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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나무 Jul 27. 2022

모내기와 논김 매기(1)

[농기계가 없이 모두 소와 사람의 노력으로 해결함]

요즈음은 농기계의 발달로 인하여 농사짓기가 너무나 편리하고 쉬워졌다. 옛날처럼 많은 일꾼도, 그리고 일을 잘하는 소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이앙기와 콤바인, 그리고 트랙터 같은 농기계만 있으면 아무리 넓은 논이나 밭이라 해도 눈 깜짝할 사이에 한 사람이 모두 갈아엎기도 하고 써레질도 하며 모도 낼 수 있는 세상이 된 것이다.
그러기에 요즈음에는 소와 사람의 힘으로 농사를 짓던 옛날의 모습을 전혀 볼 수 없게 되었다.     
 

❉ 논에 물 대기      


모를 내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마른 논을 갈아엎어 놓아야 한다. 그 다음에는 써레질을 해야 한다. 그리고 모를 내기 전에 갈아 엎어놓은 논에  물을 가득 채워 놓아야 한다. 그래야 써레질을 쉽게 할 수 있으며 모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만일 논에 물을 댈 수가 없다면 모를 내지 못한 채 그대로 논을 한 해 동안 묵히게 되는 일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러나 옛날에는 마을마다 대부분 관개시설이 제대로 되어있지 않아서 모를 낼 때마다 대부분 봇도랑(농수로)에서 흘러 내려오는 물을 끌어서 논으로 대곤 하였다. 그런데 봇도랑에 물이라도 충분하면 다행이겠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물을 대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당장 바짝 마른 논에 물을 충분히 대놓아야 써레질도 할 수 있고 모를 낼 수 있는데 그렇지 못하다면 농부의 속이 타들어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만일 모를 낼 시기에 물을 댈 수 없게 되면 별 도리없이 그대로 그해 농사를 짓지 못하고 논을 묵히게 되는 큰일이 벌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마침 금싸라기 같은 비가 내린다면 그나마 농부들의 한가지 시름은 덜어지게 된다. 그러나 모를 낼 시기에 맞추어 비가 오지 않는다면 천수답(천둥지기)은 모를 내지 못하고 그대로 한해를 묵힐 수밖에 없다. 천수답이란 비가 와야만 모를 낼 수 있는 논을 말한다. 그리고 비가 오든 말든 언제든지 논에 물이 충분히 채워있어서 모를 낼 수 있는 마을 앞의 기름진 논을 고래실(고래 논)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우리 마을에서는 그런 논을 누구나 고래 논이라고 부르곤 하였다. 나중에 알고 보니 고래논은 고래실의 방언이란 것을 깨닫게 되었다.    

        

❉ 물싸움     


해마다 모를 낼 시기가 되면 농부들은 으레 저마다 삽자루 하나씩을 들고 벌판으로 나가곤 하였다. 그리고 낮에는 물론이고 밤까지 봇도랑의 상류에서 하류까지 부지런히 오르내리며 물줄기를 지키느라 여러 날 동안 fj밤을 꼬박 새우곤 하였다.      


혹시나 누군가가 봇도랑에서 내려오는 물길을 상류 쪽에서 몰래 자신의 논으로 돌려놓는다면 아래쪽 논에는 물이 전혀 내려오지 않게 되어 봇도랑 아래쪽 논을 가진 농부들은 물을 댈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러기에 해마다 그때쯤이면 어김없이 농부들끼리 무서운 싸움이 자주 벌어지기도 하였다. 평소에는 이웃끼리 한없이 인정이 많고 다정한 사이가 농촌인심이라고 하지만 물을 댈 때만큼은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물에 대해서는 그만큼 인색하였으며 한 치의 양보도 없었다.      


만일 물길을 몰래 다른 곳으로 흘려보내는 일을 발견하게 되면 언성을 높혀가며 상대방을 당장이라도 삽으로 찍어 죽일 듯이 치켜들고 무섭게 싸우는 일이 잦았다.  

    

서로 멱살을 움켜쥐고 주먹을 날리기도 하는 등 무서운 싸움이 자주 벌어지곤 하였다. 그만큼 물은 양식과 직결되는 매우 중요한 문제였기 때문에 서로 한 치의 양보도 없었던 것이다.      


물싸움이 그렇게 심하게 벌어지는 것은 비단 우리 마을뿐만이 아니었다.  이웃 마을 어디서나 그런 물싸움은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었다.      

   

❉ 써레질     


모를 내기 위해서는 쟁기로 미리 갈아 엎어놓은 논바닥을 평평하게 고르기 위해 써레질을 해야 한다. 그래야 모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논갈이와 써레질은 순전히 소의 힘을 빌어 하게 된다. 논을 가는 일에  이미 지칠 대로 지쳐빠진 소는 쉴 사이도 없이 주인이 시키는 대로 이번에는 바로 써레질로 혹사당하게 된다. 논이 많은 집은 몇날 며칠을 두고 소를 몰며 써레질을 해야 하기 때문에 소는 그야말로 힘이 들어 죽을 지경이 되고 만다. 그렇다고 도망을 칠 수도 없는 일이다.    

