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겨울나무 May 28. 2022

'책보'의 추억

[책가방이 나오기 전에는?]

세상이 달라져도 너무나 빨리 달라지며 변하고 있다.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옛말이 무색할 정도로 요즘은 10년이 아닌 단 하루가 멀다 하고 모든 것이 눈부시게 변하며 달라지고 있다.   

   

 세상이 그렇게 나날이 변하며 달라지고 있으니 학생들의 책가방 역시 세월에 따라 여러 가지로 변하며 달라지지 않을 수 없었던 것 같다.        


 과연 여러분들은 초등학교 입학할 때 어떤 책가방을 사용해 보셨는지요?     


  1. 책가방이 아닌 책보     


요즘은 초등학교와 중고등학교에 입학할 때마다 전혀 가방을 사달라고 조를 필요가 없는 세상이 된 것 같다. 그만큼 여유로운 세상이 되기도 하였지만, 자녀들이 입학하기도 전에 부모님들이 미리 알아서 척척 구입해 주는 세상이 되었기 때문이라 하겠다.      


책가방을 사주고 싶어하는 것은 부모님뿐만이 아니다. 가까운 친척들이나 지인들이 서로 가방을 축하 선물로 사주겠다고 경쟁이라도 하듯 약속을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요즘 책가방들은 그냥 보통 책가방이 아니다. 대부분이 이른바 메이커가 있는 디자인이 예쁘고 고급스러운 책가방들이다. 그러기에 책가방의 크기, 색깔, 구조, 디자인 등 얼마든지 본인의 마음에 드는 가방을 선택할 수도 있는 좋은 세상이 된 것이다.       


그러나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공장에서 책가방을 아예 생산을 하지 않아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책가방이란 것을 구경조차 할 수 없었다.    

 

그럼 그 시절에는 학생들이 학교에 등교하거나 하교할 때 교과서나 필통 등을 어떻게 가지고 다녔을까?      


그때는 누구나 커다란 보자기를 이용해서 책가방 대신 사용하곤 하였다. 그러기에 책가방이란 말 대신 책을 싸는 보자기란 뜻으로 책보는 말로 통용되었다.  

    

 책보는 그나마 학교에서 교과서가 나온 뒤에 사용하였다. 교과서가 나오기 이전에는 입학식을 할 때 누구나 큼직한 수건으로 만든 턱받기를 목에 걸고 다니게 하였다. 수건을 목에 걸지 않고 가슴에 달고 옷핀으로 고정시키고 다니기도 하였다.    

  

 그때는 입학생들 모두에게 누구나 턱받기를 걸고 다니게 하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 같다.      


왜 그랬는지는 자세히 모를 일이지만, 옛날에는 유난히 코를 많이 흘리는 아이들도 많았고 침을 많이 흘리는 아이들도 많았다. 모르긴 하지만 아마 못 먹어서 배가 고프고 또한, 입을 게 마땅치 않아서 춥게 지내던 시절이어서 그랬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고 부모님들 역시 오직 먹고살기에 바빠 아이들의 위생 관념까지 돌볼만한 여유가 부족해서 그랬던 게 아닌가 하고 추측을 하고 있을 뿐이다.      


 아이들이 코와 침을 많이 흘리다 보니 그럴 때마다 아무 데나 지저분하게 흘리거나 특히 코와 침을 옷소매에 문지르는 아이들이 많았다. 요즘 사람들이 생각하면 좀처럼 이해할 수도 없는 거짓말 같은 일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어찌 됐거나 그때는 코와 침을 흘리는 아이들이 꽤나 많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기에 학교에서는 아이들에게 조금이나마 위생적인 습관을 길러주기 위한 방법으로 입학할 때부터 턱받기를 사용하게 했던 것이 아닌가 추측해 보게 된다.      


 턱받기를 그렇게 한동안 달고 다니다가 보면 교과서를 나누어 주게 된다. 교과서가 나오면 지금까지 달고 다니던 턱받기를 서서히 떼어내고 책을 지니고 다니기 위해 바로 책보를 준비해 두어야 한다. 

    

 책보 역시 천이 귀한 시절이어서 대부분 무명으로 된 천이나마 감지덕지하고 사용하였다. 그리고 무명으로 된 천을 커다란 정사각형 모양으로 잘라서 교과서와 필통 등을 보자기에 놓고 둘둘 말아서 책가방 대신 사용하게 되었다.    

  

 을 보자기에 싸는 방법은 일단 보자기를 바닥에 잘 펴놓은 다음 크기가 가장 큰 책이나 공책부터 맨 밑에 대각선으로 놓은 다음 그 위에 필통이나 도시락을 올려놓는다. 그리고 펴놓은 보자기를 둘둘 말아 놓은 다음 맨 마지막에는 보자기가 풀어지지 않게 옷핀으로 단단히 고정시켜 놓는다.    

  

 그렇게 단단히 싸고 고정시켜 놓은 책보의 양쪽 끝부분을 남학생들은 어깨에 대각선으로 메고 풀어지지 않도록 꽁꽁 동여매고 다녔으며 여학생들은 남자와 달리 책보를 허리에 동여매고 다녔다.    

  

 2. 책보의 쓰임


보자기가 워낙 귀한 때여서 책보는 학교에 다닐 때 책이나 도시락만 싸 가지고 다닌 것이 아니었다.    

