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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나무 Dec 18. 2022

내가 어렸을 때는( 9 )

[난생처음으로 해본 싸움]

우리 담임 선생님은 워낙 성격이 무서운 분이었다. 선생님이 그렇게 무서울 것이라고는 전혀 상상조차 못했던 일이었다.      


그런 선생님의 매를 피하기 위해 코피가 터질 정도로 공부를 한 결과 난 그나마 성적이 차츰 향상되어가고 있는 것 같았다.


선생님도 그런 사실을 느끼고 있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전처럼 나에게 심하게 가하던 폭력적인 욕설과 매를 가하는 회수도 점차 줄어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정말 다행이었다. 이제야 살길을 찾은 것만 같았다. 그러기에 난 살 길을 찾아 오로지 밤낮으로 공부에만 매달리게 되었다. 공부가 재미있거나 취미에 맞아서가 아니었다. 오직 매를 덜 맞기 위해서, 그리고 선생님에게 미움을 받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서였다.   


나한테 늘 그랬듯 선생님은 가끔 공부를 못하는 다른 친구들에게도 매를 가하곤 하였다. 주로 장화를 신은 발이나 싸리 빗자루, 그리고 지시봉(막대기)으로 성질이 풀릴 때까지 무자비하게 두드려 패곤 하였다.     


그러나 그때 부모님들 대부분은 자식이 학교에 가서 매를 흠뻑 맞고 돌아와도 누구 하나 불평을 말하는 사람이라고는 아무도 없었다. 그저 눈에 띄게 병신이 되지 않는 한 전혀 문제를 삼지 않고 그저 선생님만 믿었던 것 같았다.     


담임 선생님의 매가 그토록 심해지자 매를 이기지 못하고 학교를 그만두는 아이들도 이따금 생기기도 하였다. 하지만 누군가가 결석을 해도 선생님은 연락은커녕 왼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그냥 넘어가곤 하였다. 요즘 같으면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살얼음장을 걷듯 두렵고 공포스러운 나날을 보내던 어느 여름날이었다.      


난 늘 그랬듯 그날도 오전 수업이 끝나자 천막 교실에서 점심을 대충 먹고 혼자 슬며시 운동장으로 나왔다. 아직도 나와 친하게 놀아줄 친구 하나 없는 외톨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늘 그렇게 혼자 노는 것이 습관이 되었으며 차라리 그게 오히려 익숙하고 편하기도 하였다.      


운동장 바닥은 여전히 전쟁으로 인해 폭격을 맞는 자리가 군데군데 흉측스러운 모습으로 패어있는 상태였다. 마침 엊그제 비가 와서 움푹 패인 자리마다 흙탕물이 괴어 있었다. 난 오늘도 그 흙탕물 앞에 살며시 쪼그리고 앉았다.       


어디서 구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나의 손에는 잣 한 송이를 들고 있었다. 어제처럼 잣송이에서 잣 한 알을 뽑아 앞니로 깨물었다. 그리고 반으로 깨진 잣 알을 흙탕물 위에 살며시 적셔보았다.      


히야아~~~ 이렇게 예쁘고 아름다울 수가!     


무슨 원리인지는 지금도 모를 일이었다. 잣 알이 물 표면에 닿기가 무섭게 흙탕물은 금세 무지갯빛보다 더 아름답고 고운 색깔들이 둥그렇게 원형의 파문을 그리며 계속 사방으로 번져가고 있었다. 그광경이 그렇게 신기하고 재미있을 수가 없었다.    

한동안 무지개 색깔의 파문이 어느 정도 약해지자 난 입에 물고 있던 잣 알을 다시 물에 살며시 적시게 돠었다. 그러자 다시 무지갯빛 파문이 웅덩이에 힘차게 퍼져나가고 있었다. 난 그 색깔에 도취된 듯 색깔이 번져나가는 모습만 정신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처얼!”     


갑자기 웅덩이에 고여있던 흙탕물이 사방으로 튀어 오르는 바람에 내 몸은 온통 흙탕물을 뒤집어쓰고 말았다. 내가 입고 있던 옷은 물론이고 머리통까지 금세 흠뻑 젖어버리면서 순식간에 내 몸은 마치 물에 빠진 생쥐 꼴이 되고 말았다.   

  

나도 모르게 흙탕물에 젖은 얼굴을 손바닥으로 닦으며 겨우 정신을 차리고 앞을 바라보게 되었다. 누군가가 웅덩이 저쪽에서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다른 사람도 아닌 바로 우리 반 반장이었다. 나에게 골탕을 먹일 작정으로 그가 일부러 발로 물탕을 튕겼던 것이다. 더구나 그는 나와 한 동네이며 바로 이웃집에 사는 친구였다.    

  

한 동네, 그리고 더구나 이웃에 살면 내가 어려울 때마다 도와줄 만도 한데 그게 아니었다. 그 역시 항상 나를 우습게 여기며 다른 친구들처럼 나를 귀찮게 괴롭히거나 완력을 쓰는 무서운 상대 중의 하나였다.

     

아니 그건 친구도 아니었다. 학교에 오갈 때 자신의 가방 등을 대산 들고 가라고 시키는 등, 나를 자신의 비서나 종처럼 함부로 부리는 귀찮고 두려운 존재였다. 차라리 그런 친구는 없는 것만도 못한 원망스러운 존재였다.  

나는 물탕을 튕긴 장본인이 그라는 것을 알면서도 두려운 마음에 아무 말도 못하고 고개를 푹 숙이고 말았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다는 말이 있던데 난 그때 솔직히 지렁이만도 못한 부끄러운 존재에 불과했던 것이다.      

