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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나무 Jul 20. 2022

옛날의 농사 짓기

[기계가 아닌 순전히 인력과 소의 피와 땀의 현장]

✱ 논갈이와 밭갈이      


요즈음에는 농기계의 발달로 논이나 밭을 갈 때 이앙기나 콤바인, 그리고 경운기 등을 이용하여 짧은 시간에 많은 면적의 논이나 밭을 갈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추수를 할 때에도 콤바인 하나만 있으면 벼도 베고 볏짚도 삽시간에 논에서 쉽게 묶어놓는 편안한 세상이 되었다.    

  

이처럼 농기계의 발달로 옛날처럼 많은 인력과 노력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기계 하나만 있으면 혼자서 얼마든지 그 넓은 면적의 논이나 밭을 쉽게 갈 수 있으며 수확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농기계가 발달하지 못한 옛날에는 논이나 밭을 갈 때, 그리고 모를 내거나 추수를 할 때는 많은 인력과 동물 즉 소의 힘이 절대적으로 필요하였다.  


❉ 옛날에 태어난 불쌍한 소     

 

옛날에는 소가 없으면 전혀 논이나 밭을 갈 수가 없었다. 그만큼 농사를 지을 때 소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였기 때문에 소가 없는 집에서는 농사를 짓기가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그러기에 소가 없는 집에서는 이웃집의 소가 어쩌다 소가 잠깐 짬이 나서 쉴 때 빌려서 부리곤 하였다. 잠깐 짧은 시간에 소를 빌려 쓸 때는 인심 좋게 그냥 부리기도 하였지만, 하루종일 소를 빌릴 때는 그에 따른 얼마간의 품삯을 지불하기도 하였다.      


소는 마을에 논과 밭이 많으면 그만큼 기운이 딸리고 지칠 수 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말을 못하는 짐승이니 주인한테 너무 힘이 든다고 잠깐 쉴 수 없느냐고 사정 이야기를 전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러기에 아무리 힘이 들어도 그저 주인이 시키는 대로 매를 맞아가면서 묵묵히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 걸 보면 소는 주인을 잘 만나야 한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게 한다.  주인을 잘못 만나면 소가 만일 힘이 다 빠져 기진맥진할 때에도 인정사정없이 채찍으로 매까지 때려가며 부려먹기가 일쑤이기 때문이다.   

   

소는 자신의 힘이 딸려 숨을 헉헉거리며 입에 게거품까지 흘려가면서 그저 묵묵히 죽을 힘을 다해 일을 해야 한다. 그리고 체력이 소진하여 그 자리에서 쓰러질 때까지 쟁기와 써레를 끌어야 하고 짐을 운반해야 한다. 그런 소의 모습을 바라볼 때마다 소가 그렇게 불쌍하고 가여워 보일 수가 없다. 그러기에 소로 태어나지 않은 것만 해도 얼마나 다행인지 모를 일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소는 추수를 할 때 역시 무거운 볏단을 길마 위에 산더미처럼 얹어 싣고 운반하기도 하고 달구지를 이용하여 운반하기도 한다. 그 무더운 여름에는 보릿단을 싣고 운반하기도 한다. 이른 봄부터 가을의 추수가 끝날 때까지 그야말로 주인이 시키는 대로 묵묵히 죽도록 일만 하며 움직일 수밖에 없는 주인의 철저한 노예 신세인 것이다.     

   

논밭을 갈 일이 있을 때는 으레 한 손으로 소의 코뚜레에 연결된 고삐를 쥔 다음 지게에 쟁기를 올려놓고 밭이나 논으로 가게 된다. 그리고 주인의 지시에 따라 쟁기를 힘껏 끌어야 한다.     

 

쟁기를 끌 때 소는 목에 걸어놓은 멍에에 온통 힘을 주면서 끌어야 한다. 다시 말해서 소는 목의 힘에 의해 쟁기를 끌며 땅을 갈아엎게 되는 것이다.      


그러기에 옛날에 힘깨나 쓰는 머슴을 보면 멍에 자리가 좋다고 표현하기도 하였다. 그나마 인정이 많은 주인을 만나면 다행이다. 한동안 논을 갈다가 잠깐 쉬는 시간이면 소의 목덜미를 쓰다듬으며 안마를 해주는 주인도 있기 때문이다.     

