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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나무 Jul 22. 2022

소(牛)의 운명(運命)

[인간을 위해 모든 것을 다 바치며 희생하는 동물]

겨릿소 두 마리가 논에서 열심히 써레질을 하고 있다. 마침 그 옆을 지나가고 있던 마을 사람이 소를 몰고 있는 농부를 향해 큰소리로 물었다.      


“여보게! 황소와 검정소 중에 어느 소가 일을 더 잘하나?”    

 

여기서 겨릿소란 쟁기질을 할 때나 써레질을 할 때 두 마리가 보조를 맞추어 일을 잘 할 수 있도록 훈련된 소를 말한다. 그리고 두 마리가 같이 끌 수 있도록 만든 쟁기나 써레를 겨리라고 부른다.   

   

이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황소‘의 뜻을 털색깔이 누런 소를 황소로 오인하기 쉽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황소‘란 원래 ’한소‘ 즉, 큰 ’수소‘란 의미가 ’황소‘로 바뀌어 불러지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털 색깔이 하얀 수소이면 하얀 황소, 털 색깔이 검정 수소이면 검정 황소라고 부르는 것이 맞는 표현인 것이다. 다시 말해서 색깔이 누렇든 하얗든 그것이 암소라면 황소라는 말을 쓸 수 없으며 오직 수소에게만 ’황소‘라고 부르는 것이 맞는 표현인 것이다.   

   

갈퀴 집      


어린 시절 나는 나와 가장 친한 친구네 집에 자주 놀러 가곤 하였다. 그 친구 역시 틈이 나는 대로 우리 집에도 자주 놀러 오곤 하였다.      


그 친구는 6.25 전쟁으로 인해 우리 마을로 피란을 온 가족인데  친구는 4남매 중 셋째였다. 그런데 마을 사람들은 그 집을 가리켜 아들이나 딸의 이름을 부르지 않고 누구나 갈퀴집이라는 이름으로 통했다.  

     

그 집 식구들 모두가 틈이 나는 대로 좁은 방 안에 둘러 앉아 대나무로 갈퀴를 만들어 생계를 이어나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갈퀴가 많이 쓰이던 그 시절이어서 갈퀴는 만들기가 무섭게 불티가 나게 잘 팔려나가곤 하였다.      


친구의 아버지는 손재주와 기술이 아주 뛰어난 분이었다. 갈퀴를 만드는 일 외에 틈틈이 시계를 고치는 일도 병행하고 있었다.   

   

우리 집에는 그때만 해도 벽시계 하나 없었지만, 그 집에 가면 벽마다 수많은 벽시계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고장이 나서 멈추어 있는 시계도 있었지만 제대로 잘 가는 시계들도 많았다.     

 

어떤 시계는 태엽을 감으면 시계 속에서 귀여운 멜로디로 음악이 흘러나오기도 하였다. 하도 신기해서 시계 속을 자세히 살펴보게 되었다. 시계 속에서 작은 원기둥 같은 쇠붙이가 돌아가면서 원기둥에 돋힌 바늘들이 마치 하모니카의 살 같은 것을 하나씩 건드리는 대로 음악이 울려퍼지는 신기한 시계였다.      


잭각! 잭각!‘     


친구에 집에 갈 때마다 여기저기에서 시계가 가는 소리가 참으로 인상적이었으며 한편으로는 몹시 부럽기도 하였다.    

친구의 아버지는 시계를 고칠 때마다 돋보기를 쓰고 일을 하였다. 그리고 시계를  수리하는 일 외에 골패를 만드는 기술도 있었다. 시간이 나는 대로 골패도 만들어서 팔곤 했던 것이다.      


골패란 옛날 어른들의 노름기구의 하나였다. 직사각형으로 일정한 크기로 작게 자른 32개의 대나무 한쪽 면에는 잘 다듬어진 하얀 조각을 접착제로 정성껏 붙이곤 하였다. 그리고 그 하얀 조각 위에 한 개 또는 여러 개의 홈을 파서 홈에 검정 색깔을 칠하곤 하였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하얀 조각은 모두 쇠뼈를 잘라 붙이는 것이라고 하였다.    

