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춤법 익히기]
호루라기

by 겨울나무


하루 종일 수많은 사람의 왕래가 파도처럼 물결치는 번화한 거리입니다.

그 거리를 첫눈에 보기에도 몹시 헙수룩한 차림의 젊은이 하나가 사랑들의 틈에 섞여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는 초췌해진 표정으로 매우 지친 듯 무거운 발걸음을 천천히 옮겨 놓고 있었습니다.

마치 돌멩이처럼 굳은 표정에 허름한 모자를 깊이 눌러 쓰고 있어서 그의 표정은 쉽게 알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샛별처럼 반짝이는 그의 두 눈동자는 누군가를 경계하듯 장시도 쉬지 않고 연신 바사방을 두리번거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습니다.


"호르룩~ 호르륵~"


어디선가 난데없이 호루라기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습니다.


호루라기 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란 젊은이는 금방 불안한 얼굴이 되었습니다.


젊은이는 곧 급히 사람들의 물결을 거칠게 헤쳐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는 어느 틈에 골목길을 향해 힘껏 뛰기 시작했습니다.


아주 빠른 동작으로 그야말로 눈 깜짝할 사이에 골목길 깊숙히 감쪽같이 사라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조금 뒤의 일이었습니다.


"호르륵~ 호르륵~"


조금 전에 젊은이가 걷던 그 거리를 아주 귀엽게 생긴 어린아이 하나가 호루라기를 불며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어린아이는 엄마의 손에 한쪽 손을 잡힌 채 신바람이 나서 계속 호루라기를 붙어 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젊은이는 어린아이가 불고 있는 호루라기 소리가 들리지 않을 때까지 온 힘을 다해 계속 도망치듯 뛰어가고 있었습니다.


젊은이는 이 세상에서 호루라기 소리를 가장 두려워하게 되었습니다.젊은이가 그렇게 된 것은 약 1년 전부터의 일이었습니다.

젊은이는 어쩌다 제복을 입은 경찰관이 눈에 띄기만 해도 기겁을 해서 화들짝 놀라 자신도 모르게 재빨리 피하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어쩌다 앰블런스의 사이렌 소리가 들려도 불안하고 두렵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한동안 이 골목 저 골목을 헐떡이며 숨이 턱에 차오를 정도로 도망을 치던 젊은이는 금세(*)라도 쓰러질 듯 휘청거렸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단 한 발자국도 걸음을 옮겨 놓을 수 없을 정도로 온몸의 힘이 쭉 빠지고 말았습니다.


“헉, 허억, 헉, 허어억…….”


이윽고 젊은이는 숨을 허떡이며 어느 조그만 공원 앞에 다다르게 되었습니다.


공원에서는 지금 한창 어린아이들 몇 명이 참새들처럼 재잘거리며 재미있게 놀고 있었습니다.


“옳지, 여기는 그나마 안심이 되겠군!”


젊은이는 이제는 더 이상 어쩔 수 없다는 듯 마침 빈 그네에 무거운 엉덩이를 내맡기듯 털썩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그리고는 그동안 쌓인 피곤이 한꺼번에 파도처럼 밀려오는 바람에 두 눈을 꼭 감았습니다.


그러자 두 번 다시 생각조차 하기 싫은 지난날의 기억들이 머리에 다시 떠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젊은이는 1년 전까지만 해도 하루하루 생선을 팔아가며 살아가던 장사꾼이었습니다.


작은 트럭에 생선을 가득 싣고 이 동네 저 동네를 돌아다니며 생선을 팔던 아주 성실하고 마음씨 착한 장사꾼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어느 날 밤에 하루의 장사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던 길에 그만 눈 깜짝할 사이에 뜻밖의 변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날 밤, 한적하면서도 비교적 좁은 시골길을 달리고 있었습니다.


그날따라 이상하게도 젊은이의 마음이 급했습니다.


한시라도 빨리 집으로 돌아가서 사랑하는 아내와 어린아들이 몹시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피곤하긴 했지만 콧노래까지 부르며 신나게 달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습니다.

저만치 앞 길가에서 웬 사람 하나가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걷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트럭이 가까이 가자 눈 깜짝할 사이에 비틀거리며 걷고 있던 젊은이가 달리고 있는 트럭을 향해 나동그라지고 만 것입니다.


"끼이이익~ “


기겁을 하며 놀란 젊은이는 온 힘을 다해 힘껏 브리이크를 밟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이미 차의 앞바퀴가 쓰러진 사람의 위를 넘어간 뒤의 일이었습니다.


젊은이는 어찌할 바를 몰라 온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운전석에 그대로 굳어진 채 좀처럼 움직일 줄을 몰랐습니다.


소중한 생명을 구해내려면 지금 1분 1초가 급한 상황이었습니다. 그걸 잘 알고 있는 젊은이이기에 쓰러진 사람을 태우고 급히 병원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생각에 그칠 뿐 좀처럼 몸이 움직여 주지 않았습니다.