내가 고개를 푹 숙인 채 아무 말도 못하자 그는 다시 재미있다는 듯 발로 물탕을 튀기고 말았다.    

  

 “처얼썩!”     


그렇지 않아도 가뜩이나 흠뻑 젖은 내 몸은 다시 순식간에 물벼락을 맞고 더욱 흠뻑 젖어버리고 말았다. 난 너무나 화가 나고 속이 상한 나머지 갑자기 울음 섞인 목소리로 나도 모르게 그를 향해 소리치게 되었다. 이번에는 지렁이가 마침내 꿈틀하게 된 것이다.      


너 이따가 공부 끝나고 집에 갈 때 보자구!”     


그는 뜻밖이며 가소롭다는 듯 나를 바라보며 만면에 희소를 띄며 대꾸했다.      

 

어쭈, 이거 봐라. 네가 이따가 보자면 어쩔 건데? 그래, 좋았어. 이따가 집에 갈 때 보자구. ?”     


그는 잘 됐다는 듯 이렇게 시원스럽게 대꾸하고는 신바람이 난 듯 천막 교실을 향해 겅중겅중 뛰어가고 있었다.     


난 그제야 크게 후회하기 시작했다. 무의식 중에 나도 모르게 내 입으로 내뱉은 말이 은근히 후회가 되었던 것이다. 어쩌려고 내가 왜 그런 말을 했을까! 그 무서운 존재를 어떻게 감당하려고 그런 무책임한 말을 했단 말인가! 그러나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난 불안하고 초조한 마음에 오후 수업 내내 떨어야만 했다. 그러니 공부가 머리에 들어갈 리가 없었다. 오직 이따가 집에 갈 때 그를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눈앞이 캄캄하기만 하였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없던 일로 하자고 취소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아무튼 그렇게 초조하게 떨어보기는 난생처음 경험한 일이었다.    

 

첫 번째 싸움     


무슨 까닭으로 그리고 무슨 이유로 그랬는지는 지금까지도 모를 일이다. 그때는 등교 또는 하교를 할 때 부락별로 다 함께 모여 애향단장이 이끄는 대로 등교도 하고 하교도 하였다.      


등교할 때도 그렇지만 하교할 때도 역시 운동장에 부락 별로 줄을 서서 선생님의 지시에 따라 차례대로 하교를 하곤 하였다.      


확실한 기억은 없지만 아마 애향단이란 명칭 아래 그런 활동을 하게 된 것이 아닌가 기억하고 있다. 애향 단장은 부락별로 한 명씩이었으며 주로 5학년 학생 중에 힘도 좀 있고 통솔력이 있는 학생이 단장으로 임명되곤 하였다.      


애향 단장은 부락별로 등하교 시 줄 앞에 서서 인솔을 하는 일 외에 특별히 하는 일은 없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6학년 2학기가 되면 다시 애향단장 임무를 그 부락의 5학년 후배에게 넘겨주곤 하였다.  


    



   

마침내 학교 공부가 모두 끝나고 학생들이 부락별로 운동장에 서서 하교를 하라는 선생님의 지시만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도 어김없이 짓궂은 아이들이 가끔 내 곁으로 슬그머니 와서 내 궁둥이를 한 번씩 걷어차고 가곤 하였다. 늘 그래왔듯이 난 그러려니 하고 오늘도 아무 말없이 고개를 숙인 채 맞고만 있었다. 하교 때마다 으레 그런 일이 벌어지곤 하여 난 하교 시간이 가장 수치스럽고 괴로운 시간이기도 하였다.       


아니 아이들이 가끔 궁둥이를 걷어차는 것은 그런대로 견딜만 했다. 그보다는 아까 점심 시간에 우리 반 반장한테 이따가 보자고 말한 것이 불안하고 걱정이 되어 도무지 견딜 수가 없었다.      


과연 우리 반 반장이 얼마나 무서운 매를 나에게 가하게 될까?        


마침내 선생님의 하교 지시가 떨어지자 우리 부락 아이들이 한 줄로 서서 하교를 하게 되었다. 무슨 까닭인지 우리 반 반장이면서 애향단장인 그는 오늘따라 공연히 신바람이 나서 여유만만한 표정으로 우쭐거리고 있었다.      

그는 줄을 잘 서서 가고 있는 아이들 곁을 부지런히 왔다 갔다 하면서 똑바로 줄을 서서 가라며 무섭게 으름장을 놓기도 하였다. 그러면서 가끔 나의 눈치를 힐금힐금 바라보기도 하였다. 난 그의 그런 태도가 너무도 무서워서 차마 눈을 뜨고 바로 바라볼 수가 없었다.      


어쩌면 이따가 나에게 본때를 보여주겠다고 속으로 크게 벼르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내 가슴은 겉잡을 수 없을 정도로 두근거리며 뛰고 있었다. 그래서 죽은 척하고 고개를 숙인 채 땅만 바라보며 걸어가고 있었다.     


학교에서 마을까지는 약 시오리가 되는 거리였다. 그런데 학교를 출발하여 어느 정도 걸어왔을 때였다. 그곳은 작은 다리가 있는 곳이었다.      


드디어 반장이 내 곁으로 성큼성큼 걸어오더니 다짜고짜로 내 궁둥이를 힘껏 걷어 차며 소리쳤다. 마침내 올 것이 온 것이었다.       

  

얀마, 너 이따가 보자고 했잖아? 그래서 어떻게 할 건데, ?”


……!!”


       

                     < 다음 회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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