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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나무 Aug 01. 2022

모내기와 논에 김매기(2)

[두레패와 농기]

농기(農期)


농기(農期)는 두레가 들판에 있는 일터로 이동하거나 농사 일을 마치고 집으로 들어올 때 으레 맨 앞에 들고 이동하곤 하였다.      


마을마다 농기의 형태는 다르겠지만, 우리 마을에는 굵은 대나무로 된 긴 장대(약 5~6미터 정도) 끝에 꿩의 깃을 보기 좋게 매달았다. 그리고 그 밑에는 태극기, 그리고 바로 밑에 농기가 달려있었다.   

   

농기는 하얀 바탕에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이란 검정색 글씨가 한자로 적힌 깃발이 땅에 끌릴 정도로 길게 적혀 있었다. 길다란 농기 양쪽 가장자리는 붉은 천으로 마치 레이스를 단 것처럼 물결 모양으로 길고 멋스럽게 장식되어 있다.       


두레가 일터로 이동할 때는 마을에서 가장 힘이 센 사람이 농기를 혼자 들고 이동하곤 하였다. 바람이라도 심하게 부는 날이면 길다란 농기가 바람에 하늘 높이 펄럭이는 바람에 혼자 들고 가기가 여간 어렵고 힘이 드는 게 아니었다. 그런 때는 깃대 중간에 단단히 동여 맨 세 줄의 동아줄을 각각 한 줄씩 세 사람이 잡고 잡아당기며 균형을 맞추며 행진을 하기도 하였다.     


농기는 으레 모를 내는 집의 바깥 마당에서부터 출발을 하게 된다.    

  

농기의 행렬은 길게 이어지곤 하였다. 농기의 출발은 으레 상쇠(두레패나 농악대에서 꽹과리를 치면서 악대 전체를 지휘하는 사람)의 요란한 꽹과리 신호에 따라 움직이게 된다.      


맨 먼저 농기를 들고 앞장을 서면 그 뒤를 바로 상쇠가 꽹과리를 치며 따라가고 상쇠의 지휘에 따라 너댓 명의 꽹과리 패가 상쇠의 지휘에 따라 꽹과리를 치며 따라 간다.      


그런데 그때는 어느 마을에나 상쇠가 있어야 두레가 움직이게 마련이었지만, 우리 마을의 상쇠는 정말 꽹과리에 대한 특별한 재능이 있는 사람이었다.      


우리 마을의 상쇠는 비쩍 마른 체구의 노인이었다. 그런데 꽹과리를 칠 때만큼은 어디서 그런 힘이 나는지 마치 신이 들린 사람처럼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동작이 대단히 민첩했다. 그리고 어찌나 꽹과리 치는 솜씨가 대단했는지 충분히 무형문화재가 되고도 남을 인물이었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꽹과리를 치는 상쇠 다음에는 을 치는 사람, 을 울리며 따라가는 사람, 그리고 또 그 뒤로는 장구 치며 따라가는 사람, 나팔처럼 생긴 호적을 구성진 가락에 맞추어 요란스럽게 불어대면서 행진하게 된다.   

   

그뿐만이 아니다.      


요란스러운 소리로 호적을 구성지게 불어대는 사람 뒤에는 그날 일을 할 일꾼들 모두가 손잡이가 달린 작은 소고를 하나씩 들고 휘둘러대며 이리 치고 저리 치고 다리를 번갈아 번쩍번쩍 들어가며 신명나게 춤을 추며 그 뒤를 따라간다.      


어디 그뿐인가.      

농기가 출발하는 날이면 동네 꼬마들도 모두 신바람이 나고 엉덩이가 들썩들썩 하는 바람에 집에 가만히 있을 수가 없다.  그러기에 모드들 어른들이 추는 소고춤에 따라 저마다 흥겹게 흉내를 내며 농악대의 뒤를 길게 줄을 이어 따라가게 된다. 지금은 그런 모습을 전혀 볼 수 없게 되었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야말로 흥겹고 볼만한 광경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럴 때마다 60여 호가 넘는 우리 마을이 온통 떠나갈 듯이 두레패들의 농악 소리로 쩌렁쩌렁하게 흔들리곤 하였다.  