 

여기서 느닷없이 골패 이야기를 하게 된 이유는 서두에서 말한 암소나 황소의 이야기를 더 자세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인간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는 동물     


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일생을 살아가는 동물은 어떤 것이 있을까!     


나는 서슴없이 소(牛)라고 대답하고 싶다. 다른 동물들 역시 소와 비슷한 경우도 많겠지만 특히 소는 그 어느 동물들보다 자신의 일생과 온몸을 모두 오직 인간만을 위해 희생하는 가엾은 동물이 아닌가 생각한다.   

   

송아지는 어미 배에서 나오자마자 바로 일어서서 걸을 수 있는 힘이 대단한 동물이다. 더구나 수놈으로 태어나서 성장하여 황소가 되면 그 힘은 그 누구도 당하지 못할 정도로 대단한 것이다. 오죽하면 힘이 대단히 센 사람을 보고 황소 같다고 표현했을까.    

  

그러나 그토록 힘이 막강하게 센 황소도 길만 잘 들이게 되면 평생 인간에게 복종하며 우직하게 따르며 모든 힘과 노력, 그리고 자신의 몸까지도 모두 인간에게 바치며 희생을 당하게 되는 것이다.       


내가 소를 연민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특별히 다른 동물들보다 불쌍하고 가엾게 느껴지게 된 것은 대강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이다.


코뚜레     


송아지가 어미 배에서 나와 어느 정도 자라게 되면 고삐가 없이 제멋대로 돌아다니게 된다. 천방지축인 것이다. 오죽하면 고삐 풀린 송아지란 말이 생겨났겠는가.     

 

송아지가 어느 정도 자라서 제멋대로 힘을 쓰게 되면 마음대로 다스릴 수가 없게 된다. 그렇게 되면 송아지를 강제로 매달고 코뚜레를 뚫게 된다. 미리 준비한 꼬부라진 막대기로 뚫고 송아지의 콧속에 코뚜레를 찔러 꿴 다음 고삐를 매달게 된다.   

코뚜레를 생으로 코를 뚫을 때는 심한 고통을 견디다 못해 송아지가 몸부림을 치며 ’음메에~~ 음메에~~‘ 하고 가련한 목소리로 울어대게 된다. 생으로 찌른 콧구멍과 콧뚜레에서는 빨간 피가 줄줄 흘러내리기도 한다.

     

콧뚜레를 꿴 다음에는 머리에 고정을 시켜 놓고 길고 질긴 밧줄로 코뚜레에 연결시켜 놓는다. 그때부터 고삐를 잡아당기기만 하면 코가 찢어져 나갈 것 같은 고통을 이기지 못한 나머지 고삐를 잡아당기는 대로 질질 끌려다닐 수밖에 없는 불쌍한 신세가 되고 마는 것이다.     

 

코뚜레는 어미소가 되거나 완전히 크게 자란 황소가 된 뒤에도 그대로 평생을 매달고 지내게 된다. 그리고 어렸을 때부터 습관이 되어 만일 어린아이가 코뚜레를 잡아당긴다 해도 순순히 복종하고 순종할 수밖에 없는 불쌍한 신세가 되는 것이다.     


어미와 새끼의 생이별   

   

옛날에는 암소보다는 대부분 황소를 선호하였던 것 같다. 암소보다는 황소가 훨씬 힘이 세기 때문에 농사철에 논과 밭갈이, 그리고 모든 짐의 운반 등, 부려먹기가 좋기 때문이다.    

  

그러나 암소 역시 황소 못지않게 선호하기도 하였다. 암소도 농사 일을 돕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새끼를 자주 낳은 다음 팔아먹기 위해서였다. 그러기에 옛날에는 암소 한 마리를 잘 길러서 자주 송아지를 낳게 하여 자식 대학 학비를 마련하는 데에 큰 일조를 하기도 하였다.    

  

암소가 일단 송아지를 낳게 되면 송아지는 어미 소가 논이나 밭으로 일을 하러 나갈 때마다 어김없이 어미 소의 꽁무니를 졸졸 따라 다닌다. 그리고 일을 하다가 잠깐 서있는 어미 소의 젖을 열심히 빨아먹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어미 소는 송아지의 온몸을 혀로 핥아주곤 한다. 그만큼 어미 소는 그 어느 동물 못지 않게 강한 모성애를 발휘하여 자식을 알뜰하게 자식을 보실피는 동물이다.   