  

워낙 천이 귀하고 보자기가 귀한 시절이어서 학교에 가지 않는 날은 책보를 다른 용도로 두루두루 요긴하게 쓰이기도 하였다.     

즉, 읍내 장으로 물건을 팔러 가거나 어떤 물건을 사 가지고 올 때는 시장바구니 역할을 하였고, 옷 정리를 해둘 때도 쓰였다.     

 

또한, 보자기는 농사 일을 할 때 머리에 수건 대신 쓰기도 하였으며 허리에 매고 앞치마 대신 쓰기도 하였다. 그리고 추울 때는 목도리로 많이 쓰이기도 하였다.      


이처럼 보자기 하나가 여러 가지로 유용하게 쓰이는 귀한 물건, 그리고 가정에서 없어서는 안 될 귀중한 물건의 하나가 되었던 것이다.   


 2. 그러나 여러 가지로 불편했던 책보      


그처럼 소중한 보자기가 책보로 쓸 때는 불편한 점도 많았다.   

    

첫째책보를 어깨에 메고 그냥 조심스럽게 걸어다닐 수만은 없는 일이었다. 학교가 대부분 시오리나 되는 먼 길이었으니 가끔 늦었을 때는 지각을 하지 않기 위해 뛰어가야 할 때가 많았다.     

 

힘껏 뛰어갈 때마다 등에 있는 책보에서는 연신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심하게 날 수밖에 없었다. 필통 속에 넣어 둔 연필과 지우개 등이 깡통으로 만든 필통에 부딪쳐서 나는 소리였다. 그렇게 되면 잘 깎아서 넣어둔 연필심이 모두 부러져 버리거나 골아버리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기에 학교에 가자마자 다시 연필을 깎아놓아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연필심이 부러지거나 골아버리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혹시 도리락까지 같이 싸서 메고 다닐 때는 매우 난처한 일이 많이 벌어지기도 하였다.     

 

그때 도시락은 모두가 한결같이 직사각형 모양으로 된 알루미늄 도시락이었으며 도시락 한쪽 끝에 반찬을 넣어두는 작은 그릇이 따로 있었다. 그때 도시락 반찬으로는 대부분 ’무말랭이 무친 것‘, ’고추장‘, ’새우젓‘, ’김치‘ 등을 싸 가지고 다녔다.    

 

형편이 좀 괜찮은 집에서는 ’멸치볶음‘이나  북어조림, 그리고 계란을 싸가지고 다니기도 하였다.     

    

그런데 특히 고추장이나 김치 등을 싸 가지고 다닐 때는 오랜시간 등에서 흔들리다가 보니 김칫국물이 벌겋게 흘러나와 밥과 반찬이 서로 섞여 엉망이 되기도 하였다. 더 심할 때는 국물이 새어 나와 입은 옷까지 벌겋게 김칫국물이 들기가 일쑤였다.    

  

고추장을 싸 가지고 다닐 때도 마찬가지였다. 책보를 메고 뛰다 보면 나도 모르게 반찬통에 있던 고추장이 흘러나와 밥과 섞여 범벅이 되기도 하고 옷을 벌겋게 적셔놓는 낭패스러운 일이 자주 벌어지곤 하였다.      

 

그리고 새우젓을 반찬으로 넣고 뛰다 보면 새우젓이 마치 반찬통에서 이리 구르고 저리 구르다가 마치 토끼똥처럼 동글동글한 모양으로 꼴 사납게 뭉쳐지기도 하는 사고(?)가 벌어지기도 하였다.   


그후 여러 해가 지나자 비닐로 된 이른바 나일론 보자기가 나오기도 하였다. 그 보자기는 여간 여유가 있는 가정이 아니면 절대로 가지고 다닐 수 없는 보자기이기도 하였다. 그리고 얼마 뒤에는 책가방이란 것이 새롭게 나오게 되었다. 책가방은 지금의 등산용 가방처럼 양쪽 어깨에 멜 수 있도록 두 개의 끈이 달린 가방이었다.   


새로 책가방이 나오자 책가방이 학생들의 1호 보물이 되고 말았다. 그 뒤부터 보자기가 서서히 자취를 감추면서 책가방을 사달라고 조르는 아이들이 많았다.   

또한 6.25 전쟁 직후에는 책가방 대신 군용가방을 메고 다니는 학생들도 많았다. 그 가방은 군인들이 탄알이나 군용품을 넣고 다니던 국방색 가방이었다. 한쪽 어깨에 메고 다닐 수 있는 그 가방을 어디서 어떻게 구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책가방으로 메고 다니는 학생들이 많았다.    

  

그런 가방이나마 구하지 못한 아이들은 여전히 책보자기를 메고 다니며 몹시 부러워하기도 하였다.    

   

요즘은 비싸든 싸든 자신에게 필요한 가방 하나 구하지 못해 쩔쩔매는 학생이나 일반인들을 보기가 어렵게 되었다. 한쪽 손으로 들고 다니는 가방, 한쪽 어깨에 메고 다니는 가방, 양쪽 어깨에 메고 다니는 가방 등 마음만 먹으면 쉽게 자신에게 필요한 가장을 얼마든지 선택할 수가 있는 세상이 되고 만 것이다.    

  

하기는 핸드백 하나에 몇 천 만 원을 호가하는 명품 가방을 제외하고는 누구나 자신의 취향에 맞는 실용적인 가방을 얼마든지 선택할 수 있는 살기 좋은 세상이 되고 만 것이다. ( * )


매거진의 이전글 옛날의 화장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