한동안 어찌할 바를 모르고 트럭에 앉은 채 해들만 두 손으로 꼭 잡고 엎드린 채 부들부들 떨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순간, 몸을 부르르 떨었습니다. 만일 이대로 감옥에 들어간다면 수년 동안 가족들과 같이 단란하게 살아갈 수 없게 될 것이 뻔합니다. 바로 그게 젊은이의 마음을 불안하게 무겁게 짓눌렀습니다.


잠시 뒤, 겨우 정신을 가다듬은 젊은이는 무슨 결심이라도 한 듯 핸들을 굳게 잡고 차를 천

천히 몰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런데 스스로 아무리 생각해 봐도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습니다. 젊은이가 자신도 모르게 달려간 곳은 엉뚱하게도 병원이 아닌 집이었기 때문입니다.


오직 사랑하는 가족과 떨어지기가 싫다는 단 한 가지 단순한 생각에 차에 친 사람을 길바닥에 그대로 내버려 둔 채 그만 집으로 달려왔던 것입니다.

그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이었으며 일생일대의 큰 실수가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때부터 젊은이의 운명은 꼬이기 시작했습니다. 당장 가족들과 떨어져 있

기 싫다는 어리석은 욕심으로 인해 오리려 가족과 더 멀어질 수밖에 없게 된 것입니다.

순간의 잘못된 판단으로 그야말로 더 큰 죄인이 되고 만 것입니다.


그날부터 젊은이는 ‘뺑소니’란 딱지가 붙은 채 오늘날까지 늘 경찰에게 쫓기는 몸으로 살아온 것입니다.


젊은이가 쫓기는 생활을 시작한 지도 어느새 1년이란 긴 시간이 흘렀습니다. 오랜 기간을 지금까지 잡히지 않고 버텨 오기는 했지만 그동안 단 하루도 마음 편히 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늘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달래야만 했습니다. 그러다가 더 이상 견디기가 어려울 때는 어썰 수 없이 마트에 들어가 도둑질로 허기를 달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젊은이의 죄는 날이 갈수록 더욱더 크게 불어만 가고 있었습니다.


젊은이는 이제 더이상 버틸 힘도 없었고, 그럴마난 자신도 없어습니다.

그동안 자신이 저지른 죄에 대해 수시로 반성도 많이 했습니다. 후회를 한 것도 한두 번이 아닙니다. 그래 봤자 이제 와서는 그 모두가 부질없는 일이 되고 말았습니다.


”얘들아, 이리 좀 와 봐. 어른이 그네를 타고 있어, 호호호…….”


한동안 깊은 생각에 잠겨 있던 젊은이는 웬 여자아이의 목소리에 눈을 번쩍 떴습니다. 그 바람에 아이들이 금방 우르르 몰려들었습니다. 그리고 아무리 봐도 이상하다는 듯 이번에는 다른 아이가 물었습니다.


"아저씨, 뭐하는 분인데 회사에 안 가고 여기서 그네를 타고 있어요?"


아이의 물음에 젊은이는 난처한 듯 선뜻 대답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다른 아이가 눈살을 찌푸리며 소리쳤습니다.


"이 아저씨 아마 거지인가 봐. 우리 다른 데로 가서 놀자,"


아이들은 좀 겁이 났는지 경계하는 눈빛이 되더니 다른 곳을 향해 우르르 올려가고 있었습니다.

젊은이는 기가 막히다 못해 그만 말문이 막히고 말았습니다. 어린아이의 입어서 나온 한 마디의 말이 이처럼 가슴속을 도려낼 것 같은 아픔을 주게 될 줄은 전혀 짐작조차 못했던 일이었습니다.


젊은이는 어렸을 때부터 그 누구 못지않게 꿈이 많았습니다. 크게 성공하여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회망과 꿈이 산산조각이 나고 만 것입니다.

어린아이들에게까지 손가락질을 받는 부끄러운 신세가 되고 만 것입니다.


‘아아, 언제까지 이런 꼴로 살아가야 한단 말인가?’


젊은이는 순간 눈 앞이 캄캄했습니다. 자신의 신세가 한심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호르룩~ 호르룩~ “


그때 어디선가 또다시 호루라기를 불어대는 요란한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습니다.


이번에도 자신도 모르게 습관처럼 화들짝 놀란 젊은이는 그네에서 벌떡 일어났습니다.

그러고는 또다시 방향도 없이 무작정 죽을 기를 쓰고 도망을 치기 시작했습니다.( * )


------ * ------------


<우리말 익히기>


♣ ‘금방’과 ‘금세‘


※ 금방; 말하고 있는 때보다 바로 조금 전에

예) 손님이 찾는 그 분, 금방 나가시던데요.

예) 금방 올 테니 가지 잃고 기다리세요.


※ 금세 ; 얼마 되지 않은 짧은 시간에

예) 그 많은 과일을 나는 금세 먹어 치웠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맞춤법 익히기] 할머니와 상수리 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