 

그렇게 몇날 며칠을 쉬지 않고 써레질을 하게 되는 소는 아무리 힘이 센 황소라고 해도 기계가 아닌 이상 지쳐빠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잠시도 쉴 시간이 없다. 일단 써레질이 다 끝날 때까지는 주인이 시키는 대로 쉬지 않고 젖먹던 힘을 다해 죽을 기를 다해가며 써레질이 끝날 때가지 혹사당하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게 혹사당하며 일을 하던 소가 결국은 입에서 게거품을 줄줄 흘리며 헐떡이다가 결국은 물이 가득한 논바닥에 첨벙 쓰러지고 마는 황소도 가끔 볼 수 있었다. 참으로 비참한 광경이 아닐 수 없었다.  


❉ 모내기      


그렇게 고생을 하며 써레질이 다 끝나면 바로 모내기를 서둘러야 한다. 모내기를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모가 있어야 한다. 그러기에 그때는 어느 집이나 모를 내기 전에 미리 논 한쪽 구석에 모판 자리를 정해 놓고 볍씨를 뿌려 정성껏 모를 길러놓곤 하였다.       


써레질이 끝나기가 무섭게 바로 서둘러 모를 내게 된다. 그대로 두면 논이 도로 말라버리거나 시기를 놓쳐 모를 낼 수가 없기 때문이다.     

 

모를 내기 위해서는 우선 모판에 있는 모를 쪄내야 한다. 모를 찐다는 것은 모판에서 잘 자란 모를 기계가 아닌 사람의 손으로 일일이 뽑아내어 한 묶음씩 짚으로 동여매는 일을 말한다. 그러기에 모를 찌고 모를 내기 위해서는 많은 인력과 노력이 필요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지금은 잘 볼 수 없지만, 옛날에 논에서 일을 하다 보면 땅강아지도 많았고 도 많았다. 거머리도 너무 많았다. 논에서 살고 있는 뱀은 일명 물뱀이라고도 하였으며 절대로 사람을 물지 않는다고 한다.    

  

갑자기 못자리에서 물뱀이 나타나면 맨손으로 그 징그러럽기 짝이 없는 뱀의 꼬리 부분을 꽉 잡고 멀리 던져버리는 용감한(?)사람들도 많았다. 그러면 공중으로 한창 날으던 뱀이 다른 집 논바닥이나 풀숲으로 떨어지는 광경을 가끔 목격할 수 있었다.       


종아리에 붙은 거머리는 떼어버려도 또 끈질기에 또 달라붙곤 하면서 사람의 피를 빨아먹기 때문에 자신도 모르게 종아리에서 피가 줄줄 흘러내리기도 하였다. 거머리에 물리면 물린 부분이 며칠 동안 매우 가려워서 견디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거머리에 물리지 않기 위해 미리부터 종아리에 토시처럼 헝겊을 질끈 동여 매고 모를 찌기도 하였다.    

논이 많은 집, 다시 말해서 부잣집에서는 이틀이고 사흘이고 모를 다 낼 때까지 더욱 많은 일꾼들을 모야야 한다. 모를 찌는 사람쪄놓은 모를 지게에 지고 모를 낼 논으로 나르는 사람(모쟁이), 모를 내는 사람줄모를 낼 때는 줄을 잡는 사람 등더욱 많은 인력(일꾼)을 필요로 하게 되는 1년 중의 큰 행사가 아닐 수 없다. 

    

만일 논이 많은 집에서 일꾼을 얻지 않고 적은 인원이 모를 낸다면 여러 날을 걸리게 됨은 물론 그렇게 되면 모가 일정하게 자라지도 못하고 들쭉날쭉하게 됨은 물론 모를 낼 시기까지 놓치게 되는 것이다.  

         

❉ 두레     


모를 낼 때는 모내기를 하는 가정에서도 바빴다. 열 명이고 스무 명이 넘는 일꾼들의 밥과 반찬, 그리고 술과 마실 물 등을 준비해야 할 것이 너무 많기 때문에 아녀자들의 손길도 그야말로 눈코 뜰 새가 없이 바빴다. 그래서 모를 낼 때마다 이웃집 아녀자들이 모두 모여 도와주곤 하였다.      


동네 아이들 역시 모를 내는 집 바깥 마당에 모여 하루종일 시간을 보내곤 하였다. 먹을 것과 주전부리가 항상 부족했던 시절이어서 누룽지라도 얻어먹기 위해서였다. 가마솥 가득 밥을 해서 밥을 푸고 난 뒤에는 으레 아이들에게 누룽지를 긁어서 나누어 주곤 하였다. 그때 얻어먹은 누룽지의 맛은 둘이 먹다가 하나가 죽어도 모를 정도로 기가 막혀서 지금도 그 맛을 잊을 수가 없다.      

 

그리고 일꾼이 많이 팰요한 집에서는 으레 두레를 이용하곤 하였다. 두레란 농촌에서 농사 일을 공동으로 하기 위해 리나 마을 단위로 만든 조직을 말한다. 우리 마을에서 두레를 이용하게 될 때는 항상 농기를 앞세우고 꽹과리와 북장고그리고 호적을 불면서 보무도 당당하고 요란스럽게 일터를 향해 들판으로 나가곤 하였다.( * )      

    

                      모내기와 논에 김매기(1)’ 끝  -다음에 2편이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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