어미 소는 지극정성으로 어린 송아지를 보살피고 또한 송아지는 어미 소만을 그만큼 좋아하며 졸졸 따라다니곤 한다.        


그러다가 어느 날 갑자기 읍내 장에 송아지를 내다 팔기라도 하면 그때부터 집안은 어미소의 구슬픈 울음 소리로 시끄러워지게 된다.     


움메에~~ 움메에~~ ”     


어미소는 어디로 간 줄로 모르는 새끼가 그리워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잠도 자지 않고 크게 소리내어 울게 된다. 그럴 때마다 순진하게 생긴 눈동자에서는 눈물도 하염없이 흘린다. 암소의 울음소리가 왜 그렇게 가슴이 미어지면서 구슬프게 느껴지던지!     


일을 할 때는 물론이고 집에 와서 잠을 잘 때에도 잠을 자지 않고 슬픈 목소리로 울어댄다. 식욕을 잃고 여물도 잘 먹지 않는다. 귀엽게 낳은 자식을 어느 날 갑자기 생이별을 당하게 되었으니 안 그럴 리가 있겠는가. 참으로 인간으로서는 차마 용서받지 못할 죄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인정이 없는 주인은 그런 암소를 달래주기는커녕 왜 이렇게 시끄럽게 울어대느냐며, 그리고 잠을 잘 수 없다며 막대기로 사정없이 두드려 패기도 한다. 차마 두 눈 뜨고 볼 수 없는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어미 소는 그다음 날도 또 그다음 날도 음메 음메 하고 슬프게 울부짖으며 논과 밭갈이, 그리고 무거운 짐을 달구지나 길마로 계속 힘겹게 날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여전히 모진 매를 맞아가면서 평생을…….     


발바닥에 징박기     


쉬지 않고 소를 너무 많이 부리다 보면 발바닥의 발톱까지 다 닳아버리게 된다. 얼마나 몹시 부렸드면 그렇게 될 수가 있단 말인가. 그렇게 되면 소를 더 부려먹기 위해 소의 발바닥에 징을 박게 된다.


소 발바닥의 징을 박기 위해서는 대장간에서 쇠붙이로 소 발톱 모양으로 만든 징을 사 와야 된다. 그리고 소의 발바닥이 위로 보일 때까지 소의 다리를 구부려 끈으로 단단히 고정해 놓은 다음 소의 발바닥에 징을 대고 쇠망치로 때려 박게 된다.   

   

이때 소는 발바닥에 못이 생으로 박히는 고통을 이겨내야만 한다. 그때마다 소는 고통을 견디다 못해 불쌍하게 울게 된다. 하지만 인간은 인정사정없이 징을 그저 잘 박기만 하면 그만인 것이다. 그럴 때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모질고 잔인하며 독한 것이 인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토사구팽     


요즈음 정치권에서는 자주 토사구팽이란 말이 회자되곤 한다. 그러나 소에 비하면 그런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다. 실제로 옛날에 태어난 소들이 그야말로 철저하게 토사구팽을 당하는 것이 소의 운명이 아닌가 생각한다.      

실제로 소는 자신의 이익을 바라는 것은 티끌만큼도 없다. 그리고 오직 태어나면서부터 죽을 때까지 주인에게 복종하며 노예처럼 일만 하면서, 그리고 새끼를 낳아주면서 평생을 보내게 된다. 소는 원래 초식동물이어서 아무리 맛있는 고기(육류)를 입에 넣어주어도 도로 뱉는다. 그리고 오직 풀(꼴)과 콩깍지 같은 여물만 먹으며 평생을 지낸다.     

 

평생 주인에게 끌려다니며 죽도록 일만 하는 소는 겨울철이면 농사일이 적어서 그나마 잠깐 살 만하다. 그리고 이른 봄이 되기가 무섭게 늦가을 추수가 끝날 때까지 오직 일만 하면서 세월을 보내야 한다.      


그러나 소 역시 나이를 먹게 되면 차츰 기운이 약해지면 쓸모가 없어서 결국 버림을 받게 된다. 힘을 쓰는 것도 예전만 못하고 새끼도 낳지 못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주인은 더 이상 소를 키울 필요가 없게 된다. 그리고 평생 중인을 위해 온몸을 바쳐 희생만 하던 소를 아무 미련도 없이 가차없이 읍내 장에 내다 팔아버리게 된다. 철저히 토사구팽을 당하는 것이다.      


