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는 어쩌다 남풍이 불어오는 날이면 그때마다 어김없이 연을 날리곤 하였습니다.
할아버지가 날리는 연은 태극무늬가 곱게 그려진 큼직한 방패연이었습니다.
하나만 날리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어떤 때는 대여섯 개, 또 열 개도 넘는 연을 들고 뒷동산에 올라 하늘 높이 날리곤 하였습니다.
젊은 나이도 아니었습니다. 머리는 온통 백발로 뒤덮인 팔십이 훌쩍 넘은 나이인데도 그렇게 열심히 연을 날리곤 하였습니다.
그날도 마침 이른 아침부터 할아버지가 그토록 기다리고 기다리던 남풍이 불어오고 있었습니다. 나뭇가지가 흔들리며 춤을 출 정도로 제법 강한 남풍이 불고 있었습니다.
할아버지의 표정이 금세 어린아이처럼 환하게 해맑아졌습니다. 신바람이 난 할아버지의 입어서는 어느새 조금 서툴긴 하지만 콧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습니다.
할아버지는 곧 벽에 걸려 있는 연을 서둘러 챙기기 시작하였습니다. 벽에는 그동안 정성 들여 만든 방패연이 방 안 가득 수십 개나 걸려 있습니다.
할아버지가 요즈음 며칠째 쉬지 않고 정성껏 만든 연들이었습니다. 방바닥 여기저기에는 창호지와 댓가지 등 연을 만들 때 쓰는 재료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습니다.
첫눈에 봐도 할아버지가 연을 얼마나 열심히 만들고 있었다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그건 정말 맞는 말이었습니다.
할아버지는 아주 오래전부터 시간 나는 대로 연을 만드는 일이 유일한 취미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연을 만들 때마다 질긴 창호지를 적당히 자른 다음, 그 창호지 위에는 늘 판에 박은 듯한 똑같은 내용의 글씨를 정성껏 쓰곤 하였습니다.
할아버지는 몹시 외로운 분이었습니다.
해마다 6·25 전쟁이 일어났던 6월이 오면 그 외로움과 그리움은 더욱 뼛속까지 깊이 파고들었습니다.
고향이 북한인 할아버지는 결혼을 한 지 불과 몇 달 만에, 신혼의 단꿈이 한창 무르익어 가고 있을 때쯤 날벼락 같은 전쟁이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그때, 수많은 사람이 그랬듯, 할아버지 역시 불행하게도 하루아침에 정든 가족들과 뿔뿔이 헤어지고 말았습니다.
그 후 홀로 남쪽으로 내려온 할아버지는 그때부터 지금까지 무려 60여 년이란 기나간 세월을 홀로 외롭게 살아왔습니다.
할아버지는 늘 북에 두고 온 부모 형제가 뼈에 사무치도록 그립고 보고 싶었습니다. 그토록 부모 형제가 그립기도 했지만, 그보다 더 그립고 보고 싶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바로 북에 홀로 남겨 놓고 온 아내였습니다.
남편으로서( * ) 아내를 제대로 지켜 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늘 할아버지의 마음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었습니다.
할아버지는 자나 깨나 아내가 그립고 보고 싶어서 그야말로 피가 마를 지경이었습니다.
그런 나날을 보내던 어느 날 할아버지는 문득 한 가지 좋은 생각이 머리에 떠올랐습니다.
그때부터 아내에게 소식을 꼭 전해 주고 싶은 간절한 마음에 연을 만들어 날리기로 한 것입니다.
혹시 운이 좋으면 북에 두고 온 아내가 그 연을 볼 수도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하게 된 것입니다. 그게 바로 지금까지 할아버지가 연을 만들게 된 계기가 된 것입니다.
할아버지는 그다음 날부터 밤낮을 가리지 않고 열심히 연을 만들기 시작하였습니다.
할아버지가 만드는 연은 대부분 큼직한 방패연이었습니다.
그리고 남풍이 불어오는 날이면 어김없이 뒷동산으로 올라가 연을 날리며 수많은 세월을 보내고 있습니다.
연이 하늘 높이 까마득하게 날아올라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가 되면 그때마다 할아버지는 연실을 뚝 끊어버리곤 하였습니다.
연이 북쪽으로 멀리 날아가서 가족들 또는 아내의 눈에 띄기를 바라는 간절한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그렇게 연을 날려버린 할아버지는 다시 또 다음 연을 날리는 일을 수도 없이 되풀이하곤 하였습니다.
할아버지가 그렇게 수년 동안 북쪽을 향해 날려 버린 연은 아마 수백 개는 족히 넘고도 남았습니다.
그러나 그토록 애타게 그립고 보고 싶은 가족과 아내의 소식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들어볼 수가 없었습니다.
할아버지의 마음은 해가 갈수록 점점 더 불안하고 조급해졌습니다. 얼마 전부터는 자신의 건강이 전과 달리 하루가 다르게 쇠잔해지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렇게 한두 해를 더 보내다가는 그리운 가족들의 소식을 들어보기도 전에 숨을 거두고 말 것만 같다는 생각에 마음은 더욱 조급해지고 있었습니다.
할아버지의 입에서는 자신도 모르게 또다시 습관처럼 원망스러운 목소리가 흘어나왔습니다.
해마다 이산가족들을 하루속히 만나게 해 보자고 그토록 매달리고 있지만, 북한 놈들은 그때마다 무슨 꿍꿍이 속인지는 몰라도 이런저런 핑계로 미루곤 하기 때문이었습니다.
할아버지는 곧 벽에 걸려 있는 여러 개의 연들 중에서 일곱 개를 골라 방바닥에 내려놓았습니다. 방바닥에 내려놓은 연들은 하나같이 할아버지가 어젯밤에 밤을 꼬박 새워 가며 만든 연들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연들은 할아버지가 손수 또박또박 쓴 글씨들이 적혀 있었습니다.
할아버지는 몹시 아쉽다는 표정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그러고는 곧 연과 얼레 그리고 꽤나 여러 뭉치나 되는 실타래까지 챙겨 들고는 서둘러 문밖을 나섰습니다.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뒷동산은 그리 높지는 않았지만, 건장한 젊은이들도 쉽게 오르기가 어려울 정도로 가파른 산이었습니다.
산을 오르고 있는 할아버지는 오늘따라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듯 가쁜 숨을 몰아쉽니다. 연신 거친 기침 소리도 심하게 나옵니다.
할아버지는 할 수 없이 땅바닥에 잠깐 주저앉았다가 조급한 마음에 다시 일어나기를 몇 번이고 되풀이하면서 기를 쓰고 산을 오르고 있습니다. 연을 조금이라도 더 빨리, 더 많이 날려 보고 싶은 마음에 있는 힘을 다해 무리를 하면서 열심히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불과 몇 시간 뒤의 일이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문을 듣고 술렁거리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마을 사람 모두가 안타깝고 서운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혀를 찼습니다.
오늘따라 무심한 남풍은 점점 더 강하게 잘 불어오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할아버지가 날리는 연은 더이상 하늘에 나타나지도 않았고 볼 수도 없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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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서‘와 ’~로써‘
※ ’~로서 ; ‘자격이나 지위 신분을 가지고’의 뜻으로 쓰인다
예) 남편으로서, 사나이로서 부모로서 등.
※ ~로써 ; 어떤 도구나 수단을 나태낼 때 쓰인다.
예) 용기로써 맞서 싸웠다. 꿩 대신 닭으로써, 말로써 천 냥 빚을 갚는다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