  

너무 메말라서 돌덩이처럼 딱딱하게 굳어진 밭이나 논을 갈 때 소는 더욱 힘이 들게 마련이다. 그래서 가끔은 굳은 땅을 억지로 갈아엎다가 쟁기 끝에 박혀 있는 보습(땅을 갈기 위해 쟁기 밑에 박힌 삽 모양의 쇠붙이)이 부러져나가기도 한다. 그렇게 되면 얼른 부러진 보습을 뽑아버리고 대장간에서 사온 새 보습으로 교체해야 한다.     


논을 다 갈아엎었다고 일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그다음에는 논을 평평하게 고르기 위해 써레질을 해야 한다. 그래야 모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써레질을 할 때에도 물론 써레를 소가 끌어야 한다. 그런데 비가 오지 않아 땅이 딱딱하게 굳어진 논은 절대로 써레질이 불가능하다. 그러기에 반드시 논에 물을 댄 다음에 써레질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옛날에는 지금처럼 관개시설이 되어있지 않아 물을 마음대로 댈 수도 없다. 그러기에 그때마다 비가 오기만을 기다리곤 하였으며 비가 오래도록 오지 않을 때는 비가 어서 오기를 애타게 기대하는 마음에서   마을 단위로 기우제를 엄숙하게 지내기도 하였다.    

 

기우제를 지냈음에도 비가 내리지 않을 때는 웅덩이를 이용하여 물을 퍼서 논에 대기도 하였다. 그러기에 옛날에는 웬만한 논배미마다 한쪽 구석에 샘이 잘 나오는 웅덩이를 하나씩 파놓고 이에 대비하곤 하였다.    

 

물을 풀 때는 용두레를 이용하였다. 그러나 용두레가 있는 집이 드물었다. 용두레가 없는 집에서는 새우젓통 같은 깡통에 네 개의 길다란 밧줄을 매달고 두 사람이 그 밧줄을 잡고 웅덩이 밑에 고여있는 물을 퍼서 논으로 흘려보내는 작업이 하루고 이틀이고 비가 올 때까지 계속 반복되곤 하였다.   

   

또 어떤 집에서는 웅덩이에 펌프를 박아놓고 이른 아침부터 밤늦게 별이 보일 때까지 계속 쉬지 않고 펌프질을 하며 물을 푸기도 하였다. 땡볕에 그대로 서서 물을 푸다 보니 팔이 너무 아팠다. 온몸이 햇볕에 그을려 피부가 벗겨지기도 하였다. 그나마 식구가 많은 집은 식구들이 교대로 번갈아 가며 물을 푸기도 하였다. 그렇지 않으면 논이 금방 말라버리기 때문이었다.  

물을 계속 푸지 않으면 논이 금방 바짝 말라버리는 것은 삽시간이었다. 반드시 논에 물이 있어야만 써레질도 할 수 있고, 모를 낸 논의 모도 빨갛게 타버리지 않기 때문에 그것을 막기 위해서는 물을 푸는 일을 잠시도 쉴 수가 없었다.      


그렇게 애를 태우며 물을 푸면서 누구나 어서 하루속히 비가 내리기만을 학수고대하며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어쩌다 비가 내리게 되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비가 내리게 되면 잔뜩 찌푸렸던 농부들 모두의 표정이 마치 해방이라도 된 듯 활짝 밝아지며 너무 좋아서 환호성을 지르기도 하였다.     


"이럇! 어디엿!"


어쩌다 문학작품을 읽다 보면 누군가는 농촌에서 소를 모는 풍경을 정겹다고 표현하기도 하였다.  그거 멀리에서 바라보기만 할 때는 어쩌면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엉덩이가 피가 날 정도로 매를 맞아가면서 죽지 못해 쟁기를 끄는 모습, 그리고 매를 맞는 소리와 모습이 그토록 정겹단 말인가. 어림도 없는 생각이다.   


가만히 돌이켜 생각해 보면 생각해 볼수록 참으로 농사짓기에 너무나 힘든 시절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기에 지금 태어난 소들은 그나마 행복한 편이 아닐 수 없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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