소가 늙어서 팔리게 되면 그다음에는 뻔하다. 불쌍하게도 도살장으로 가는 신세가 되는 것이다.  

    

소가 도살장 앞에 다다르게 되면 소가 어떻게 해서라도 도살장 안으로 들어가지 않으려고 버틴다고 하는 옛말이 있다. 그리고 도살장 앞에 다다르면 실제로 자신의 죽음을 눈치채서 그런지 눈물을 흘리는 것을 실제로 보기도 하였다.       


요즈음에는 도축하는 과정이 많이 달라졌겠지만, 옛날에 실제로 내가 목격한 도축 방법은 대강 다음과 같았다.      


일단 소를 강제로 도살장 안으로 끌어들인다. 그리고 단 세 명의 도살꾼들이 소 옆에 다가선다.   

그다음에는 한 사람은 소의 코뚜레를 두 손으로 꼭 붙잡고 또 한 사람은 뒤에서 소의 꼬리를 역시 두 손으로 꼭 잡는다. 그리고 또 한 사람은 뾰족하고 날카롭게 생긴 오함마를 소의 정수리에 대고 정조준한다.   

   

그렇게 몇 번 정조준하던 오함마를 번쩍 들어 소의 정수리를 향해 힘껏 가격한다.  이마에 한번 가격을 받은 소는 ’음메에~~‘ 하는 비명소리를 내며 눈을 질끈 감는다. 삽시간에 정신을 잃은 것이다.


그다음에는 다시 한번 오함마로 힘껏 가격한다. 그렇게 되면 소는 다시 비명을 지르며 균형을 잃고 그 자리에 쓰러지게 된다. 그때 재빨리 소가 쓰러지기 전에 코뚜레를 잡은 사람과 꼬리를 잡은 사람이 동시에 한쪽으로 힘을 모아 돌린다.      


그렇게 되면 소가 완전히 네 다리를 공중으로 뻗친 채 벌런 자빠지며 눕게 된다. 그런 다음에는 바로 준비해 주었던 잘 드는 칼을 들고 능숙한 솜씨로 생으로 가죽을 벋기기 시작한다.      


잘 숙련된 그들의 칼솜씨는 매우 능숙하면서도 빨랐다. 가죽을 다 벗긴 다음에는 소를 각 부위별로 각을 떠서 도장을 찍은 다음 천정에 매달린 쇠갈고리에 매달게 된다. 쇠갈고리에 매달린 소의 고기들은 아직도 살아있어서 부르르 떨고 있다.   

   

그렇게 해서 살아있는 하나의 가련한 생명이 생을 마감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소를 오함마로 때려 눕히고 각을 모두 뜨기까지 불과 30분이 채 걸리지 않는다. 참으로 놀랍고도 대단한 솜씨가 아닐 수 없다.     

   

인간에게 모든 것을 다 바치는 거룩한 희생      


예로부터 소는 단 한가지도 버릴 곳이 없다는 말이 있다. 틀린 말이 아니다.    

  

소는 평생을 부려먹고도 죽은 다음에는 고기로 쓰인다. 고기 중에서도 단연 소고기는 으뜸에 속하는 최고급 육류인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다리 뼈는 족으로 꼬리는 꼬리대로 갈비는 갈비대로 인기가 있어서 비싸게 팔린다. 내장도 마찬가지이다. 간은 간대로 허파는 허파대로 내장은 내장대로 인간에게 큰 인기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뼈 역시 하나도 버릴 것이 없다. 다리며 꼬리며 등뼈, 갈비 뼈가 다 그렇지만, 그 외의 뼈는 잡뼈라는 이름으로 곰탕을 끓일 때 같이 쓰이기도 한다.       


그리고 앞에서 말한 골패를 만들 때에도 요긴하게 쓰이며 하나도 버릴 것이 없는 것이 바로 소의 뼈인 것이다.        

어쨌거나 소의 일생을 생각해 보면 생각할수록 이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마음이 몹시 아픈 것이 사실이다. 이쯤에서 그만해야 하겠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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