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겨울나무 Dec 11. 2022

내가 어렸을 때는(8)

[살아남기 위해서는 오직 공부 외에는 없다!

또다시 도살장을 향하여      


학교를 향해 걸어가고 있는 나의 걸음걸이는 다리에 마치 납덩이를 매단 것처럼 무겁기만 하였다. 집에서는 아무리 선생님이 무서워도 무조건  학교는 가야 한다며 부모님이 내쫓고 있었다. 선생님이 아무리 무섭게 때린다고 사정 이야기를 했지만 이제야 선생님 바로 만났다며 오히려 좋아하는 표정이었다.     

 

그놈의 학교라는 건 왜 생겨가지고     


오늘 당장 학교에 가기만 하면 선생님이 무서운 폭력과 욕설은 물론이고 친구들이 그런 나를 보고 더욱 우습게 여기고 점점 더 괴롭힐 것이 불을 보듯 뻔하고……. 진퇴양난이란 말은 지금의 나를 위해 쓰라고 만들어진 말인 것만 같았다.      


생각할수록 선생님이 야속하고 친구들이 너무 원망스러웠다. 더구나 이번에는 사흘씩이나 학교에 가지 않고 산에서 놀다가 다시 학교를 가게 되었으니 선생님이 나를 보면 어떻게 나올까? 그리고 친구들에게는 얼마나 더 괴롭힘을 당하게 될까?     


그나저나 선생님은 무슨 까닭으로 다른 친구들한테는 늘 너그럽게 대하며 나한테만 그토록 무자비한 욕설과 폭력을 쓰고 있는 것일까? 부모님은 그게 다 나 잘되라고 선생님이 그러는 것이라고는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 해도 난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어디로 멀리 도망을 갈 수도 없고, 솔직히 어린 마음이었지만 죽을 수만 있으면 당장 죽고만 싶은 심정이었다.     

 

난 선생님한테 무서운 매를 맞을 각오를 단단히 하고 마침내 학교에 도착했다. 아니나 다를까. 학교에 도착하자 친구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하나둘씩 모여들더니 나의 머리와 팔 어깨 등을 툭툭 건드리며 괴롭히기 시작했다.      


난 영락없는 동네북 신세가 되어 꿀먹은 벙어리처럼 아무 대꾸도 못하고 마치 큰 죄라도 진 듯 고개를 푹 숙인 채 친구들의 괴롭힘을 그대로 견디며 참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세상에 이토록 못난 바보가 어디 있으며 이런 왕따가 또 어디 있을까! 그러나 난 지금 친구들이 툭툭 발로 차기도 하고 주먹으로 팔과 어깨를 치며 괴롭히는 것은 그런대로 참을 만했다. 그보다는 조금 뒤에 선생님한테 당할 일이 더욱 무섭고 두려웠다.      

이번에는 과연 어떤 벌을 받게 될까! 사흘씩이나 학교에 오지 않고 땡땡이를 쳤으니 이번에야말로 그냥 넘어갈 것 같지 않았다.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가슴속이 연신 벌렁거리며 숨이 가빠지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 잠시 뒤, 선생님이 천막 안으로 들어왔다. 난 머리를 숙인 채 죽은 척하고 있었다.  아니 너무 무서워서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너 이리 좀 나와 봐!”     


드디어 선생님의 입에서 명령이 떨어졌다. 소름이 돋힐 정도로 노기 띈 목소리였다. 분명히 나를 향해 소리치는 것이 분명했다. 난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 선생님 앞으로 나갔다.    

 

“너 학교가 그렇게 싫단 말이지? 그렇다면 공부를 해야 할 거 아니야! 너 여기 손 번쩍 들고 무릎 꿇고 앉아 있어!”     


내가 그동안 학교에 오지 않고 산에서 놀았다는 것은 선생님도 알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난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 무릎을 꿇은 채 손을 번쩍 들고 앉아 있었다. 나를 보자마자 흠뻑 두드려 패며 매를 맞을 줄 알았는데 무릎을 꿇고 앉아 있으라니 이나마 천만다행이 아닐 수 없었다. 친구들은 그런 나를 바라보며 그거 잘됐다는 듯 히죽이죽 웃고 있었다.     

 

그날 난 얼마나 손을 들고 앉아 있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매를 맞지 않고 넘어간 것만 해도 여간 다행이 아니었다. 어젯밤에 꿈을 잘 꾸었다는 생각만 하게 되었다.      


