총각 귀신이 될 줄로만 알았던 아들에게 뜻밖의 배필이 나타나게 되었던 것이다. 그것도 예사 여자도 아니었다. 성품이 아름답고 생김새도 어여쁘게 생긴 여자였다. 다시 말하자면 호박이 넝쿨째 굴러온 복이 아닐 수 없었다.
어머니는 그제야 겨우 한숨을 쉬게 되었다. 경사도 그런 큰 경사가 아닐 수 없었다. 오랫동안 케케 묵었던 근심 걱정이 한꺼번에 풀려나간 느낌이었다. 동네방네로 돌아다니며 춤을 추고 싶기도 하였다.
결국 혼례식을 며칠 앞두고 미리 장인 어르신께 인사를 하러 가기에 이르렀다. 장인 앞에서 이 어려운 과정을 무사히 끝내야만 사윗감으로 받아들이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마침내 혼례식을 거행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드디어 예비 장인어르신을 뵈러 가기 전 날 저녁이 다가오고 말았다.
어머니는 그새 여러 날 동안 정성을 다해 장인어르신께 대접해 드릴 음식을 장만하기 위해 분주한 나날을 보내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렇게 있는 정성 없는 정성을 다해 정성껏 장만한 음식은 집에서 담근 술과 찜 통닭, 그리고 보기만 해도 먹음직스럽게 생긴 인절미였다.
그러나 어머니는 여전히 마음 한구석이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아들이 장인 어르신을 뵈러 갔다가 천에 하나 혹시 실수나 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이었다. 혹시 실수라도 하게 되면 다 된 죽에 재를 뿌리는 결과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생각다 못한 어머니는 정성껏 마련한 찜닭과 술병, 그리고 인절미를 방바닥에 펴놓은 다음 아들에게 가르치기 시작했다. 맨 먼저 인절미를 손에 들고 어머니가 입을 열었다.
”얘야, 이건 인절미라고 하는 거란다. 어디 한번 ‘인절미’ 하고 따라서 해 보렴.“
그러자 아들이 얼른 대답했다.
”어이구, 엄니 그까짓 걸 내가 모를까 봐 그래유? ‘인절미!’“
기분이 좋아진 어머니가 이번에는 찜닭을 가키며 물었다.
”오냐, 그래그래 잘 했다. 그다음에 이건 또 뭐지?“
”그, 글쎄요. 그게 뭐였더라?“
”이건 찜닭이라고 하는 거란다. 나를 따라서 그대로 해 보렴. 찜닭!“
”아아, 이제 알았시유. 찜닭!“
”옳지. 역시 우리 아들이로구나. 그럼 이건 뭐지?“
어머니가 이번에는 술병을 들어 보이며 물었다. 그러자 아들은 자신이 있다는 듯 신바람이 나서 얼른 대답했다.
”아하! 그거유? 그건 술이지유 안 그래유? 엄니, 내 말이 맞쥬?“
”그래. 맞았다. 이걸 술이라고 하는 거란다. 하지만 어른한테 말씀드릴 때는 술이라고 하는 게 아니라 약주라고 하는 거란다. 자 다시 한번 따라서 해 보렴 약주!“
”아하, 그렇구나! 이제 알았다. 약주!“
”그래그래 우리 아들 참 똑똑하구나. 그럼 이번에는 이 세 가지를 잊어버리지 않도록 한 가지씩 따라서 해보렴.“
어머니는 기분이 좋아서 세 가지 음식을 차례대로 가리키며 가르쳐주기 시작했다.
”인절미, 찜닭, 약주!“
그러자 어머니를 따라 아들이 천천히 따라서 음식 이름을 대기 시작했다.
”인절미, 찜닭, 약주!“
”오냐, 우리 아들 정말 잘 했다. 자 그럼 다시 또 해 보자꾸나.
아들이 한 가지도 빠뜨리지 않고 제대로 대답하지 어머니는 더욱 신바람이 났다.
“인절미, 찜닭, 약주!”
“인절미, 찜닭, 약주!”
그렇게 계속해서 어머니가 먼저 말해주고 아들이 따라서 대답하다 보니 어느새 밤이 이슥해지고 말았다. 그러자 아들은 싫증이 났는지 그만하자고 하였다.
“엄니, 이제 그만하면 안 돼유? 그만하면 나 아주 잘 하잖아유.”
“그래그래, 우리 아들이 생각보다 아주 잘 하는구나. 그럼 이제부터는 장인 어르신을 만나서 음식을 권할 때 잊어버리지 말고 이렇게 예의 바르게 말씀을 드려야 한단다.”
그런 다음 어머니는 술병을 들고는
“자, 다시 따라서 해보렴. ‘장인 어르신, 맛은 변변치 않지만 약주 한 잔 두시지요’ 하고 권해 드리는 거란다.”