    

그렇게 해서 일터에 도착한 두레패는 농기를 일단 그 주변에 세워놓게 된다. 농기를 세울 때는 깃대 중간에 동여맨 세 줄의 끈을 농기가 쓰러지지 않게 단단히 말뚝을 박아 고정해 놓고 일을 하게 된다. 길다란 농기가 달린 농기를 세워두면 아무리 먼 곳에서도 바람에 펄럭이는 농기를 바라보며 어디서 두레패가 일을 하는지를 금방 알아볼 수 있었다.    

   

두레패가 한 곳에서 모내기 일을 모두 마치고 나면 또 다른 장소로 가서 일을 하기 위해 이동을 하게 된다. 그때마다 세워두었던 농기를 들고 농악을 요란스럽게 울리며 행진하곤 하였다. 그럴 때마다 넓은 벌판이 온통 농악 소리로 가득 울려 퍼지곤 하였다. 게다가 이웃 마을의 두레패까지 한데 어울리게 되면 들판은 한층 더 요란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농기(農期) 싸움     


농기는 우리 마을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때는 어느 마을이나 대부분 두레패가 있어서 가끔은 벌판에서 두레패가 이동할 때마다 이웃 마을 두레패와 마주칠 때가 있었다. 그럴 때마다 길이 좁아서 서로 지나가기가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그러기에 두레패가 마주칠 때마다 서로 길을 비켜주지 않고 먼저 가기 위해 결국은 농기 싸움이 벌어지곤 하였다. 농기 싸움은 농기를 서로 부딪치며 상대방의 농기를 쓰러뜨리는, 다시 말해서 어느 마을의 기수가 힘이 센가를 판단해 보는 일종의 기(氣) 싸움이라고 불 수 있었다.      


농기 싸움을 할 때는 농기를 든 사람의 힘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는 일이었다. 심할 때는 상대방의 농기를 무참하게 부러뜨리기도 하였다. 그리고 서로 밀고 밀치는 싸움을 하다가 논바닥에 나가동그라지는 일도 많았다. 그렇게 해서 결국 농기를 먼저 부러뜨린 편이 이기게 되는 것이다.  

농기 싸움에서 이기게 되면 그다음부터는 진 마을 사람 모두가 이긴 마을 사람들을 은근히 두려워하고 피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것이 농기 싸움을 하게 되는 하나의 전통이며 관행이었던 것 같다.      


모내기      


농사꾼들에게 모내기는 일년 동안 먹을 양식을 장만하는 가장 중요하면서도 큰 행사가 아닐 수 없다.      


모를 내기 위해서는 미리 소와 쟁기를 이용하여 논 갈아엎기와 물을 댄 다음 이번에는 다시 써레질을 모두 끝내야 한다. 써레질을 해야 논바닥이 평평하여 모를 편하고 쉽게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써레질을 한 다음에는 논바닥의 물이 마르기 전에 하루속히 모를 내야 한다.  

    

일단 모를 낼 날짜가 정해지면 당장 많은 일꾼들이 필요하게 된다. 논을 많이 소유한 집에서는 더욱더 많은 일꾼이 필요하게 된다.     


모를 찌는 사람, 모판에서 찐 모를 지게에 지고 모를 낼 논으로 나르는 사람(모쟁이), 모를 내는 사람, 그리고 줄모를 낼 때는 줄을 잡아 줄 사람 등이 필요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모를 낸 뒤를 바로 쫓아다니며 모 포기가 쓰러졌거나 잘못 낸 모를 다시 제대로 꽂을 사람도 필요한 것이다. 오뉴월 바쁜 농번기에는 부지깽이도 한 몫을 한다는 속담도 그래서 생기게 된 것이다.  

   

그만큼 한 사람이라도 더 필요한 시기이기 때문에 논을 많이 가지고 있는 농가에서는 대부분 일꾼이 많은 두레를 이용하곤 하였다. 두레를 이용할 때는 일단 품삯은 무료였던 것 같다. 그 대신 마을에 일이 있을 때마다 그날 이용한 두레 인원 수 대로 두고두고 품앗이로 대체하면서 해결하곤 하였다.      