그다음 날부터 선생님은 여전히 나에게 집중적으로 질문을 하곤 하였다. 그때마다 난 깜짝깜짝 놀라곤 하였다. 아는 것이 없기에 질문을 할 때마다 영락없이 무섭게 매를 맞아야만 했다.      


그때 선생님이 주로 질문을 하는 방법은 선생님이 어떤 문제를 읽고 나서 O? X? 를 묻는 이른바 진위를 가려 대답하게 하는 문제가 많았다.      


그런데 다른 친구들한테 물어보고 X라고 대답하면 답이 맞았다며 으레 그냥 넘어가곤 하였다. 그런데 내가 X라고 대답하면 왜 X냐고 그 이유를 다시 대답해 보라고 하였다. 그러다가 내가 다시 우물쭈물하고 대답을 못하면 여지없이 다시 무자비할 정도로 매를 때리곤 하였다.     


솔직히 2학년 때 전쟁이 나서 3년 동안 전쟁을 치르다가 6학년으로 바로 올라왔으니 기초학력이 부족한 것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선생님은 그런 걸 전혀 배려해 주지 않고 내가 모를 때마다 가르쳐줄 생각은 하지 않고 매로 다스리곤 하였다.      


왜 선생님은 나에게만 질문을 퍼붓고 나만 자꾸 무섭게 괴롭히는 것일까?    

  

아무리 이해해 보려고 해도 도무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멀리 어딘가로 도망을 가고 싶었다. 다시 산속으로 들어가서 숨어버리고 싶기도 하였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이 넓은 세상에 이 한 몸 숨을 곳이라고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학교에서 한 시간 한 시간을 보내기가 마치 지옥처럼 두렵고 조마조마해서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었다. 오죽하면 현재 내가 가장 편안하고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곳은 오직 뒷간(화장실) 밖에 없는 것 같았다. 뒷간에 있는 동안은 아무도 나를 괴롭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죽을 자신이 없으면 살아남아야 한다. 어떻게 해서라도 살아남아야 한다!’      


어느 날 문득 머리에 이런 생각이 불현 듯 떠올랐다. 내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오직 죽기 살기로 공부를 해야 살아남게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그날부터는 죽을 각오로 공부를 열심히 하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그런 결심을 하게 된 나는 그날 저녁부터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등잔불을 켜놓고 그 밑에서 콧구멍이 새까매지도록 밤늦게까지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밤 12시가 되자 부모님이 오늘은 그만하고 자라고 하였다. 나 대신 매를 맞아줄 것도 아니면서 자꾸만 자라고 성화를 부리곤 하였다.   

  

그러나 난 그러면 그럴수록 오기가 생겨 더욱 오랫동안 공부에 매달렸다. 부모님은 그런 나를 보고 독하다고 말하기도 하였다. 독한 것은 내가 아니고 선생님이었다. 아마 그때 매일 새벽 두 시까지 예습과 복습을 하며 공부에 매달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공부가 좋아서가 아니라 선생님한테 오직 매를 맞지 않기 위해서…….     


매일 새벽 2시까지 공부를 하고 그다음 날 아침이 되면 피곤한 몸을 이끌고 뒷간에 다녀온 후 바로 세수를 하였다. 그 당시에는 어느 집이나 세숫물을 쓰기 위해서는 부엌에서 가마솥에 물을 따뜻하게 끓인 물과 찬물을 적당히 섞어 세숫대야에 붓고 사용하곤 하였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아침에 세수를 할 때마다 코피가 줄줄 흘러나오는 것이 아닌가! 하루도 아니고 며칠 째 세수를 할 때마다 으레 코피가 쏟아져 나오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난 왠지 기분이 몹시 좋았다. 이렇게 코피가 쏟아지는 것은 틀림없이 엊저녁에 공부를 열심히 했기 때문에 피곤해서 나오는 코피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코피가 나오지 않으면 은근히 기분이 좋지 않았다.      


코피가 나오지 않는 것은 똑같은 새벽 두 시까지 공부를 했지만, 코피가 쏟아지지 않는 날은 신경을 더 썼기 때문이라고 내 나름대로 반성을 하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코피가 쏟아지지 않은 다음 날에는 더욱 신경을 써서 공부에 몰두해 보기도 하였다.     


그렇게 코피를 흘려가며 몇 달을 열심히 하다 보니 천천히 그 결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천만다행으로 공부를 잘한다는 친구들보다 성적이 차츰 월등하게 좋아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결과 선생님의 매도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처럼 괴롭히던 친구들의 괴롭힘도 차츰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었다.( * )    


                  < 다음편에 계속 >


매거진의 이전글 내가 어렸을 때는(7)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