“네, 알았시유. ‘장인 어르신, 맛은 변변치 않지만 약주 한 잔 드시지요.”
“정말 아주 잘 대답했구나. 우리 아들 참 똑똑하기도 하지. 그럼 이번에는 이 찜닭을 가리키며 이렇게 권해 드리는 거란다.’자, 안주로 이번에는 찜닭을 좀 들어보시겠어요?”
“장인 어르신, 이번에는 찜닭 안주 좀 들어보시지요.”
“그래그래, 아주 참 잘했다. 그리고 안주까지 다 드신 뒤에는 마지막으로 인절미를 권해 드리며 ‘장인 어르신, 인절미 맛좀 보시지요’ 하고 권해 드려야 한단다.”
어머니와 아들의 술과 안주, 그리고 안절미에 대한 공부는 새벽녘이 가까워서야 겨우 끝이 났다.
그다음날 아침이었다.
아들은 마침내 아침 일찍 어머니가 챙겨준 음식들을 지게에 짊어지고 예비 처가를 향해 먼 길을 떠나게 되었다.
어머니는 그래도 걱정이 되어 길을 떠나는 아들에게 신신당부를 하게 되었다.
“절대로 잊어버리면 안 돼. 그러니까 혹시나 모르니까 걸어가면서도 쉬지 말고 계속 음식 이름을 외워보도록 해야 한다. 알겠지?”
“네, 알았시유. 아무 걱정 마셔유.”
아들은 어머니가 일러준 대로 세 가지 음식 이름을 발걸음 박자에 맞추어 계속 외우면서 걸어가고 있었다.
“약주, 찜닭, 인절미……, 약주, 찜닭, 인절미……, 약주, 찜닭, 인절미…….”
그렇게 쉬지 않고 음식 이름을 입으로 불러가며 걷는 동안 어느 징검다리를 건너게 되었다. 돌로 드문드문 놓인 징검다리 밑으로는 거센 물살이 쉬지 않고 흘러내려가고 있었다. 자칫하다가는 물로 빠질 정도로 위험했다.
“약주, 찜닭, 인절미……, 약주, 찜닭, 인절미……, 약주, 찜닭, 인절미…….”
아들은 위험한 징검다리를 건너가면서도 쉬지 않고 음식 이름을 외우고 있었다. 그러다가 등에 진 지게가 기우뚱하는 바람에 그만 음식 이름 외우은 일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 결국 무사히 징검다리를 건넜다.
그런데 이를 어쩌면 좋단 말인가! 징검다리를 건너며 음식 이름을 멈추는 바람에 밤새 외운 음식 이름 모두를 까맣게 잊어버리고 만 게 아닌가.
아들은 결국 지게를 내려놓고 지게에 있는 음식을 하나씩 내려놓고 음식 이름을 다시 기억해내느라고 진땀을 빼고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이리 생각해 보고 저리 생각해 봐도 좀처럼 음식 이름이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렇다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서 어머니에게 물어본다는 것도 어려운 일이었다. 그랬다가는 어머니한테 보기 좋게 야단을 맞을 게 뻔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너무 멀이 왔기 때문에 다시 짐을 지고 집으로 간다는 것도 무리가 아닐 수 없었다.
아들은 할 수 없이 땅바닥에 털썩 주저앉아서 우선 찜닭을 손에 들고 이리 보고 조리 보면서 기억을 되살리느라 바빴다. 한동안 그렇게 음식 이름을 알아내기 위해 골몰하고 있었지만 끝내 생각이 나지를 않았다.
“이를 어쩌면 좋다냐?”
아들은 그만 울상이 되고 말았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가까운 산에 숨어있던 꿩 한 마리가 ‘꿩꿩 푸드덕!’ 하는 요란한 소리를 내며 저 건너 산으로 날아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꿩이 날아가는 모습을 한동안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던 아들은 그제야 갑자기 생각이 난 듯 무릎을 치며 좋아했다. 꿩이 날아가는 모습을 보니 찜닭의 모습과 흡하 닮은 것이 아닌가.
“아하! 이놈이 바로 ‘꿩꿩 푸드대기’로구나!”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었다. 한 가지가 해결되자 그 다음에는 술병을 꺼내놓고 두 손으로 이리 흔들고 저리 흔들며 술의 이름을 생각해 내느라고 바빴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런데 다행히 이번에도 갑자기 술 이름이 생각이 났다. 술병을 사정없이 흔들다 보니 술병에서 ‘올랑쫄랑, 올랑쫄랑’하고 소리가 나는 것이 아닌가.
“아하! 이게 바로 ‘올래이 쫄래이’로구나!”