 

* 막모와 줄모       


옛날에는 경지 정리가 안 된 논이 많아서 논바닥의 크기와 모양이 각양갹색이었다. 그러기에 쟁기질가래질을 하기도 불편하였으며 그런 논은 대부분 줄모가 아닌 막모를 내는 집이 많았다.   

줄모를 내게 되면 그렇지 않아도 일꾼이 부족한 상황에 줄을 잡아줄 일꾼이 더 필요하게 되기 때문이었다.


막모모를 줄에 맞추어 심지 않고 적당한 간격으로 마음대로 내는 모를 말한다. 그러기에 막모는 대부분 온가족이 모두 동원되어 내곤 하였다. 물론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한시라도 빨리 모내기를 끝내기 위해 모두가 모내기에 참여하곤 하였다.      


그러나 면적이 제법 큰 논은 줄모를 내기도 하였다. 줄모란 노끈으로 만든 길다란 줄을 논 양쪽에서 줄을 잡고 있는 사람이 크게 외치는 구호에 따라 바로 다음 줄로 이동해서 모를 내는 방법이었다.     

  

노끈 줄에는 드문드문 일정한 간격으로 빨간 실이 매달려 있었는데 그것은 빨간 실이 매달린 바로 아래마다 모를 꽂게 하기 위한 하나의 표시였다.   

   

모를 낼 때는 왼쪽 손에 모포기를 잔뜩 쥔 다음 오른쪽 손으로 대여섯 그루의 모를 떼어내어 바로 엄지와 검지, 그리고 장지의 세 손가락을 이용하여 자신의 할당량인 대여섯 포기의 모를 빠른 시간 내애 내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기에 모내기가 익숙지 못한 사람은 왼쪽 손에 든 모 포기에서 대여섯 그루의 모를 빠른 동작으로 떼어내기란 말처럼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우물쭈물 하는 사이에 못줄을 잡은 사람이 오라이!’ 하고 외치며 줄을 넘기기 전에 모를 얼른 내야 하며 잘못 내서 비뚜러진 모를 돌볼 사이도 없다.       


만일 손이 굼뜨고 더뎌서 내 할당량을 채우지 못할 경우에는 옆에서 모를 내는 사람에게 그렇게 미안할 수가 없다. 별수 없이 바로 양쪽에 있는 사람들이 힘이 더 들게 되며 번번이 피해를 주게 된다. 옆에 있는 사람이 내가 내지 못한 모를 그만큼 더 내야 되기 때문이다.     

 

모를 오랫동안 내다 보면 무엇보다도 허리가 끊어질 듯이 아플 경우가 있다. 그러나 허리가 아프다고 마음 놓고 허리를 펼 수도 없다. 아무리 허리가 아파도 참고 그냥 내야 한다. 줄모를 내다 보면 줄을 잡은 사람이 금세 오라잇!’ 하는 신호에 따라 급하게 내가 맡은 모를 시간 내에 내야 하기 때문이다.     

   

* 마냥모       


마냥모란 모를 낼 시기에 미처 논에 물을 대지 못해 철보다 늦게 내는 모를 말한다. 늦게 낸 마냥모는 오전에 낸 모와 오후에 낸 모의 차이도 대단하다고 하였다. 그만큼 시간이 늦을수록 소출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마냥모를 낼 때는 뒷방에 숨겨두었던 처녀도 나서서 모를 내게 된다고 할 정도로 한시가 급박한 상황인 것이다.      


내 어린 시절 나의 고향인 경기도 북부에서는 대개 늦어도 양력 6월 5일 이내에는 모두 모를 내야 한다. 그러기에 그 이후부터 내는 모를 마냥모라고 하였다.      


마냥모를 내게 되는 것은 물을 댈 수 없거나 제철에 비가 오지 않다가 다행히 제철보다 늦게 비가 와서 모를 내게 되는 것을 말한다. 이처럼 물을 댈 수도 없고 반드시 비가 와야만 모를 낼 수 있는 논을 일명 천둥지기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러나 천둥지기는 제철보다 조금 늦게 비가 온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논을 한 해 동안 그냥 그대로 묵혀둘 수밖에 없었다. ( * )



    - 다음에는 '논에 김매기' 편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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