아들은 그렇게 신바람이 날 수가 없었다. 그 다음에는 인절미 하나를 꺼내 들고 깊은 생각에 잠기게 되었다. 이 인절미 이름 하나만 알아내고 나면 모두 해결이 되는 셈이었다.
마침내 콩가루가 묻은 인절미 하나를 손에 들고 이리 살펴보고 저리 살펴보며 기억을 되살려 내느라고 애를 쓰고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좀처럼 기억이 나지 않자 땅바닥에 동댕이질을 쳐보기도 하였다. 그래도 이름이 떠오르지 않자 이번에는 두 손으로 인절미를 양쪽에 쥐고 잡아당겨 보았다.
힘껏 잡아당기는 바람에 인절미가 길게 늘어났다. 그러다가 한 손을 놓아보니 길게 늘어났던 인절미가 도로 오므라들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자 아들은 그제야 생각이 났다는 듯 다시 무릎을 치며 기뻐했다.
“아하! 이놈이 바로 ‘누런옴츠래기’였구나!”
아들은 너무나 신바람이 나고 기뻤다. 그래서 다시 기제를 지고 걸어가면서 세 가지 음식 이름을 열심히 외우며 걸어가고 있었다. 이번에야말로 절대로 다시는 잊어버리지 않겠다는 결심에서 더욱 열심히 외우며 걸어가고 있었다.
“꿩꿩 푸드대기……, 올래이 쫄래이……, 누런옴츠래기……”
그렇게 열심히 외우며 가는 동안 마침내 예비 장인 어른 댁에 도착하게 되었다. 미리 대문 밖에 나와 기다리고 있던 장인 어른과 장모님이 반갑게 맞아주었다. 그리고는 곧 술상은 차린 다음 예비 장인어른 앞에 정중히 무릎까지 꿇은 다음 술을 권하게 되었다.
“장인 어르신, 맛이 어떠실지 모르지만 ‘올레이쫄레이’ 한 잔 맛 좀 보시지유.”
그러자 장인 어른이 재미있는 사람이라는 듯 빙그레 웃는 낯으로 아들을 바라보며 되묻게 되었다.
“허허허……, 자네 지금 뭐라고 그랬나?”
“예, ‘올레이쫄레이’ 라고 그랬습지유.”
그러자 장인 어른은 더욱 재미있다는 듯 다시 한번 껄껄 웃으면서 대답했다. 그러면서 농담까지 잘하는 그런 사윗감이 은근히 마음에 들기도 하였다.
“으하하……, 그 사람 참 보기와는 달리 농담도 아주 잘하는구먼. 허허허……,”
장인어른의 칭찬 소리를 들은 아들은 신바람이 났다. 그래서 이번에는 찜닭 한 점을 젓가락으로 집어 권하며 다시 입을 열었다.
“장인 어르신, 올래이쫄래이를 드셨으니 이번에는 안주로 ‘꿩꿩푸드대기’ 맛 좀 보시지유.”
“아니 지금 뭐라고 했나?”
“‘꿩꿩푸드대기’라고 했지유. 왜유? 제 말이 틀렸나유?”
그러자 못마땅하다는 듯 장인 어른의 낯이 조금 일그러지면서 대답했다.
“허허, 농담도 분수가 있지 어른 앞에서 자꾸만 그런 농담을 하는 게 아닐세.”
“지가 감히 어느 앞에서 농담을 하다뉴? 지는 절대로 농담을 하는 그런 못 배운 사람이 아니라니깐유.”
“……?”
순간 장인 어른은 너무 기분이 상한 듯 얼굴 표정이 푸르락 붉으락하면서 아무 대꾸도 못하게 되었다. 그러자 이상하다고 생각한 아들이 이번에는 더욱 정중한 목소리로 인절미를 권하게 되었다.
“장인 어르신, 그럼 이번에는 마지막으로 우리 엄니가 정성껏 만드신 ‘누런옴츠래기'로 입가심 좀 해보시쥬.”
그러자 장인 어른은 더욱 화가 나서 일그러진 표정으로 다시 물었다.
“아니 지금 나한테 뭘 먹어보라고 그랬나?”
“누런 옴츠래기유, 왜 지 말이 틀렸나유?”
그러자 장인 어른은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듯 잔뜩 화가 난 목소리로 꽥 소리를 지르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고 말았다.
“이런 버르장머리 없는 녀석을 다 봤나. 썩 물러나거라. 그리고 꼴도 보기 싫으니 당장 이 집에서 나가게.”
그러자 아들도 어안이 벙벙한 듯 그리고 너무 억울하다는 듯 울상이 된 얼굴로 장인 어른을 멀거니 바라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도대체 왜 괜히 화를 내고 그러시는 거유?”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